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는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연중 기획 인터뷰 ‘힘내라! 한국교회’를 진행한다. 스무 번째 주인공은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따뜻한교회(예장 합동) 담임 김성호 목사(41)다. 성도 50명이 출석하는 이 교회는 3년 째 주일마다 따뜻한 밥을 차린다. 누구든지 와서 밥을 먹으라고 손짓한다. 푸짐한 밥상을 통해 따뜻한 대화 공동체를 꾸리는 게 비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올해 교회에서의 모든 밥상 사역이 중단됐다. 김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이라는 도시에 일본만화 ‘심야식당’처럼 새로운 사역을 꿈꾸고 있다.
김성호 목사는 “‘바베트의 만찬’(연출 가브리엘 엑셀)이라는영화를 모티브 삼아 프로젝트를 구상 중에 있다”며 “신자든 비신자든 상관이 없다. 한 테이블에 잘 차려진 음식과 서비스로 정성껏 푸짐하게 식사 대접을 한다. 목표는 신청자들의 대화가 풍성해지는 식탁”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목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원래 모태신앙이다. 그러나 17살 때부터 방황을 했다. 술·담배도 하고 비행청소년으로 지냈다. 그러다 2004년도, 군 제대 이후 어머니의 강권으로 모(母)교회에 다시 나갔다. 그 때 하나님을 만났다. 설교를 들으니 내가 변하더라. 예전엔 설교가 안 들렸는데 신기하게 복음이 믿어졌다. 교회가 천국처럼 느껴졌다.
회심 이후에는 나처럼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싶어 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런 비전을 당시 교회 전도사님에게 말씀 드렸더니, 그 분은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해주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직업은 목사’라고 추천해 주셨다. 아마 하나님께서 나처럼 방황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방황의 시절을 보내게 하셨단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007년도에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Q. 교회를 개척하게 된 계기는?
A.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고 개강수련회 때부터, 교회 개척의 마음을 주셨다. 나는 7~8년 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모(母)교회로 돌아왔다. 교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줬다. 교회가 정말 고향처럼 느껴졌다. 넓은 사랑의 품으로 나를 안아줬다. ‘교회가 정말 좋은 곳이구나. 방황을 하고 교회로 돌아와도 변함없이 환영해주는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단할 때,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곳이 바로 교회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신림동 소재 동산교회에서 부목사 생활을 했었다. 당시 담임이신 김정우 목사님께서 내게 CTC라는 단체를 소개해주셨는데, 이것이 교회 개척의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Q. CTC라는 단체는 어떤 곳인가?
A. CTC는 뉴욕리디머장로교회 팀 켈러 담임목사님을 중심으로 도시마다 분립개척 운동을 일으키고 도시를 복음화하자는 목표로 설립된 단체다. 한 교회만의 성장이 아니라 복음적인 교회들이 많아져서 도시를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다. 당시 동산교회에서 김정우 담임목사님과 부교역자들이 팀 켈러 목사의 ‘센터처치’란 책을 함께 읽었다. 이 책을 통해 교회론을 정립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개척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Q. 개척교회의 유익이 있다면?
A. 일단 도시에서 개척 교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형교회 등 한 교회가 커질수록 잉여자원들이 많아진다. 즉 숨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개척이 되면 공동체로부터 숨는 그리스도인이 적어진다. 왜냐하면 내가 개척 교회의 일부이고 한 지체라는 마인드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대형교회는 나 한 사람이 없어도 ‘교회는 잘 돌아가겠지’란 생각에 빠지기 쉽다.
또 전도에도 효과적이다. 팀 켈러 목사도 그렇게 말했다. 한 도시에서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려면 대형교회보다 개척교회가 많아지는 게 전략상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새로운 교회가 개척이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Q. 따뜻한교회가 개척에 있어서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A. 도시에서 복음을 잘 전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 도시라는 특별한 환경이 중요하다. 도시화는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삶의 패턴이 가속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마을과 가정 공동체 중심의 문화였다. 이제는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삶의 매너가 생겼다. 바로 상호존중이다. 각자마다 개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어울려 지내기 위해선 상호존중이 필수다.
이에 대한 해답이 뭘까 고민했다. 내린 결론은 따뜻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다’는 책이 있다. 이게 현대인의 마음을 정확히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은 내가 지닌 인격과 개성을 그대로 존중받고 싶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집단주의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만 생각하면 자꾸만 외로워진다. 이게 현대인들의 문제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얼 해야 할까? 바로 그들을 따뜻하게 환대하고 각자마다 인격이 빛나도록 돕는 공동체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공동체의 지향점이다.
Q.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사역이 있다면?
A. 환대의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밥을 함께 먹는 식탁 공동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탁은 평등하다. 식사를 한 끼 나눈다는 것은 식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의 정신을 갖고 정성껏 밥을 지어 교회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영적 가족이 되기를 꿈꿨다. 주일마다 밥상을 차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가 차렸던 ‘잔치상’처럼 푸짐하게 차리려고 노력했다.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와 함께 식사하셨던 죄인들의 친구 아니던가? 그래서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교인은 ‘우리 교회는 참 전도할 사람을 데리고 오기가 쉽다’고 하더라. 따뜻한교회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들고 편안하게 모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천국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지는 곳인 것처럼 말이다.
Q. 돈이 많이 들 것 같다. 주로 식탁에 차려지는 메뉴는 무엇인가?
A. 뷔페형식으로 차려왔다. 4명씩 조를 짜서 5주에 한 번씩 섬겨왔다. 부목사로 섬기던 동산교회에서 3년 간 후원을 해준 덕택에 밥상 섬김도 가능했었다. 현재까지 우리교회는 교인 50명으로 성장했고 약정기간이 끝나는 내년이면 자립을 해야 한다. 지금 추세라면 자립은 가능하리라고 예상한다. 다만 지금까지 해왔던 주일의 밥상모임 모두가 코로나19로 중단된 것이 너무 아쉽다.
그래서 내년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바로 도시 자체에 밥을 먹이겠다는 것. 일본 만화 ‘심야식당’처럼 근사한 한 끼 식사를, 누가 오든지 무료로 대접하려고 한다. 식사를 통해 단순히 육체적인 허기만이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까지 메워 줄 수 있다면 좋겠다. 1주일에 한 테이블정도를 섬긴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듯하다. 다른 교회와 연합해서 해보려는 생각도 하고 있다.
Q. 구상하고 있는 사역 프로젝트에 대해서 좀 더 알려 달라.
A. 금요일마다 신자든, 비신자든 상관없이 신청자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준비한 정성스런 음식과 서비스로 푸짐하게 대접을 한다. 목표는 신청자들의 대화가 풍성해지는 식탁이다. 진솔한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 물론 급히 밥만 먹고 일어서야 하는 식탁이 아니라, 우리의 섬김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막혀 있는 장벽이 무너지기를 기대한다. 미움의 장벽일 수도 있고, 시기나 질투의 장벽일 수도 있고, 오해나 어색함의 장벽일 수도 있다. 교회로 가입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다보면 단순히 그들의 육적인 허기만을 달래주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들에게 영적인 허기를 채우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밥을 통해서 연결감을 느끼고 싶다. 이 도시에 근사한 한 끼를 선물하고 싶다.
Q. 사역을 하면서 붙들고 있는 말씀이 있다면?
A. 누가복음 5장 29~32절이다. 예수님은 의인의 친구가 아니라 죄인의 친구가 되시려고 했다.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셨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를 싫어했다. 우리의 기독교는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교회가 단지 교인만을 위한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또 누구든지 교회에 올 수 있어야 한다. 새 신자들이 교회에 쉽게 오게끔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잘못된 철학과 사상에 동의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쉽게 다가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자는 것이다.
Q. 끝으로 나에게 복음이란?
A. 기쁜 소식이다. 내가 복음을 모르고 살았을 땐 길이 없었다. 어둡고 절망적이었다. 모든 삶 속에서 소망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열심히 살아도 허무하고, 열심히 안 살아도 허무했다. 아무런 답이 없었다. 내가 복음을 경험한 뒤엔 내게 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죽지 않으려고 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어도 괜찮다면 진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헌신이 억지로 되면 어렵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께 거저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줄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이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셨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