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성서화의 주요 작품들은 아름다운 삽화가 어우러진 사본(Codex)과 수도원에서 제작한 채식필사본인 성경이나 기도서가 주축이다.
지금까지 위트레흐트 시편집, 린디스판 복음서, 베아투스 묵시록 주석서 그리고 베리공의 기도서와 사나 모세오경 등 소재별로 대표적인 성서화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프랑스 왕실 미술품인 벨빌성무일과서(Belleville Breviary)의 삽화를 찾아보고자 한다.
벨빌성무일과서는 프랑스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채식필사가 장퓌셀(Jean Pucell)이 영주인 올리비에 드 클리송의 부인 잔 드 벨빌을 위해 1325년경 양피지에 제작하였고 지금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브리비아리(Breviary)는 라틴어의 '작다(small)'는 뜻인 'brevis'에서 유래하였는데, 중세시대 성직자들이 지켜야 할 교회절기와 성인축일 등 교회력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시편, 성서본문, 찬송을 낭송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매일 예배와 교회의 공식기도를 싣고 있는 전례서이다.
벨빌성무일과서는 여름편과 겨울편 등 두 권으로 되어 있으며 도상학적 기본구성은 교회력(캘린더)과 시편(Psalter)으로 구성되었는데 성인들의 전기는 그 당시 위세를 떨치던 도미니크 수도회 신학이론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도미니크 수도회는 1206년 스페인의 사제 성·도미니크(st. Dominic)가 설교와 청빈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전파할 목적으로 설립한 로마 가톨릭의 수도회이다.
벨빌성무일과서의 겨울철 교회력 중 '12월'에는 성인축일등이 아름다운 필체로 기록되어 있으며 교회력 상하에는 도미니크회의 신앙 고백서에 기초한 삽화를 싣고 있다.
장퓌셀 삽화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신앙고백서의 핵심인 천국으로 가는 '길과 문(the way and the gate)'에 대해 구약성경의 희미한 예언을 신약성경에서 어떻게 구체화 하였는가를 그림으로 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12달 동안 계속하여 카렌다의 아랫부분에는 12인의 구약 선지자가 유대회당(synagogue)의 벽돌을 허물어 12인의 신약성경 사도들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그렸다.
마지막 달인 '12월'에는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가 옷에 쌓인 두루마리 예언을 사도 마태에게 벽돌과 함께 건네주는데 유대회당은 폐허가 된 모습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악한 길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길로 걸으라"고 예언한 선지자이며, 마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기록한 사도이다.
캘린더 윗부분의 삽화에는 중앙에 천국 문 앞에서 페난트(pennant)를 들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있다. 이 페난트에 쓰인 글은 성모 발아래 부분이 훼손되어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아래 삽화 중 마태의 두루마리 내용과 같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문인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구원을 받는다는 신조가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성모의 앞에는 바울사도가 유대인을 앞에 놓고 설교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12월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농부가 나뭇가지를 치는 모습을 넣고 있다.
사도바울 앞에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이 삽화는 원래 도미니크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성모에게 자신을 도와 줄 것을 간구하였으며 어느 날 성모가 나타나 로사리오(묵주)를 주었다는 전설과 관계가 있다.
12월 캘린더의 좌우 가장자리는 뾰족뾰족한 담쟁이덩굴의 끝자락에 환상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생명체를 묘사하고 있는데, 성경적 장면은 당시 종교적으로 엄격히 표준화된 도상학 규범을 따라야 했지만 퓌셀은 성무일과서 프레임에 꿩이나 나비, 잠자리와 꽃 등을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하겠다.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시설국장(1989~1994),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통합) 장로이기도 한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