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케시마 자료실에 소장된 한국 서적들
(마쓰에=연합뉴스)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자료실에 조선왕조실록(검은색 커버)을 비롯한 한국 서적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8월12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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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독도에 관한 국내용 연구나 주장은 흘러넘칠 정도로 많지만 국제적으로도 통할지는 의문입니다. 독도를 일본과 영토 협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되겠지만, 역사 토론까지 피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재일동포 2세인 박병섭(69)씨는 일본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PC통신에 일본군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 관한 글을 올려놓는 일을 하다 약 10년전부터 독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전문 연구자로 인정받아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2007년에는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일본 시마네대학 명예교수와 함께 '독도=다케시마 논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그해 일본도서관협회의 선정도서에 포함됐다. 이렇게 빠져든 이유는 독도 문제가 보기보다 "속이 깊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도를 무조건 지키겠다는 게 아니라 우선 사실을 규명하자는 자세로 달려들었죠"
그가 내린 잠정 결론은 고(古)문헌에 나타나는 '우산도' 표기를 근거로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다가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산도 표기는 시대에 따라 자꾸만 변했다는 게 문제죠. 일본측은 울릉도 바로 옆에 있는 죽도를 우산도라고 표기한 지도 등을 부각시켜 '한국은 독도를 인식한 적이 없고, 다른 섬을 자기 섬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박씨는 오히려 울릉도와 독도(外一島)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확인한 1877년 메이지 정부의 지령이나 울릉도와 죽도, 석도(독도)를 울릉군에 포함시킨 1900년 대한제국 칙령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도가 우리 땅인 근거는 조선과 일본이 울릉도와 부속 도서인 독도가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 상당 기간 논란을 벌인 끝에 17세기 들어 조선의 영토라고 결론을 내렸고, 1877년 메이지 정부와 1900년 대한제국이 이를 다시 확인했다는 점이죠"
일본에서 독도를 지키고자 애써온 박씨에게 독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약점을 묻자 예상대로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항의하는데 그칠 뿐 기초 연구를 충실히 해서 국제적으로 통할 논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약한 듯 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7∼2009년의 제2차 한일 역사공동연구 당시 독도를 공동 연구주제에서 제외한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일본과 정치적으로 독도 영토 문제를 협의할 필요는 없지만, 연구 차원의 대화조차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인을 설득해서 독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인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논리를 가다듬고, 약점을 보완해야만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움직임에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항의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증거를 대기만 하면 따로 설득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일본 극우파의 위협을 고려해 사진을 싣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재일동포 노연구자의 호소에는 흥분은 전혀 섞여있지 않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