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교회 재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곤란함을 호소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교회에는 선교사 지원이나 이슬람·공산권 선교지원, 특별구제 등 영수증을 남기거나 공개하기 쉽지 않은 ‘특수목적비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교회 A목사는 이에 대해 “예를 들어 해외에서 헌신하다 잠시 교회에 들른 선교사들에게 차비조로 5-10만원씩 주면서 생색내는 것처럼 영수증에 사인을 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회는 착복이나 횡령이 전혀 없었지만, 1년간 이처럼 ‘영수증 처리’를 하지 못한 금액을 계수해 보니 무려 5천여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중형교회 목회자들도 비슷한 문제를 호소한다. B목사는 “가장 곤란한 경우는 목회자 입장에서 많지 않은 금액을 구제하면서 당사자에게 영수증을 끊어달라고 하는 경우”며 “대외활동을 많이 하는 경우 접대비나 활동비, ‘품위유지비’ 등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영수증 처리를 그때그때 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행정의 미숙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중형교회 부목회자인 C목사는 “교회 행정이 체계적으로 돼 있지 않은 부분도 있다”며 “특히 교육부서들은 예를 들어 수련회 예산을 1백만원 청구했다면 지출계획서만 제출하고 그 후에는 감감 무소식이고, 감사가 없어서 그런지 제대로 행정처리를 하지 않는 편”이라고 증언했다.
결국 ‘자기 돈’, 심지어는 빚까지 내서 교회를 운영하는 개척교회들을 제외하면 이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운 교회들이 많지 않은 것이다.
◆ 계좌이체, 카드 한도 설정 등 목회자별 다양한 해법
▲교회 장부를 열람하고 있는 모 교회 성도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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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원은 이미 지난해 제자교회 사태와 관련, 성도들이 교회 재정과 관련된 장부와 통장 등의 열람 및 등사를 허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례로 인해 최근 분당중앙교회도 같은 상황을 맞았고, 이는 앞으로 교계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성도들이 요구하면 교회 장부를 열람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중형교회 D목사는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교회는 영리법인이 아닌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결정이 아닌가 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물론 이미 매달 교회 재정상황을 공유하고 인터넷 등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 교회들도 적지 않다. 서울지역 대형교회인 E교회도 매달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재정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 교회 관계자는 “선교사 지원금 같은 경우도 위원회 심사 및 승인을 거쳐 계좌이체로 진행한다”며 “강사료 등을 현금으로 드릴 때도 반드시 영수증을 받는다”고 밝혔다.
스스로 나름의 ‘해법’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B목사는 “우리 같은 경우는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고, 한도 내에서 사용하도록 한다”며 “개인적으로 후원이 필요한 곳이지만 꼭 교회 성도들 헌금으로 하는지가 마음에 걸리는 경우에는 본인 월급에서 지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목회자 입장에서, 성도들 생각처럼 재정 관리가 안 되는 부분이 조금씩은 있다”며 “서로 터놓고 자연스럽게 어디에 썼는지 묻고 답할 수 있으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공개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안 보여줘서 더 문제 생겨
관련 전문가들은 “꼭 영수증 처리가 안 되더라도 사용내역을 명시해서 공개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조언한다. 한때 기윤실을 이끌었던 손봉호 석좌교수(고신대)는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더라도, 목회자나 재정을 사용한 담당자가 어디에 썼다고 기록해서 사람들이 봤을 때 말이 되면 된다”며 “장부 공개는 영수증 처리가 꼭 필요한 게 아니고, 누가 봐도 저곳에 그러한 돈을 쓸 만하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억주 목사(한국교회언론회)는 “교회가 재정을 갖고 범죄에 사용하거나 투기 목적으로 쓰지 않고 있으므로 굳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안 보여주면 교회 문제를 소송 등 밖으로 꺼내들기 때문에 더 문제가 생기므로, 원한다면 (장부 열람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사실 보여주면 아무것도 아닌데 안 보여주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고, 영수증 첨부가 어렵다면 간접 증빙을 하면 된다”며 “고의적으로 숨기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없다 해도, 투명성(장부 공개)을 사회가 요구하면 사회보다 더 투명하게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법 전문가인 김영훈 장로(교회법연구원장)는 “교회도 원칙적으로 회계법에 맞게 정리를 다 해야 하고, 영수증이 없으면 돈을 사용한 사람이 지불확인증이라도 써서 재정 처리를 정확히 하는 게 좋다”며 “자신이 착복한 게 아니라도 영수증이 없으면 나중에 자기가 물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사후에라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장로는 “어디에 줬다고는 비밀로 하더라도, 지불을 누가 했다는 게 장부상에서 정확히 나오면 된다”며 “그런 액수가 많지 않겠지만, 최소한의 그러한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나”고 덧붙였다.
박병진 목사(한국교회헌법문제연구소)는 “목회자가 교회를 은퇴하거나 사임하면 그 교회 교인도 아니고 노회 소속 회원일 뿐이지만, 자기가 시무하던 교회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아는 경우가 있다”며 “흔히 맨손으로 교회를 일군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나는데, “먼저는 이같은 목회자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고, 목회자들의 신앙과 품격, 자질이 너무 저하된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 현장 목회자들은 교회 재정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는 데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한 목회자는 “교회는 영혼 구원을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상당한 액수의 재정을 지출하기도 한다”며 “물론 교회 재정은 당연히 투명해야 하지만, 그 투명성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교회가 영리기관처럼 비쳐서 구원을 위한 다른 활동들이 가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