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15: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수15: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함께 모여 살다 보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살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영향력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영향력의 강도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내용과 결과도 천차만별입니다.
지난 주 초에 있었던 아시아나 항공기의 착륙사고는 매우 큰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사망자가 적었습니다. 그것은 사고현장에서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뛰었던 승무원들과 구조요원들의 영웅적 활동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여승무원들의 초인적인 구조활동은 전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반면에, 이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짐을 찾겠다며 비행기의 복도를 막고 서서 버티던 승객들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뒤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승객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몰상식한 행위였습니다. 이처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끼칩니다.
희망이 가득한 행복한 사회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입니다. 과연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쳐야 할까요?
1. 다른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 (15:13-19)
여호수아 15장은 요단강 서편의 지파들 중 '유다 지파'가 차지할 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단 유다 지파에게 상당히 넓은 땅이 배정된 가운데, 여호수아 14장에 이어 또 다시 '갈렙'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처럼, '아르바'라는 거인의 가족이 살았던 '헤브론'을 점령한 갈렙은 그 기세를 몰아 가나안 남부의 산악지대를 계속하여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곧 헤브론 못지않게 공격하기 어려운 '기럇 세벨'이라는 성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헤브론을 공격할 때까지만 해도 기세만만 했던 갈렙도 버거움을 느꼈는지, 갑자기 자신의 딸 '악사'를 내걸고 싸움을 독려하였습니다.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15:16).
이처럼 갈렙이 자신의 딸을 내걸고 전투를 독려했더니, 갈렙의 조카인 '옷니엘'이 나서서 '기럇 세벨'을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촌끼리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사촌끼리 결혼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중동국가에서는 아직도 시행되고 있는 관습입니다.
마침내 갈렙의 딸 '악사'가 시집갈 때가 되자, 악사는 남편 '옷니엘'에게 조언을 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밭을 달라고 말씀하세요.' 당시에 밭은 목축이나 농사를 할 수 있는 생활의 중요한 밑천이었고, 땅 주인은 지역사회의 리더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의 사람들은 땅을 차지하는 것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악사는 당시의 남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좋은 밭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갈렙은 딸 부부에게 황량한 불모지였던 '네겝'을 주었습니다.
네겝은 가나안의 남쪽 끝 지역인데, 한여름이면 40도를 넘어서고, 한겨울에도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뜨거운 곳입니다. 게다가 연평균 강수량이 200밀리미터에 불과하고, 1년에 비 오는 날이 평균 40일 정도에 불과한 땅입니다.
한마디로 네겝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누구도 탐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아마도 갈렙이 딸 부부에게 네겝을 준 것은, '무엇이든 땀 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악사는 도전정신이 남달랐던 갈렙의 딸답게 아버지의 뜻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악사가 직접 아버지 갈렙에게 또 다른 요청을 하였습니다.
'좋아요, 아버지. 하지만 이왕 사막 땅을 주시려거든 샘물 소유권도 주세요.'
한마디로 아버지의 뜻대로 불모지 사막에서 한번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갈렙은 딸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주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옷니엘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 장인 어른도 너무 하시는군! 도대체 이 메마른 사막에서 무엇을 하며 살란 말인가? 그리고 내 아내는 장인에게 항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이 불모지에 들어가 어떻게 살겠다는 건가?'
이렇게 투덜대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먼 훗날, 여호수아가 사망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심각하게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웃나라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배하게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옷니엘은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로 들어간 탓에, 비록 삶은 고되었을지 몰라도 신앙만은 순수하게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심각한 국가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옷니엘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 즉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신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만일 갈렙이 딸 악사의 처음 요청대로 좋은 밭을 주었거나, 악사가 아버지의 결정을 거부하고 기름진 땅을 찾아 나섰더라면, 당장은 옷니엘이 부자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마침내 다른 이스라엘 백성처럼 타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갈렙과 악사 부녀(父女) 덕에 옷니엘은 사막 땅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한 사람의 힘센 군인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영웅'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갈렙과 악사 부녀는 옷니엘의 진정한 성공을 이끌어낸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최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사망설이 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건강상태가 최근 너무나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남아공의 인종통합을 이루어낸 인물입니다.
남아공에서 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인종분리정책은 백인들을 제외한 모든 인종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합법적으로 빼앗았습니다.
다른 인종들은 백인들과 결혼도 할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특히 흑인들은 백인들의 거주지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고, 백인들과 같은 시설을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의 투표권도 빼앗고, 목숨도 함부로 빼앗는 등, 사실상 동물처럼 취급하였습니다.
당연히 백인들과 흑인들의 사이의 감정은 매우 좋지 않게 되었고, 두 인종들은 곳곳에서 유혈충돌을 일으켰습니다.
만델라도 젊은 시절 흑인 군사조직을 만들어 사령관의 역할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체포되어 '국가반역죄'의 죄목으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고, 수십 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감옥 속에서 인종들 사이의 증오와 충돌이 결코 답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1990년에 약 30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만델라는 남아공의 진정한 평화와 통합을 위해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백인들도, 흑인들도 만델라의 주장에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특히 동료 흑인들은 결사항전을 외치며 격렬하게 반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백인 정부를 평화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었고, 그의 공로를 인정한 국제사회는 1993년에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리고 1994년에는 남아공의 모든 인종들이 참여하는 총선이 열렸고, 만델라는 남아공 국민통합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후, 만델라 대통령은 '화해와 관용'을 외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든 백인들을 기꺼이 사면해주었고, 마침내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남아공의 인종통합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다른 사람들을 진정한 성공과 행복의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당장은 성공하는 길 같지만 결국은 망하는 길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마지막에 웃는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 친구, 이웃들을 어디로 이끌고 있습니까?
2.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방해하는 사람 (15:63; 참고 18:28; 사사기 1:21)
갈렙의 이야기 후에는 유다의 성읍들이 거명되고, 그 끝에는 이러한 결론이 달려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15:63).
즉, 유다 지파가 자신들에게 배정된 웬만한 지역들은 다 점령했지만 유독 '예루살렘'은 제대로 점령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점령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공격하기 힘든 성읍들에서도 큰 승리를 거두었던 유다 지파가 왜 예루살렘에서는 완전 점령에 실패하고 말았을까요?
그런데, 사실 이것은 유다 지파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예루살렘이 유다 지파에게 배정되었지만, 유다 지파는 그 지역을 베냐민 지파에게 양보하였습니다.
"여부스 곧 예루살렘 …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었더라"(18:28).
그러므로, 예루살렘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은 유다 지파가 아닌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사사기 1:21).
하지만, 조금 전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성경은 '(원소유권자였던)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에게 커다란 실패의 오점을 남긴, 즉 유다 지파의 성공을 방해한 지파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X맨'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었습니다. 매회마다 'X맨'의 PD는 출연자들 중의 한 명에게 매우 은밀한 방법으로 'X맨'의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X맨'의 역할은 간단했습니다. 겉으로는 자신의 팀을 위해 열심히 뛰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팀이 패배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경기를 마친 후, 출연자들은 'X맨'이 누구였는지를 추정하여 지목했는데, 진짜 'X맨'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도 'X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거나 특정 집단에 참여하여, 해당 개인이나 집단을 실패와 좌절의 수렁에 빠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우리사회의 유명인사들이 자신들의 소속집단을 위한답시고 나섰다가 거꾸로 해당 집단을 코너에 몰리도록 만든 경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 초에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의 대참사를 놓고도, 한 방송국의 앵커가 '한국인이 사망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식의 발언을 해서, 수많은 중국인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訪中)성과도 퇴색되었고, 우리나라의 외교부까지 나서서 유감을 표명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매사의 언행에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무슨 일에든 열정만 가지고 나섰다가는 오히려 원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은커녕 누를 끼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과 주변상황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3. 주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 (16:10 vs. 17:3-6)
요단강 서편의 지파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지파들은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지파들이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유다 지파는 가나안의 남부지방을 차지한 반면, 므낫세 자손과 에브라임 자손으로 이루어진 요셉 지파는 가나안의 중부지방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는 베냐민 지파 때문에 예루살렘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반면, 요셉 지파는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낼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원주민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16:10).
그런데, 요셉 지파의 이런 행동은 다른 지파들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들도 자신들의 땅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아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은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시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요셉 지파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주 나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반면, 요셉 지파 중의 므낫세 자손 가운데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므낫세 자손의 '슬로브핫' 집안에는 아들은 없고 딸들만 있었는데,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슬로브핫'은 자식들 중 아무에게도 유산을 남겨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히 남성중심사회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딸은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슬로브핫의 집안은 대도 끊기고, 재산도 공중분해 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 상황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모세를 찾아가 자신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호소하며 자신들에게도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고 하시며, 집안에 아들이 없을 경우, 딸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 받도록 해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수십 년 후, 므낫세 자손이 자신들에게 배정된 땅을 실제로 나눌 때가 되자, 슬로브핫의 딸들은 여호수아 앞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허락하신 권리를 상기시켰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17:4).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도 남성들처럼 땅을 배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슬로브핫의 딸들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재산권 회복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들이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하여 첫걸음을 뗀,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슬로브핫의 딸들을 이스라엘 여성들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롤(role) 모델', 즉 '훌륭한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각 분야에서 존경 받던 인물들이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에든 훌륭한 본보기가 있어야 뒤따르는 세대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히 우리사회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매우 심각하게 방황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도 수사당국이 한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단속했더니 그 사이트의 운영자는 놀랍게도 불과 12세의 초등학생이었습니다.그리고 이 사이트에 가입한 4천 명의 회원들에게 음란물들을 제공한 사람들의 상당수도 초등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트의 음란물들 속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소녀들은 1, 2 만원의 문화상품권을 얻기 위해 과감하게 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최근 서울에서도 유사한 단속에 있었는데, 불과 10세의 초등학생이 자신의 SNS의 팔로어 수를 늘여보겠다며, 수치심도 없이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실도 발각되었습니다.
이 초등학교 학생들이 누구에게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얻었겠습니까? 바로 우리 어른들을 보고 따라 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어른들이 좋은 본보기가 되기는커녕, 이 어린아이들이 돌이키기 힘든 수렁에 빠지도록 만드는 매우 나쁜 본보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7.11), 우리나라 여자 프로골프 역사의 거목 구옥희 씨가 57세의 연세로 별세하였습니다. 1978년에 프로골프에 입문한 구옥희 씨는 한국 프로골프에서는 20승, 일본 프로골프에서는 24승을 거두었고, 1988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LPGA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구옥희 씨는 마지막까지도 골프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비록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했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이렇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시다. 특히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만 발버둥치지 말고, 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들의 행복을 위하여 소중한 밑거름이 되는 삶을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