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미국발 쇼크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으로 증시와 외환시장이 한때 패닉(심리적 공황)에 빠졌지만, 채권 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전후해 국내 주식을 매도한 외국인들이 일부 자금을 환전해 한국을 빠져나가면서 주가와 원화 값이 동반 추락했지만, 외국인 자금 일부가 채권시장에 유입되면서 채권 값은 강세(금리 하락)를 보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한국의 재정 상태가 건전한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외화유동성이 대거 확충된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국내 채권에 대한 외국인의 러브콜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인 이탈로 주가ㆍ환율 롤러코스터
14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지난 1일 2,172.31이던 코스피 지수는 2일 미국의 더블딥(경기 회복 후 다시 침체) 우려로 급락세를 보이면서 2,120선으로 후퇴했고 5일에는 2,000선이 붕괴됐다.
코스피는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8일 1,900선마저 내줬고 9일 장중 1,600선까지 폭락한 뒤 연기금의 방어 노력으로 1,800선에 턱걸이했다.
이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최소 2년간 제로 금리를 유지한 채 경기 부양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 외국인의 투매가 진정되자 1,830선으로 상승했다.
지난 9일까지 6거래일간 주가 하락폭은 370.96포인트(17.1%)에 달했으며, 시가총액은 2009년 국민이 낸 세금 총액에 맞먹는 209조원가량이 사라졌다.
외국인이 6거래일간 주식을 3조2천560억원 순매도한 데 따른 것이다.
외국인이 주식을 매각한 자금을 달러화로 환전해 나가면서 원.달러 환율도 덩달아 출렁거렸다.
이달초 1,040원대 진입을 시도하던 원ㆍ달러 환율은 2일 이후 외국인이 대거 달러화 매수에 나서자 급등세로 돌아서 9일 장중 1,100원에 육박한 뒤 1,088.10원으로 거래를 마쳤고 이후로도 1,080원선에서 등락하고 있다.
다만 1,500원을 넘어섰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폭등 장세는 연출되지 않았다. 2일 이후 6거래일간 달러대비 원화 가치 하락률은 3.6%로 주가 하락률에 비해 4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2008년말 2천억달러 수준이던 외환보유액이 지난달말 현재 3천100억달러대로 늘어난데다 은행부문 외채가 2008년 9월말 2천195억달러에서 올해 3월말 1천919억달러로 276억달러 줄어드는 등 외화유동성이 보강된데 힘입은 것이다.
◇외국인, 국내 채권 선호‥한국 펀더멘털 신뢰
주식과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였지만 채권 가격은 나홀로 강세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외국인이 주식 매각 자금을 모두 환전하지 않은 채 상당 부분 국내 채권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2일 이후 9일까지 국내 채권을 총 1조1천353억원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11일에도 5천452억원을 순매수하는 등 국내 채권 매수를 지속하고 있다. 증시에서 주식 매도를 지속하면서 2일 이후 9거래일간 순매도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선 것과 대조적이다.
외국인의 채권 보유 비중은 2007년 11.1%에서 2008년 8.4%로 줄었지만 이후 증가세로 돌아서 지난 8일에는 17.3%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 가운데 중장기 투자자인 외국 중앙은행과 연금의 비중은 2008년 각각 8.0%와 0.8%에서 올해 7월 27.5%와 1.6%로 늘었다.
외국인의 채권 선호에 힘입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일 3.90%에서 10일 3.45%로 하락(채권값 상승)했고 AA-급 회사채 3년물 금리도 4.59%에서 4.18%로 떨어졌다.
국고채와 회사채 3년물 금리가 2008년 9월16일 5.49%와 7.09%에서 9월 26일 6.01%와 7.85%로 급등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채권을 매수한 것은 한국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세계 증시의 동반 하락세를 고려해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기는 했지만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본국으로 송금하지 않은 채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인식되는 한국 채권을 매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투자증권[005940] 박종연 연구원은 "재정위기 확산 우려에 따른 자금확보 차원에서 유럽계 금융기관이 자금을 인출했지만 투자 다변화를 꾀하는 신흥국 중앙은행 등 다른 외국계 기관들은 한국 내 투자를 줄일 필요가 없다"며 "지금은 2008년 신용 경색에 따른 위기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대선 선임연구원은 "외국인 자금이 채권으로 몰리는 것은 2008년과 같은 외화유동성 경색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유럽 국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며 "증시나 외환시장 향방은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가 관건이지만 한국 국채에 대한 외국인 수요는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