여야는 강도높은 재검색에도 불구하고 국가기록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끝내 찾아내지 못하면서 '대화록 실종'이라는 예기치 않은 사태에 직면케 됐다.
여야는 22일 오전 10시부터 경기 성남시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찾는 최종 재검색을 벌였으나 실패, 나흘간의 작업이 무위로 마무리됐다.
NLL(서해북방한계선)포기 발언으로 촉발된 회의록 정국이 이른바 '사초(史草) 게이트'로 비화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NLL대화록을 둘러싼 의혹들도 꼬리를 물면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지원(e-知園) 시스템의 봉인해제 등 크게 4가지 쟁점사안에 주목해야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쟁점이 명쾌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대화록 논란은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지원(e-知園) 사본 봉인해제 의혹
노무현 전 대통령측이 퇴임후 봉하마을에 갖고 있다 기록원에 넘긴 '이지원(e-知園)' 시스템 봉인이 뜯겨지고 2010년과 2011년 두차례 무단 접속한 흔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26일 노무현재단 사료팀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기록을 제공받기 위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을 당시 지정서고에 보관돼 있던 봉하 이지원시스템의 봉인이 해제돼 있었다"며 "시스템에 접속한 흔적도 두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즉각 봉인해제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게로 돌렸다. 또 대통령기록관의 기록물 관리와 신뢰성에 우려를 표명하며 철저한 진상파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병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국가기록원이)어떻게 관리했기에 이지원 기록과에서도 실종됐는지 의문이다. 남재준 국정원장 등 실세들은 (대화록이)국가기록원에 없을 것이라 흘려왔다. 불법폐기·훼손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며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만약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국기문란사태로 규정하고 검찰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노무현 정부의 책임소재를 가리겠다는 의도다.
특히 새누리당은 친노 인사들이 주장하는 이지원 재구동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지원을 재구동 하는데 10일 이상의 시일이 걸린다는게 큰 이유다. 여야가 이미 검색 기간을 22일까지로 합의했기 때문에 이지원 재구동을 위해선 여야간 추가 합의와 국회 의결이 필요하다.
◇NLL대화록 국정원만 보관하고 있었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만 보관하고 있었다는 의혹도 해소돼야 할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국정원에서 관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등의 검찰 진술 때문이다.
조 전 비서관은 2007년 10월2~4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기록을 맡았다. 서울로 귀환한 직후 회담 배석자인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대화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논란을 일시에 해소시켜줄 수 있는 인물이지만 현재까지 두문불출하며 행방이 묘연하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2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새누리당 정문헌·이철우 의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NLL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할 당시 참고인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 관리 주체를 국정원으로 한정지었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말이 사실일 경우 여야는 헛힘만 뺀 셈이다. 애당초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원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록 기록원으로 넘어갔나? 기록원에서 실종됐나?
대화록이 애당초 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이는 여권의 주장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잠시 제기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것으로 기록관에 넘기지 않고 봉하마을로 가져가 유실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관 누락이 사실일 경우 노 전 대통령측은 현행법을 어기고 자료를 없앴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검찰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록원에서 사라졌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는 야권에서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기록물 변환·관리 과정에서 대통령기록관이 훼손했거나 방치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뭔가 작업을 하지 않았느냐는 의심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측은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5년 임기의 기록관장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8개여월만에 바꾼 것을 의혹의 근거로 들고 있다.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은 "참여정부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실 출신의 지정기록물 담당 과장도 (기록관장과) 함께 쫓겨났다"며 "이후 기록물이 어떻게 관리되었는지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회의록 폐기는 불가능할뿐더러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고 일축했다.
◇NLL대화록 부분 삭제됐나?
참여정부측이 대통령 기록물을 기록원에 넘길 당시 NLL대화록 부분만 삭제됐는지도 의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기록물 이관 업무 등을 맡았던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은 청와대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을 통해 보고됐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그해 10월 국정원에서 초안이 청와대에 보고된 이후 안보정책실의 최종 보완 작업을 거쳐 12월쯤 청와대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조명균 당시 안보정책비서관이 최종본을 주도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최종본은 안보실장을 거쳐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후 대통령의 보고와 재가를 거친 이지원 문서는 1비서실에서 기록물을 담당했던 이창우 당시 행정관에 의해 지정기록물로 처리됐고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 기록물이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고 NLL대화록 부분은 누락시킨채 기록원으로 넘겨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을 폐기할 경우 대통령기록 평가심의회의 검토후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에서 최종 심의·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이 과정을 지키지 않은채 대화록을 기록원으로 이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기록물 이관 업무 등을 맡았던 청와대 관계자들과 민주당은 강하게 부인했다.
이들은 "참여정부의 청와대는 이지원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가 완결된 문서는 빠짐없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도록 돼 있다"며 "국정원에 회의록 사본을 남긴 참여정부가 대통령기록관에 회의록을 이관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