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실력을 갈고 닦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 나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10년에 10년을 거듭해 또 10년을 그 일에 천착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베테랑일 터. 물론 게으름 피우지 않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 하에서 성립된다.
그런데 목회자의 세계는 어떠한가. 마태복음 28장 말미에 나오는 주님의 대위임령에 따라 복음 전파의 사명을 한 쪽 어깨에 짊어지고 또 한 쪽 어깨엔 맡겨주신 영혼을 먹이고 잘 돌보는 일, 즉 ‘목회’의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목회자들에겐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횟수를 거듭할수록 전능자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기 때문일까.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나성금란연합감리교회 윤선식 목사는 개인적으로 목회 인생을 4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일 그의 목양실에서 만나 지나온 목회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목회의 정의에 대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라 하며 “다른 사람을 살리기에 앞서 목회자 자신이 사는 게 중요하다”면서 “자기 영혼을 잘 돌보는 것이 중요한데 그 부분이 잘 안돼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목회자의 자기 관리를 강조했다. 이에 더해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감명을 받아 겸손한 자세로 목회할 때 목회가 잘 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목회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가 많이 남는다”면서 “사람이란 원래 후회를 하기 마련인데, 매 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겸손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윤 목사는 한국에서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도 산골의 어느 개척교회에서 1년, 원주제일감리교회 부목사로 2년, 군목으로 3년 재임하다 77년 제대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처음엔 신학 공부를 계속할 요량으로 미국 땅을 밟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목회를 하게 됐다고. 간호사로 일했던 사모의 내조가 그의 미국 정착에 한몫 톡톡히 했다.
윤 목사의 집안은 대대로 목회자 집안이다. 그의 부친, 윤지용 목사는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 신평면에서 최초로 예수를 믿고, 그곳에서 40여년 목회하다 은퇴했다. 현재는 아들이 시무하고 있는 금란교회 원로목사로 있다. 부전자전은 여기 서 끝나지 않는다. 윤 목사의 두 딸 중 막내인 윤세라 씨는 풀러신학교를 졸업한 뒤 캠퍼스 사역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금껏 외길 목회 인생을 걸어오면서 왜 고비가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때 그때마다 느낀 건 ‘자기 관리의 중요성’이다. 즉, 성품을 잘 다듬고, 인내로 참아내는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 너무 앞서가지 않는 것도 목회자가 갖춰야 할 센스다.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좋지만 목회자 혼자 달려간다고 교인들이 다 따라오는 건 아니다. 그들의 수준에 맞춰 이끄는 센스가 필요하다.
40여년 지났는데 이제 좀 목회가 쉽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도 어렵지만, 초창기엔 더 어려웠던 거 같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목사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소셜워크였어요.”
새로 이민 온 교인들을 위해, 공항에 픽업 나가는 일에서부터 자녀들을 위한 학교 소개, 아파트 마련, 심지어 병문안 가는 일까지 담임목사인 그가 하나부터 열까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물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영적 케어도 필요했지만, 당시로선 이런 육적 케어랄까, 이런 ‘뒷바라지’ 역시 교회가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소셜워크는 자연 교인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물론 옛날과 많이 다르긴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런게 필요하긴 해요. 당시엔 눈에 보이는 면에만 관심을 뒀는데, 이젠 더욱 더 영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여야죠.”
창립 30주년 기념 소감으로 윤 목사는 “돌이켜 보면, 여기까지 온 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물론 우리 교회도 지난 날의 역사 가운데 순풍의 돛단배처럼 항해해 온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의 세월도 있었고, 영욕의 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초창기엔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비해 이민사회 특성상 성도의 이동이 잦아 실망하기도 했죠. 내가 이 일 하려고 미국에 왔나 하는 후회도 있었구요.”
모르긴 몰라도 이민교회가 겪는 특유의 내홍을 겪으면서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을 터다. “하지만 이런 질풍노도의 세월을 거쳐 어느새 4반세기를 넘어 30년이 됐네요. 나이 서른은 사람으로 치자면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교회적으로도 연륜이 쌓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고 또한 앞으로의 30년을 바라보면서 마음 설레는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금란교회는 시작은 198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장로, 집사 및 성도 10명이 창립 초대목사인 김건도 목사가 살았던 론데일(Lawndale) 지역의 작은 아파트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초창기엔 예배로 쓸 처소를 구하지 못해 무려 6주간을 알론드라팍(Alondra Park)에서 야외예배로 드리기도 했고, 이리저리 예배당을 빌리고 옮겨 가기를 반복했다.
김건도 목사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이민자들의 삶은 ‘광야 생활’이기에 교회당 건물을 교인들이 땀 흘려 건축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최근 회고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성막생활을 했으므로 우리도 빌려서 예배드릴 장소만 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자는 신념으로 목회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창립 4년만에 당시의 알론드라팍 미국연합감리교회의 허락을 받아 친교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한국교회는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부흥이 잘 되느냐”고 물으면서 “현재 미국교회는 날로 쇠퇴해 지금은 대부분 노인들만 출석하는 형편이라 교회당을 관리하기조차 힘이 든다. 만약 한국교회가 이 교회 건물을 원한다면 넘겨주고 우리 백인 회중들은 각자가 자기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아 흩어질 것을 의논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들은 김 목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혹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되물어 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한국교회가 건물을 인수하겠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에 감리사나 지방재산관리위원장의 허락을 받아 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수일 후 서명을 봉한 편지를 가져와 넘겨 주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당시 그 편지를 받아들고 교회로 돌아와 한국교회가 빌려 쓰던 작은 사무실에 엎드려 한참을 울면서 감사기도를 드렸던 그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1대 김건도 목사가 시무했던 1982~1987년 개척기를 지나, 1997년 10월에 19년간 로즈펠리스연합감리교회를 목회하고 있던 윤선식 목사가 2대 담임으로 부임하면서 정착과 부흥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왔다. 현재 사역자는 담임목사를 포함해 총 10명. 1년 예산이 1백만불 가량 된다. 20여 곳의 선교지를 지원하고 있고, 부속 시설로 금란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윤 목사 부임 후 특이할 만한 사항은 교육에 특별한 정성을 쏟았다는 점이다. 2001년부터 시작해 EM 2세들을 위한 교육관을 건립한 것이 바로 그것. 채플을 비롯한 클래스룸이 이때 마련됐다. 나성금란교회의 재적 교인수는 아동부, 학생부, EM, 성인 한어부를 포함해 총 9백여명이다. 실제로는 매주 5백여명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나성금란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가디나 지역엔 히스패닉과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거의 없다. 실제로 교인들 대부분이 LA나 세리토스, 토렌스 등 여러 지역에서 차를 타고 예배 드리러 온다.
이제 금란교회는 지나온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축복을 돌아보며 향후 40년의 비전을 놓고 달려간다. 우선 지교회를 10개 개척하고, 성도수를 지금의 2배 이상 늘리고, 교구도 지금의 8교구에서 20교구로 늘린다는 목표다. 사역자도 지금의 딱 2배인 20명. 가장 눈에 띄는 비전은 선교에 대한 비전이다.
이밖에도 초등학교와 도서관 등을 비롯해 실버아카데미, 실버타운, 양로병원, 수양관 겸 기도원을 차례차례로 건립해 나갈 방침이다. 금란교회 교인들은 “꿈이 준비되어야 꿈의 실현을 이루고 열매를 맺는다”면서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한편, 금란교회는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섬김의 차원에서 내달 3일 인근 히스패닉, 흑인들을 초청해 풍성한 잔치를 벌인다. 이 행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이번 행사에서는 찬양 집회와 바비큐 파티를 비롯해 참석자들에게 선물도 증정한다. 윤 목사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한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함은 물론 평소 파킹랏 등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데 대해 감사를 표하고, 은혜를 선사하고자 한다”며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