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영아 유기·낙태 풍조에 맞서
전염병 재난 속에서도 기독교적 사랑 실천”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가 22일 오후 서울역 공항철도 회의실에서 ’전염병과 생명윤리’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특히 이날 이상규 교수(고신대 명예)가 ‘초기 기독교에서의 생명윤리-영야 유기, 낙태, 역병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대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야기된 근원적인 문제는 전염병의 전파와 이로 인한 죽음”이라며 “죽음의 문제는 역병의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오늘의 현실에서 초기 기독교회는 이런 역병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들은 인간생명의 상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이런 문제 대해 대답해 보고자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초기 기독교’를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 첫 300년, 주로 그리스-로마 시대 기독교로 규정했다.
◈영아 유기=그는 먼저 이 시기 ‘영아 유기’에 대해 “원치 않는 여아나 기형 남아를 유기하는 것은 합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용인되었고, 영아 유기나 살해는 사회 전 계층에서 빈번하게 행해졌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영아 유기를 생명의 살인으로 보아 반대하고 당시대의 관행을 거부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점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이자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이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첫 300여 년 동안 영어 유기나 살해 관행을 비판하거나 거부했던 집단은 유대교의 전통을 이어받는 기독교가 유일했다”며 “기독교는 당시의 생명경시 풍조에 맞서 인간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보여 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기독교회가 가르친 생명 윤리였다”고 했다.
◈낙태=이어 ‘낙태’에 대해서는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흔히 자행되던 생명경시 풍조였다”고 했다. 특히 당시 낙태 방법이 상당히 위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횡행했다는 이 교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불륜에 의한 성행위 은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고, 경제적 이유, 재산 상속에 있어서 재산의 분산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런 사대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영아 살해는 물론이지만 낙태 또한 살인으로 보아 이를 거부했다”며 “초기 기독교는 특히 3가지 관점에서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태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 둘째, 낙태는 명백한 살인이라는 점, 셋째, 낙태 행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것은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시 139:13~16)이자 인간생명을 중시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이었다”며 “교회 지도자들도 이점을 강조하며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결과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출산율은 이교 사회보다 상대적으론 높을 수밖에 없었다”며 “미니키우스 펠릭스는 자신의 변증서에서 ‘날마다 우리의 수는 증가일로에 있다’며 그것은 ‘우리의 건실한 생활양식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회는 혼인을 신성시했을 뿐 아니라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상급으로(시 127:3) 이해했다”고 했다.
◈전염병=끝으로 ‘전염병’과 관련해선 “초기 기독교는 재난의 원인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죄,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인정했다(시 89:31~33)”며 “이런 인식 때문에 재난과 위기의 현장에서 낙담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자기를 성찰하며 내적인 부흥을 경험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간구했다”거 했다.
또 “그리스도인들은 도피 보다는 구호와 구제에 관심을 쏟았다”며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고자 힘썼다. 교회의 교사들은 위난한 시기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고 이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은 기독교 공동체 밖으로 확산되어 사망률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며 “이교숭배자들의 회심과 기독교로의 개종, 곧 종교적 이행(移行)도 일어났다. 그리스도인들이 베푼 형제애적 사랑은 이교 숭배자들의 마음을 열어 기존 종교를 폐기하고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는 변화를 가져 온 것”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