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신림동에서 ‘묻지마’ 칼부림으로 4명의 사상자가 났다. 8월엔 분당 서현역에서 이와 유사한 흉기 난동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14명이었다. 잇단 흉악 사건에 국민적 불안감이 고조되자 정부가 강력한 치안 대응책을 내놓고 있으나 근본 원인에 대한 처방과 치유가 우선이란 지적이 있다.

도심 번화가와 지하철역, 주택가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흉악 범죄에 시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모든 범죄에는 원인과 동기가 있기 마련인데 아무 이유도 없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피해자가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사회에 대한 적대감이나 타인에 대한 분풀이 수단으로 벌어지는 소위 ‘묻지마’ 범죄는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3건씩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보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살인·상해·폭행 사건 가운데 ‘사회에 대한 적대감’이 범행동기로 파악된 사건은 64건, ‘제3자 대상 분풀이’는 861건이었다.

이런 흉악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SNS 등엔 또 다른 범죄 예고가 이어지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와 전쟁을 선포한 이유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묻지마’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도입을 시사했다.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기본 질서를 깨트리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부로서는 이런 흉악 범죄에 억지력을 보강하는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경찰력을 집중 배치하고 경계와 순찰활동을 강화하는 것으로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종신형을 받은 흉악범에게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법 개정도 범죄자의 심리 위축보다는 당장 시민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측면이 있다.

흉악 범죄가 벌어지는 한편에서 “나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예고하는 게시글이 SNS상에서 쏟아지는 현상은 당혹스럽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묻지마’ 폭행과 살인 사건이 양극화에 따라 사회 구성원의 소외의식이 심화되면서 가진 자들에 대한 왜곡된 분노로 확장·표출됐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최근 사회적 고립감에 ‘외톨이’로 지내는 청년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면 이해가 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34만 명이었던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2021년 53만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공식 통계나 지원책 등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접근은 전무한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 흉악 범죄 피의자들이 ‘은둔형 외톨이’임이 밝혀지면서 이들에게 ‘예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게 더 큰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회적 낙인이 이들을 오히려 더 움츠러들게 하고 음지로 숨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사회 혹은 가족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주지 못했을 때 다가오는 압박감, 사회적 비난이 ‘은둔형 외톨이’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이들이 자기의 짐을 스스로 벗고 사회로 복귀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누군가 옆에서 용기를 북돋워 주는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서비스 두 가지가 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 만들어주기, 직업이나 자립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분당 한신교회에서 열린 한국실천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선 이런 이들을 위해 교회가 지역 사회 소외계층을 돌보는 상담센터 역할로서 공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화여대 구본경 박사는 강연에서 “신림동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는 범행을 저지른 이유로 ‘힘들어서 그랬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등으로 답했다”며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구성원들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정신 건강을 악화시켜 범죄 발생률 상승시키는 원인으로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거론했다.

사회적 양극화 문제는 우리 사회 오랜 숙제 중 하나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21배로 팬데믹 이전보다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제적 불균형이 불평등을 심화시켜 범죄 등 사회적 분열로 이어지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양극화 문제는 국가가 온갖 정책을 동원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회가 공공성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역할을 한다면 국가가 진 짐을 한결 덜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돕는 데 앞장서왔다. 그런 교회의 노력이 취약 계층의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는 일에까지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면 양극화로 치닫는 현대 사회에 얼마든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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