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라(마태 5:40)"는 말이 있다. 받는 자에게는 하신 말이 없었지만, 있었다면 준 자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분명히 했을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예수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감사도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사랑을 논하고,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기독교가 사랑을 외치기 전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먼저 가졌다면,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지탄이나 교인 수가 줄어진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한 신문에 실린 글에 "스님이 쓴 책 가운데는 베스트셀러 되는 책이 많은데 유독 목사가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없다"고 했다. 우리(기독교인)가 그냥 넘겨서는 안 될 말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감사할 줄 모르는 목사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강을 해본다.
교회 장로가 목사를 그렇게 평할 수 있느냐? 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상대한 목사들 가운데 그러한 목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떠나올 때 20년 넘게 시골에서 구입한 땅과 집은 그대로 두고 나왔다. 팔지 않고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시골에 들어올 때 병든 몸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나를 시골의 부자로 만들어 주었는데, 시골의 땅과 집을 팔고 도시에 나간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이 함께 하는 축복이 있어야한다.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그대로 두고 나올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알뜰히도 가난하였던 나를 시골의 부자로 만들어 주셨고, 거기에 건강도 되찾게 해 주셨다. 도시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여 주신 하나님은 부산에서 4년 만에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시골의 땅을 팔게 되면 몇 년 다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교회에 십일조를 바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 교회에서 창립 25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게 된다는 초청장이 와서 두 아들 식구들과 우리 집 식구 모두 승합차 한 차로 가게 되었다. 30~40명 모이는 교회에 승합차 한 대로 가면 교인 수가 달라진다. 그날 모인 사람들은 모두 60~70명 정도 되었다. 필자는 오후에 빠질 수 없는 교회 행사가 있었지만 제쳐두고 가게 되었고, 아들들 역시 대형교회 집사로써 교사 등 맡은 것이 많아 시간 내기가 어려웠지만 함께 가게 되었다. 본 교회에서 하기 어려운 금액의 감사헌금까지 했다.
300리가 넘는 곳에 찾아갔으면 먼 거리에서 와주었어 고맙다는 인사를 간 뒤에 목사나 중직자가 해 주는 것은 하나의 예의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땅이 팔리면 그 교회에 헌금하겠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교회행사에 참석했다가 아프리카에서 오신 선교사 한 분을 만났다. 그 교회 목사님은 필자를 봉산물의 전문가라고 선교사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선교사님은 프로폴리스에 대해 다소 알고 있었다. 필자가 쓴 『프로폴리스의 위력』이라는 책을 보내주면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져 보내주겠다고 했다. 화분에 관한 책과 함께 두 권을 보내 드릴여하니 받은 명함에는 한국 연락처 대신 아프리카 전화번호만 있었다. 파송된 교회 이름이 있어서 교회로 직접 연락해서 숙소를 알게 되었지만, 몇 번의 전화 끝에 택배로 부칠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받았으면 잘 받았다는 전화 한 통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일절 없었다.
그 선교사에게 '선교 사업에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고 1천만 원 수표를 보내주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고맙다는 인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해 주었을 것이다.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 해답은 과부의 엽전 두 닢에 나와 있다. 감사는 많고 적음을 떠나 자기에게 작은 정성이라도 표했으면 분명히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 교회가 사랑은 외쳤지만 사랑의 본질이기도 한 감사를 뺀 사랑을 외치다 보니 알맹이 없는 죽정이 사랑만 외친 결과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고 계신다. 필자의 이야기를 직접 해서 죄송스럽지만, 한 가지 더 하려 한다. 70년대 있었던 일이다. 한 업을 운영하고 있었던 필자에게는 갑자기 돈이 필요했다. 시골에서 그만한 돈 구하기는 쉽지 않아 과수원을 경영하는 친구의 형 있는데 찾아가서 이야기 하였더니 "내가 은행에 갈 시간은 없으니 네가 가서 필요한 만큼 찾아 쓰고 통장을 갖다 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선뜻 통장을 받을 수 없었다. '그 통장에는 거액이 들어 있는 통장인데… 빌린 것으로 생각 하겠다'고 말하고 돌아와 다른 곳에서 차용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그 형님의 나이가 85세 정도가 된다. 뵙는 지가 오래되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봬야 되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설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뵙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작은' 고마움이라도 실천할 때 주님은 진정 기뻐하실 것이다.
필자 김해용은…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두리원' 대표이자 수필가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글을 연재했다. 현재 부산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