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이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생 5명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랑과 연애, 연인과 애인, 애정 등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5가지 단어의 '뜻'을 개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어원은 여기에 '결혼'의 사전적 의미도 바꿀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어원은 해당 단어들에 있는 '남녀' 또는 '이성(異性)'이라는 단어를 모두 '두 사람', '서로'로 바꿨다. 예를 들어 '사랑'의 경우 뜻풀이가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였던 것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꾼 것이다.
이를 제안한 대학생들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 수강생인 이들 5인은 수업과제 중 하나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제도 개선'에 나섰고, 이성애 중심적 언어가 차별을 만든다고 느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서명을 받는 등 활동했다.
이후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남녀간의 관계로만 한정돼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한다"며 국민신문고를 통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를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고, 국어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
국립국어원은 홈페이지나 국민신문고를 통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에 대한 의견을 수시로 접수하고, 분기별로 내·외부 인사 7명으로 구성된 '사전편찬위원회' 논의를 거쳐 개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국어원은 "이번처럼 같은 맥락의 단어를 한꺼번에 5개나 개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립국어원이 여러 방면에서의 사회적 파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성급한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동성애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나 학부모단체, 교육계와 종교계 등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마저 '남녀간 결합'이라는 내용을 삭제할 경우 불러올 파장은 예측할 수조차 없다. 한 관계자는 "시대와 세태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는데, 이처럼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을 사회적 논의도 없이 대학생들 제안만으로 밀실회의 끝에 처리하는 게 옳으냐"며 "동성애나 성전환자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왜 고려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국내 최다 부수의 일간지도 사설을 통해 "국립국어원이 사회적 파장이 염려되는 쪽으로 뜻풀이를 바꿀 때는 현재의 법률 용어와 부딪치지 않는지, 어디까지를 '사회적 통념'으로 볼 것인지 깊은 고민이 앞서야 한다"며 "국어원 연구원 네 명과 외부 사전 출판·편집자 세 명이 앉아 대학생 다섯 명의 제안을 덥석 받아 처리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