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제1의 적”으로 규정하고 지난 연말부터 도발과 전쟁 위협 수위를 높여 온 북한 김정은이 이번엔 헌법 개정을 들고 나왔다.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전쟁 시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건데 우리를 통일의 상대인 동족(同族)이 아닌 전쟁으로 정복해야 할 적(敵)으로 헌법에 명시하겠다는 게 골자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은 “공화국이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 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한 이상 주권행사 영역을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한 배경엔 한미동맹의 ‘철통같은’ 억제력 때문에 북한이 소규모 도발은 하되 전면전을 일으키긴 힘들 것이란 국제 분석을 반박하고 언제든 무력 전쟁을 일으킬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걸 과시하려는 성격이 짙다. 이미 모든 전쟁 준비태세를 갖춘 이상 마지막 단계로 헌법상의 동족 개념 폐기하고 정복을 전제로 한 적대적 상대로 명문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볼 때 김정은이 그냥 해보는 큰소리는 아닌 것 같다.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포 사격을 하더니 지난 15일엔 한미일이 요격하기가 어려운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시험 발사한 게 대표적이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5일 보도한 대로 이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성공한 게 사실이라면 한·미·일 미사일 방어체계(MD)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걸 의미한다.
이번에 발사한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은 북한이 앞서 3차례 시험 발사한 미사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한 타격 능력을 갖췄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공식 발표가 사실이라면 서울은 1분 이내 타격이 가능하고,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는 물론 미국 괌 기지도 타격할 수 있다고 하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에선 조심스럽게 핵전쟁 가능성까지 거론할 정도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과거 북핵 협상을 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최근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며 북한이 일으킬 핵전쟁 가능성에 대비할 것을 경고했다.
실제 김정은은 “0.001mm라도 침범하면 곧 전쟁 도발”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전초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북한이 전쟁할 명분을 쌓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은 조금 다르다. 체제 유지가 급한 만큼 남북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논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쟁 위협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김정은이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이란 전제를 단 것에서 어느 정도 현실에 근접해 보인다. 전쟁을 피할 생각은 없지만 ‘바라지 않는다’고 한 점으로 볼 때 오히려 전쟁이 발발할까 봐 두려워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도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극초음속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며 연일 전쟁 준비를 마친 것처럼 큰소리를 치는 건 체제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4월 총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려는 속셈이 없지 않다. 북한은 과거에도 선거철이 되면 유독 도발을 많이 한 전력이 있다.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었던 2020년만 해도 21대 총선을 앞둔 3월에만 초대형 방사포를 1주일 간격으로 4차례, 총 9발을 쏘는 등 총선 전날까지 도발을 일삼았다. 북한의 천안함을 기습 폭침한 것도 2010년 6월 지방 선거 직전이었다.
북한의 의도와 속셈이 무엇이든 중요한 건 우리의 대비태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며 “‘전쟁이냐 평화냐’를 협박하는 재래의 위장 평화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북한의) 도발 위협에 굴복해 얻는 가짜 평화는 우리 안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며 “우리 국민과 정부는 하나가 되어 북한 정권의 기만전술과 선전, 선동을 물리쳐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 가지 걸리는 건 우리에겐 없는 핵무기를 북한이 가졌고, 저들이 유사시에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또한 두려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순간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는 것이기에 쉽사리 쓰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북한의 전쟁 협박이 진심이냐 허풍이냐, 핵무기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북한의 어떤 도발도 막아내겠다는 전국민적인 의지와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이 굳건히 버티는 한 북한은 어떤 불장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6.25때 이미 예방주사를 맞은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의 토양 위에 찬란한 번영의 꽃을 피웠다. 반면에 북한은 3대 세습 공산 독재로 인민의 공적(公敵)이 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은 이미 북한 김정은이 핵무기 하나로 감히 넘볼 나라와 국민이 아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