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의 입이 다시 열렸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18일 새벽 미국 의회 증언에 나섰다.
버냉키 의장은 그동안 오락가락한 발언으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지난 5월22일과 6월19일에는 조기 출구전략을 시사해 '버냉키 쇼크'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이에 반해 지난 10일 전미경제연구소애서의 연설에서는 "양적완화정책이 당분간 필요하다"고 말하는 등 한달새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의회 증언에서 그는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성급한 발언을 자제하는 대신 시장 우호적인 발언에 초점을 맞췄다.
다만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연말 경이나 내년초에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예상하던 9~10월에 비해서도 길게는 3개월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라 조기 출구전략에 따른 부작용을 희석시키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적완화 축소나 유지가 '양면의 칼'이라는 점 때문이다.
양적완화 고수는 일단 미 정부가 푼돈을 거둬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3차 양적완화에서만 매월 우리나라돈으로 96조원(850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국채와 장기모기지채권을 사들였다. 이 자금들로 미국 경제는 회복세를 찾았고 자금의 일부는 신흥국으로 흘러 세계경제를 부양했다.
신흥국들의 경제성장률은 선진국이 3% 미만의 저성장률에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두자릿대를 넘는 쾌속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다 5, 6월 양적완화 축소 발언이 잇따라 나오자 신흥국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우리 정부도 급격한 자본유출을 우려하는 등 긴장도가 높아졌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 16일 "초완화적(ultra-loose monetary policy) 통화정책은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는 정상으로 되돌려져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며 버냉키의 조급함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의 성급한 출구전략이 다른 나라의 급격한 자본유출, 금리급등 등 의도치 않은 부정적 파급효과(negative spillover)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렇다고 그가 양적완화 유지 발언을 했다 해서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공개된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반수 가까운 이사들이 양적완화 축소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돈을 풀지 않아도 미국 경제가 충분히 회복했다고 인지한 것이다.
그러나 미 연준이 양적완화시기를 보는 지표는 기대치에 못미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의 실질실업률은 7.6%로 연준의 목표치 6.5%보다 높았다. 소비자물가지수도 1.8%로 연준기준 2%대에 근접했으나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빠른 시간내 기형적인 통화흐름을 정상으로 바꿔야 하는데 아직 때가 이른가하는 자조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번 양적완화 유지 발언이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내경제 전문가들은 버냉키가 어떤 발언을 해도 우리가 감내할 정도는 된다고 말하고 있다. 만의 하나 축소에 들어갔다해도 당장은 혼란을 겪겠지만 오래지 않아 안정을 찾을 것이란 말이다.
송두한 농협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미국 주택산업이 지난 2006년 고점을 찍고 하강해 6년간 35%가 감소한 후 2012년 부터 11%가 오르는 등 상승국면을 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금리상승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며 "출구전략에 대한 영향은 통화정책 기조가 잡혔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만 우리는 이미 방향을 잡은 상태"라고 말해 큰 영향이 없을 것임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미국 출구전략의 가시화로 국제투자자금의 흐름이 불안해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있지만 국내금융시장의 민감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며 "미국의 출구전략이 경기호전을 반영해 이루어진데다 국내금융시장이 높아진 대외건전성을 바탕으로 내성이 증대됐다"고 우려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