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정기록 서고   ©뉴시스

정치권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문제를 놓고 책임공방을 치열하게 벌이며 논란을 거듭하는 탓에 정작 주요한 민생현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북방한계선) 포기 취지 발언 여부의 진실을 밝혀줄 핵심자료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존재 여부가 아직 최종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정치권은 벌써 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여야는 차분한 논의와 타협보다는 네탓 공방만을 벌이며 여의도를 정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회의록 증발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책임론을 놓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양보없는 대결을 벌이고 있다.

타협은 없고 소모적인 공방만 주고받는 상황에서 여야가 강조한 국민과 민생을 위한 정치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 절반가량이 대화록 진실공방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낸 점도 이같은 정치 공방에 영향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즉 한국갤럽이 지난 15~18일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1215명을 대상으로 NLL(서해 북방한계선) 대화록 진실 공방의 이후 전개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진실을 끝까지 밝혀야 한다'는 응답은 38%, '꼭 그럴 필요 없다'는 응답이 47%로 나타났다. 15%는 의견표명을 유보한 것.

◇여야, 책임론 놓고 사생결단식 정쟁대결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그럼에도 이 사태를 놓고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본격적인 입씨름은 회의록 증발논란이 시작된 18일부터 시작됐다.

여야는 대화록에 대한 파기나 훼손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대화록이 없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상대방의 책임을 언급하며 격렬한 난타전을 지속하고 있다.

민주당과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들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과 관련해 참여정부 폐기설을 일축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을 주도했고 국가정보원에 대화록 사본을 남기도록 한 점 등으로 미뤄 참여정부의 삭제·폐기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적반하장이라며 참여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라고 맹비난 했다. 회의록 원본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유실·폐기 가능성과 책임 문제를 노무현 정부에 돌린 것이다.

책임공방은 19일도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사실상 '대화록 부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는 심각한 국기문란 사태에 해당한다며 강도높은 비난공세를 퍼부었다.

민주당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대여 공세를 자제했지만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을 꺾지는 않았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주요당직자회의를 열고 "현재까지 모든 정황을 종합해볼 때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만일 사실로 밝혀진다면 사초가 없어진 국기문란의 중대한 사태"라고 말했다.

최 원내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대화록 실종의 책임을 마치 이명박 정부가 임의로 폐기했다는 듯 몰아가고 있다"며 "대화록을 22일까지 찾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없어진 경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책임소재를 분명히 규명하고 관련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대응방침을 밝혔다.

대화록 열람위원 여당 대표인 황진하 의원도 이날 회의에서 "이 문건을 생산하고 자료를 갖고 있던 정부 책임자들이 민주당 소속의 참여정부 관계자들"이라며 "민주당이 이 문건을 찾아내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한다. 밝힐 것을 밝히고 국민 우려를 해소시켜야 한다"고 민주당에 책임을 돌렸다.

민주당 지도부도 밀리지 않았다. 김한길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여야가 다음주까지 더 찾기로 한만큼 기다려보겠다"면서도 "회의록이 유출돼 가공되고 대선과정에서 남독됐으며 정부기관이 사본을 공개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본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찾을 수 없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난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도 "예단과 억측을 말고 원본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기록물을 찾지 못하자 안도하고 반색하는 분위기도 (새누리당 내에)있다고 한다. 그 이유와 의도가 의문스럽다. 참여정부 출신 대통령기록관장을 보직정지 해임시키고 MB정부 출신으로 교체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며 새누리당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정치권 소모적 논쟁구도 지속되는 이유는?

최근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새롭게 나온 이슈가 먼저 나온 이슈를 집어 삼키며 정쟁과 소모전을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여야는 지난달 6월국회에서 국가정보원이 대통령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을 두고 국정조사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갑자기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했느냐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야간 사생결단식 대결구도가 이어지던 중 끝내 국회가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기록물을 열어보기로 했지만 정작 회의록이 증발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같은 진실공방은 또다른 정치적 공방을 낳을 수밖에 없어 정치권 안팎에서는 우려가 많다. 보는 시각과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모적 논쟁 대신 민생위한 정치"…자성론

결국 이번 사태도 책임소재를 놓고 치열한 소모적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소모적인 정쟁으로 흘러가면서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민생을 위해서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는 자성도 나온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 민생의 위기가 묻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며 "당장 7월의 물폭탄이 농작물 침수 등으로 또 8월의 물가대란으로 이어질 조짐이 있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값이 47주째 연속적으로 오름세인 것이 전세대란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것이 또 가계부채 대란을 악화시킬 것이다. 민생은 이렇게 고단한데 박근혜정부의 상황인식은 매우 안이해 보인다"며 "4대 중증질환 국가책임과 보육의 국가책임을 비롯해 기초노령연금 두배 인상과 지역별 주요 공약 등이 뒤집히거나 후퇴하고 있다. 심각한 민생위기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같은당 이용섭 의원은 "(대화록 증발 논란)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정치권에서는 니가 잘못했느니 누가 의심스럽다느니 이런 공방 벌이는 것 자체가 꼴불견"이라며 "우선은 섣부른 추정이나 정치적 책임 떠넘기기 보다는 저는 찾는 노력을 더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중요한 국가 기록이 없다고 하니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지만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진실 규명보다는 상대방을 궁지로 몰려고 하는 정쟁으로 보일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이제 여야는 빠지고 국가기록원은 왜 못 찾는지를 규명해야 한다"며 "이런 식으로 정쟁을 계속하면 여야를 싸잡아서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여야 대표가 만나 여기서 그치자고 합의해야 한다"며 "지금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데 여야가 정쟁으로만 가는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분노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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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대화록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