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번역) 신명기 7:7-11
7 주님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은, 당신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수가 가장 적은 민족입니다.
8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당신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들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약속을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당신들을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그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어 주신 것입니다.
9 그러므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천 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언약을 지키시며, 또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10 그러나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당장에 벌을 내려서 그를 멸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징벌을 늦추지 아니하십니다.
11 그러므로 당신들은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내리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잘 지켜야 합니다."(새번역) 로마서 6:3~8
3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2)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4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5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6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7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표준새번역) 마태복음서 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17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8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3)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신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 똑같은 것이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례 받으셨죠? 세례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래서 죽는 것을 통해서 한 몸이 되고, 죽은 그리스도가 부활했음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또 한 몸이 되고, 그것이 세례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하고 이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교인된 증거가 아닙니다. 세례 받아도 참 좋은데요, 받지 않고 견디시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받고 싶으시면 제대로 받으십시오. 세례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살겠습니다는 약속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약속 받으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증으로 내가 세례를 베풀었으니, 이제 나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여라.
두 번째는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여 한 몸이 된 우리는 이제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꿔야 합니다. 세계를 보는 모든 관점이 세례에서 나와야 합니다. 죽은 자와 함께 죽고, 산자와 함께 산 이 명확한 십자가와 부활을 내 인생관의 중심으로 삼으십시오. 우리 세계관의 중심으로 삼고 과거와 미래를 보십시오.
여러분 모두 호적 있으시지요? 사람마다 가계(家系)와 호적이 있습니다. 호적에 등록이 되어 있어야 유산도 받습니다. 또 조상제사도 지냅니다. 그런가하면 미래에 있을 가계부가 분명히 있습니다. 호적에 올린 사람을 중심으로 가족의 이름이 정해지지, 호적에 올라와 있지 않는 사람이름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호적에 올린 사람만이 한 가족의 적자가 됩니다. 사람은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몸의 역사를 살아갑니다. 몸의 역사를 살아가는 공간이 이 땅입니다.
그런가하면 사람은 몸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영으로 살고, 혼으로 삽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한테, 우리한테 준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 분이 우리 몸속에 있으면 몸속에 사는 역사에도 창조주 하나님이 계실 것이고, 영으로 사는 곳에도 창조주 하나님이 계실 것이고.
우리는 두 세계를 살아갑니다. 몸으로 살아가는 세계가 법적으로, 호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 영으로 살아가는 세계의 호적은 세례 그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요식행위로 보지 마십시오. 세례 받은 자는 함께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또 살아나야 합니다. 죽긴 죽었으나 살아남이 없으면 그건 진정한 세례가 아닙니다. 살아났으나 죽지 않았으면 그건 또한 진정한 세례가 아닙니다. 그 표시는 함께 죽고 함께 산자는 함께 살아주시고 함께 죽어주신 그 분의 몸과 그 분의 피를 보혈로 알고, 구원의 몸으로 알고 함께 먹고 마셔야 합니다.
세례자가 참여하는 오늘 성만찬이 있습니다. 성만찬 은 떡과 포도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외형일 뿐입니다. 진실은 오늘 내가 당신과 함께 죽겠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과 함께 살아나겠습니다. 죽음과 생명의 역사를 같이 맛보는 것이 세례요, 세례 받은 자가 하는 것이 성만찬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사도바울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이런 뜻 입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이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베풀지요.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WCC 회의가 열리면 항상 논쟁이 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영세를 받고, 장로교에서 세례를 받고, 감리교에서 세례를 받고, 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면, 서로 받은 세례를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경동교회에서 받은 세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경동교회는 천주교 영세를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이유는 세례를 베푼 분의 권위 때문인데 우선 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쟁점중의 하나가 어떤 교회에서는 '예수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하고 세례를 베푸는 곳도 있어요. 그것은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틀린 이야기입니다.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이름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기를 결단하면, 우리 삶도 십자가 부활 중심으로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게 되고, 하나님이 주인이신 그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제가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면 세례를 받으면 제가 하나님 나라 호적에 등록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 호적에 등록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나를 양자 삼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는 양녀 삼았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육으로 낳지 않으셨잖아요. 영으로만 낳으셨잖아요. 제가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드리잖아요. 몸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 나를, 우리를 양자와 양녀로 삼으셔서 무엇을 주셨느냐 하면 하나님이 이루셨던 모든 세계 역사, 성경에 쓰여 있는 모든 역사를 다 저한테, 우리한테 상속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한테서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만 예수님 오시기 이전의 역사는 성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부터 역사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전부터 역사가 성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가 예수님 안에서 수렴이 돼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 부활로 끝날 역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나 대신 성령을 보낼 테니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앞으로 예수가 재림 할 때까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이 땅에 임할 때까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열심히 살아라. 그 나라도 미리 상속주마. 이것이 세례입니다.
세례 받는 자는 태초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모든 역사를 저의, 우리의 역사로 선물로 받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공로로 받고 얼마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이루어질 무한대의 나라를 상속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미래 역사까지도 먼저 선물로 받는 확증이 세례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는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미래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 받아야 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저의 상속대상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것입니다.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닙니다. 우리한테 이렇게 주시면서 내가 과거부터 미래 끝날 때까지 이 모든 시작과 마감의 역사를 과거에도 함께 했듯이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세상 끝날 까지 세상 처음부터 세상 끝날 까지 시간입니다. 창조부터 마지막 완성까지입니다. 또 창조가 시작된 처음 에덴동산부터 마지막 이루어지는 하늘나라까지 온통 공간을 다 세례 받은 너희에게 선물로 주마. 과거도 주고, 미래도 주마. 우리가 이 호적에 오르면 조상들의 과거를 제가 다 받습니다. 제가 미래 후손들의 짐도 기도도 제가 받습니다. 그렇게 중요합니다. 세례도 그렇게 중요합니다.
이 분 말씀이 세례는 요식행위가 아니다. 삶의 결단이다. 축복을 완성하는 그릇이다. 세례 받은 자는 그렇게 살아야 하고, 세례 받으면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함께 선물로, 유산으로 받는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세례 받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경동교회 교인되었다고 세례 증명서를 발급 받는 것은 아주 요식행위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선물로 받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으로 사시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그만 두실 겁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결단하세요. 내 역사로 하나님 역사의 과정을 다 밟고 싶으시면, 구약에 있는 모든 역사를 다 나의 살아있는 믿음의 역사로 받고 싶으시면, 세례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성만찬에서 그 역사도 함께 드리십시오.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무한대 역사를, 성령이 주관하는 역사를 선물로 받고 싶으시면, 세례에 감사하고, 성만찬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도 먹고, 미래도 먹고, 과거도 마시고, 미래도 마십시오.
오늘 이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시면서 부탁이 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처음공간부터 마지막 공간까지, 처음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내가 항상 함께 있겠다. 나와 이 선물의 역사를 공유하자. 그 대신 나와 공유하는 그대들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분부한 계명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오시기전에는 그 계명이 십계명이었습니다. 예수님 이후부터는 십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로 요약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지키면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세상 끝 장소까지 항상 함께 있으마. 오늘 구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셨는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오늘 구약의 말씀이 나왔냐면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모든 구약의 있던 역사를 우리들이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받은 역사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축복을 주셨고, 동행하셨는지를 배워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어제 있었던 중동의 역사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야 할 본보기 역사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그 중에 신명기서 말씀을 여러분이 봉독하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사랑해서 선택했고, 늘 함께 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민족 중에서 잘난 백성이라서가 아니라, 수가 많은 다수에 속하는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작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그렇게 선택하신다는 교훈입니다. 내가 잘났으니까, 내가 부자니까, 내가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니까. 나를 하나님 나라의 후손으로 택하셨습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소수 민족이지만 온 세상을 구원할 아주 힘 있는, 아주 착한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그 말을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소수 민족을 아주 능력이 많은 민족으로 만들어 택하셨다. 요즘말로 창조적 소수입니다. 세계 역사는 다수가 이끄는 역사도 있지만, 대부분 소수가 이끌었습니다. 아무런 소수가 아니라 창조적 역량을 갖고 있는 소수가 이끌었습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창조적 사람으로 택함 받는다. 하나님 사랑의 전제입니다. 그렇게 사랑 받는 사람은 어떤 사고와 생활방식을 갖은 사람이냐면 모세와 같은 사람입니다. 모세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다.
오늘 신명기 말씀에 보면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시킨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과거에도 함께했던 하나님, 앞으로도 함께 하실 것이다. 출애굽 역사를 보고 배워라. 제가 출애굽 역사 중에서도 오늘은 모세이야기를 하지 않고 모세를 태어나게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전체를 보면 모세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모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생각이 훌륭한 자식은 엄마에게 나왔지. 하늘에서 떨어진 것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말씀을 쓰라고 하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많이 있을 겁니다.
모세의 어머니 이름은 요게벳이며, 레위지파 여자로 남편의 이름은 아므람입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모세를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여성 중에 두 번째로 나온 사람이 요게벳입니다. 저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성경에 요게벳에 관해 모두 두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잘 언급을 안했는데 사실은 모세의 어머니는 모성애의 극치이며, 지혜의 본보기입니다. 요게벳과 남편이 아이를 셋을 낳았습니다. 딸 하나와, 아들 둘입니다. 딸 이름은 미리암, 둘째 아들 이름이 아론, 셋째 아들 막내가 모세입니다. 둘째 아론을 낳을 때까지는 정치적인 상황이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셋째 모세를 낳을 때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집트 바로 왕이 칙령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히브리 민족의 씨앗을 말려야 하겠다. 더 이상 히브리 이방 족속의 세력이 커져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내아이가 나면 무조건 죽여라는 왕의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낳고 보니 아주 사랑스럽고 잘생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머니가 지혜를 발휘합니다. 아마 기도하며 지혜를 간구했을 것입니다. 갈대로 만든 상자를 마련해 가지고, 갈대를 잇는 중간 틈새를 방수제로 바릅니다. 방수제는 역청이었으며, 역청은 사해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아스팔트와 똑같습니다. 아스팔트 원료인 역청을 가져다 바르고, 또 송진을 가져다 방수처리를 합니다. 그 후 아이를 누이고, 뚜껑을 닿아 나일강가로 보냈습니다. 나일강에 수영하러 온 공주가 상자를 발견하고 열어 보니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표현이 바로왕은 히브리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했는데, 그 왕의 딸인 이 공주는 뚜껑을 열고 하는 첫 소리입니다. 이 아이가 히브리 사내 아이 맞지? 하녀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살려라! 반대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아버지는 죽여라. 딸은 살려라. 그 광경을 보던 미리암이 쫓아가 히브리 아인인데, 이 아이 젖을 먹여줄 사람이 있습니다. 공주는 추천해 보라고 합니다. 미리암은 자기 엄마를 추천합니다. 엄마가 젖을 먹여 상당히 큰 다음 모세를 왕국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되어있습니다.
히브리 전통에 의하면 세 살에서 네 살까지는 모유를 먹이고, 모유가 끝나면 이유식을 합니다. 아마 3~4세에 모유가 끝나고 공주에게 갔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죽임 당하는 게 아니라 왕궁에서 양자된 아들로 왕자처럼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실래요? 히브리 민족의 한 남자 아이가 죽음을 면하고, 왕국에 와서 앞으로 히브리 백성을 해방시킬 민족 지도자로 왕국에서 훈련 받는다. 리더쉽 훈련을 받습니다. 그 지혜의 원산지가 모세의 어머니입니다. 모세 어머니에게 지혜를 준 하나님은 무한대의 사랑을 베푸셔서 모세를 왕국에서 자라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시키고, 미래의 지도자로 가꾸어 주십니다.
창조적 소수 속에 어머니의 지혜는 필수적입니다. 창조적 소수의 창조력 속에 하나님의 사랑은 필수적입니다. 둘을 받고 난 모세는 민족의 지도자로, 온 세계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왕의 명령을 공주가 받아 거꾸로 살려내는 역사를 만듭니다. 이런 역사를 통해서 모세는 훌륭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이 추앙합니다.
왜 신명기서를 인용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사람의 상식과 역사의 틀을 넘어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역사를 우리보고 우리의 믿음의 역사로 받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백 년 동안, 수천 년 동안 살아 온 역사를 우리의 믿음의 전역사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앞으로 이루어질 수많은 세월에, 수많은 공간에 주님으로 함께 하시면서 우리한테 길을 열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제가 살아온 공간, 앞으로 살아갈 공간이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면 그 공간을 땅이라 이름한다고 하면, 그 땅은 나의 땅, 그리스도의 땅이 됩니다. 그 시간을 저희 시간이라고 하면 그 시간은 그리스도의 시간, 저의 시간, 시간과 공간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세례라고 이름 했습니다. 세례는 우리의 결단으로 지킵시다. 세례 받은 자로서 삽시다. 단, 하나님이 명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그래서 구원을 전파하고, 구원을 받읍시다. 이 사실을 우리가 지킵시다. 우리함께 지킵시다. 이 세상이 지킵시다. 전파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십시다. 그리스도의 과거 땅, 미래 땅 모두 우리가 상속 받을 유산들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