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그마신학연구원(대표 김재진 박사)이 17일 ‘신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온라인을 통해 제11회 케리그마 신학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첫 번째 강연으로 이은재 교수(감리교신학대)가 ‘코로나 시대-신앙과 신학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근대 이전에는 자연을 극복하는 게 인간의 과제였다. 자연의 배후에는 거룩한 질서가 있고 인간은 그 앞에서 겸손해야 했다”며 “근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분석하고 파악하려는 노력을 통해 실험으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것이 근대 과학기술의 문명”이라고 했다.
이어 “자연 법칙이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며, 홍수는 어떻게 발생되는지를 알게 됐다. 의술에 있어서도 많은 진보를 보이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축적돼 오늘날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며 “(반면) 근대 이전 사람들이 가졌던 자연 배후의 거룩한 질서에 대한 경건은 사라졌다. 인간이 획득한 자연과학·기술·문명 등을 통해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혼란 가운데 빠져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우리가 발견한 자연 법칙에서 에러가 발생한 것”이라며 “인간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세계를 운영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태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전체주의적 감시와 민족주의적 고립이 등장할 것'이며 동시에 '시민역량이 강화되고 전지구적 연대성이 발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이런 양면성을 예고한 유발 하라리는 전자는 통제와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권위로 이어지고 후자는 자유와 민주라는 정신의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근대 세계사적 흐름을 봐도 역사 속에서 세속성과 종교성의 양면이 발견된다. 세속성이란 전통적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령 신앙의 권위 대신 슈퍼마켓과 슈퍼스타의 탄생을 부추기며 교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팽배했었다. 이는 근대정신과 연결될 수 있다”며 “(왜나하면) 학문적 진보에 대한 낭만적 신앙, 기술과학의 승리로 이상사회 건설이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권위로 여겨진 신앙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때문에 사회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교회에 비판적인 사람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라며 “반면 이와 더불어 종교성도 두드러진다. 독일 통일 이후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종교성이 실종되기보다 오히려 강화됐다. 그곳은 현재도 종교성이 활발하다. 이는 학문에 대한 낙관론에 실망하고, 공산주의가 몰락되며 불안과 공포의 지속적 증거가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실 세계와 코로나19 시대, 어떻게 신앙과 신학을 다룰 수 있겠는가? 신학은 진리를 전제하고 책임적 자세를 견지하며 매 시대를 증언하는 신앙고백이어야 한다”며 “신학의 전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이를 증언하는 삶의 자리는 언제나 지금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현재는 어떤 상태인가? 현대 사회는 시민사회와 공적사회라고 말한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그의 책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공공성을 한편으로는 공적 견해,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통제와 감시’라고 정의했다”며 “공공성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진정성·정직·선명성·명백성을 필요로 한다. 하버마스는 이를 합리적인 이성과 논증을 통해서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공공성이 정치적 감시와 통제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런 상황 속에도 기독교는 공공성을 발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은 지속적으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며 “요즘 교회가 위기라고 많이 얘기한다. ‘위기’는 원어 그리스어로 ‘판단하다·시험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를 통해, 교회가 직면한 위기란 세상을 시험하고 진단하며 비평해야 하는 역할을 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요구”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교회 역할은 파수직 또는 예언자직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교회는 자신이 몸담은 사회와 세상에 대해 공공성으로 기여할 수 있다”며 “교회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발현하기 위해서라도 사회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비평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교회는 비판을 받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사회로부터 검증을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부분이 우리를 속상하게 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슨 일만 생기면 교회가 코로나19 전파의 주범인 것처럼 낙인찍힐 때 우리는 속상하다. 하지만 교회는 이런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통해서 교회가 자신의 현 존재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의 자기비평이 요구 된다”며 “전통적 교회론에서 보자면 교회는 ‘ecclesia semper reformanda’(항구적인 교회의 갱신)을 견지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이 몸담은 사회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비평 받는다. 이 둘은 교회에게 결코 불편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때 교회는 둘을 통해서 변증법적일 수밖에 없다. 어거스틴은 교회에 대해 ‘참된 그리스도인과 거짓된 그리스도인이 함께 혼합된 신비한 몸’이라며 ‘그것이 교회의 신비’라고 했다. 루터도 ‘동시에 의인이며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 인간’이라고도 했다”며 “그런 점에서 교회의 위기란 절대로 허용돼서는 안 되는 개념이 아니고, 견딜 수 없는 수치와 불편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 신앙과 공적사회와의 관계는 신학의 비평적 기능과 신앙의 본질이 어우러져야 한다. 성경은 이를 너무나도 잘 보여 준다”며 “디모데전서 3:16는 비밀은 침묵이 아니라 공적으로 선포돼야하며 예배는 공론의 장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체로 불리는 공적사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나’는 ‘우리’라는 동족이 된다. 진리는 감출 수 없고 더 이상 비밀도 아니며, 이런 복음의 진리에 대해 신학은 책임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진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적으로 얘기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논해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동일하게 선포되고 나누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공적 영역”이라며 “마태복음 10:32~33처럼 세상과 하나님 앞에서 이 진리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다. 참된 기독교인은 관찰자가 아니라 전적인 행동자로 참여해야 한다. 신앙과 신학이 변두리로 내몰려도 기독교 공동체는 세상의 공론장에서 소외돼선 안 된다. 기독교의 신학적 비평이 절실히 요청 된다”고 했다.
그는 “신학은 현대 사회에 대한 비평과 진리를 위한 투쟁이 동시에 이행돼야 한다.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 행위가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실질적 규범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이게 신학의 임무다. 그런 점에서 신학과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철저히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앙 집권의 리더십이 강화되면서 종교에 대한 비판도 더욱 더 거세질 것”이라며 “그럼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역사의 소용돌이로 빠져가는 형국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 말씀 앞에 서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했다. 우리도 세상이 볼 때 이런 바보의 배에 올라타야 한다. 이런 신앙의 용기를 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