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부산아시안 게임부터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넘어 수많은 활동으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재즈퓨젼(JazzFusion) 음악가 양방언이 내달 데뷔 25+1주년 공연을 개최한다.

양방언
재즈퓨젼 뮤지션 양방언이 망원동 벨로주에서 25+1주년 공연과 새 앨범에 대해 소개하며, 신곡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튜브 채널 PMK에서 캡쳐

양방언은 21일 새 음원을 발표하며 서울 망원동 ‘벨로주’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25+1주년 공연과, 새로 추가된 곡 스태핑 아웃(stepping out)등 외 1곡 그리고, LP판으로 음원 발매 등 여러 새로운 앨범의 발매와 음악 그리고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간담회에서 그는 재일교포 특유의 일본식 억양이 석인 한국말로 인사하며 “아시다시피 나는 일본에 주거 한다. 왔다 갔다 하면서 14일 씩 28일, 7차례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격리를 해야 했다”며 “너무 힘들었다. 이제 거의 격리 전문가”고 유머 섞인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여러 제약이 있어서 여러 공연과 25주년 기획이 다 사라졌는데, 2022년도 그냥 지나가면 역시 안되지 않을까 싶어서...”라고 공연을 열게 된 취지를 얘기했다.

이어 LP판을 발매한 것에 대해 “나는 1960년생이다. 어릴 때 음악을 들은 것이 LP로 들었고, 뮤지션이 되어서도 LP로 들었다. 그래서 나의 음악인생에서 LP는 참 애착이 많다”라고 했다.

신곡 ‘스태핑 아웃’에 대해 “코로나로 실내에 격리되며,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길가를 신나게 가볍게, 오가는 사람과 하이파이브도 하면서, 거의 다 왔죠. 그런 곡이 ‘스테핑 아웃’이다. 나의 곡으로서는 좀 댄스적인(댄스풍의) 곡이다”고 했다.

내 달 12월 3~4일 서울 장동충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네오 유토피아’(Neo Utopia)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갖는 양방언은, 작년에 열었어야 하는 25주년 공연이 코로나로 인해 지연되어 올해 25+1로 공연을 연다고 설명했다.

양방언의 이력과 음악은 참 다채롭다. 국가적 행사인 아시안 게임이나 평창올림픽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MBC의 ‘차마고도’ 같은 다큐멘터리,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드라마 ‘상도’ 등 외에도 수많은 굵직한 활동을 이어왔다.

또한, 제일교포 2로서 일본에서 음악을 시작했지만, 홍콩의 국제적 배우 ‘성룡’의 영화 ‘썬더볼트’같은 영화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한·중·일의 아시아의 전역을 누비며 활동했다.

뿐만아니라 런던 필하모닉스, 로얄 필하모닉스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과의 협연으로 국제적 무대에서도 그 역량을 증명했다.

양방언의 국적은 한국 국적이다. 그러나 원래 그는 ‘조선적’이었다.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과는 다르다.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외국인 등록제도로서 편의상의 적으로 일본 법률상 무국적으로 간주된다. 이로 인해서 해외 이동의 제약이 많았던 그는 1999년 한국 국적을 얻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솔로로 데뷔한 후에 중화권에서 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일본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었다. 미국에서 믹싱 작업을 해야 하는데 국적 문제로 가는 게 너무 불편했죠. 그런데 마침 한국에서 작업 제안이 왔다. 내 음악 활동에 큰 의미가 됐다. 한국이 나를 성장시켜주고 내 음악을 키워줬다"고 고백 했다.

제주 출신의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양방언은 의사집안에서 태어나 음악가가 되길 원했으나 집안의 흐름에 따라 마취과 의사가 됐다. 그러나 그는 20대 중반 의사의 길을 저버리고 집안이 반대하는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1996년 일본에서 대뷔한 양방언은 ‘Dreams of Gate’를 선보여 다양한 장르를 뛰어넘는 음악을 선보이며 인지도를 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 아시안게임의 음악감독을 하며 그의 대표작 ‘Frontier’, ‘Flowers of 등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양방언의 음악세계는 기본적으로 재즈퓨전(Jazz Fusion)과 크로스오버(Crossover)음악으로 재즈를 기반해서 클래식, 락, 뉴에이지까지 실험적이고 다채로운 음악적 스팩트럼을 선보였다.

더불어 2000년도 초기에 그의 음악이 눈길을 끌었던 이유는 한국의 전통음악의 현대적 재해석을 세련된 모습으로 이뤘다는 것이다. 그 당시 대중적으로 전통음악을 그의 음악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재해석해 낸 음악은 많지 않았다. 사실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는 ‘크로스오버’라는 경계선적 음악이 낯설었던 시절이였다.

2000년 초기에 발매된 그의 대표곡 ‘Prince of Jeju’는 아버지의 고향 제주를 생각하며 만든 것이고, ‘Flowers of K’는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곳으로 K는 Korea의 약자로 ‘한국의 꽃’ 즉, 한국의 어머니들을 꽃으로 비유해 만든 곡이다.

기본적으로 특유의 일본 재즈퓨전의 색채가 묻어나기는 하지만, 그의 음악에선 태평소와 사물놀이 등 국악기와 오케스트레이션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동양적신 신비감을 다채롭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한국적 감성이 짙게 배어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그의 가장 대표곡은 프론티어 ‘Frontier’로 힘찬 국악의 힘과 장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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