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도입이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당초 논외로 취급했던 러시아의 백신까지 검토에 들어가자 국민들의 코로나19 백신 정책에 대한 신뢰도 역시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성과 수용도 등을 고려할 때 mRNA백신인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 도입을 앞당기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23일 질병관리청 등 관계 부처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외교부 중심으로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한 자료를 수집 중이다.
당초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31일까지만 해도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은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8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정부 차원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검토를) 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21일까지도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라는 입장이었다.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탄 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이어 얀센 백신까지 접종 후 혈전 생성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2000만명분 선구매 계약을 한 모더나 백신이 미국 공급을 이유로 다른 나라 공급 일정을 연기할 수 있다는 소식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연일 백신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엠브레인리퍼블릭·케이스택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1월 집단면역 달성에 대해 69%가 부정적이었다.(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4개 기관 합동 전국지표조사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 등 정치권에서 스푸트니크v 도입을 주장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점검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푸트니크v는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으로, 국제 의학 학술지인 '렌싯'에 면여 효과가 90% 이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백신은 임상 3상 시험 전에 임시 사용 허가가 나왔고 사용 후 이상반응 데이터가 없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이 백신을 사용 중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등 안전성 문턱이 높은 국가에서는 사용 승인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스푸트니크v는 안전성 데이터를 완전히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라며 "누구도 자신 있게 평가를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의 백신과 같은 바이러스 전달체(벡터) 방식의 백신이다.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에서 혈전 생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같은 종류의 백신을 도입하는 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천은미 이화여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이 들어올 텐데 같은 종류의 백신이 더 필요하겠나"라며 "국민들이 같은 계열의 백신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도입 일정과 수용도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스푸트니크v 백신을 도입한다고 해도 이 백신이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충분한 물량이 공급될지는 미지수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허가를 하지 않은 백신을 들여왔을 때 우리 국민이 접종에 나설지도 불확실하다.
정재훈 교수는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을 서두른다고 해도 허가를 감안하면 2분기 말이나 3분기 초에 들어올 텐데, 그때는 수급 상황이 개선됐을 시점"이라며 "유럽에서 사용을 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수용성도 떨어지는데, 스푸트니크v가 들어오면 수용성이 있겠느냐도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보다는 mRNA 백신 도입에 정부 역량을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은미 교수는 "스푸트니크v 백신을 도입하려는 노력으로 차라리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더 들여오는 게 낫다"라며 "국민들이 원하는 것도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이라고 지적했다.
정재훈 교수는 "스푸트니크v 백신은 절대 1옵션은 아니다. 플랜B나 플랜C 정도의 가치"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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