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러 목사는 최근 ‘라이프 인더 가스펠(Life in The Gospel)’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한 현재 문화 속에 있는 정의(justice)에 관한 이론에 대해 분석했다.
오늘의 시대만큼 정의에 대한 강력한 요청이 없었다고 말한 그는 “그러나 정의라는 비전은 대립되고 있고, 이따금 첨예하게 상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로 들어 그는 “미국과 같은 단일 국가에서도 문화적 합의를 성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며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의 정의관을-단지 당신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다른 어떤 것보다 받아 들일 것이라고 짐작한다면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경은 정의에 대한 포괄적인 비전을 확립했다”며 “일부 현대 기독교인들이 정의의 일을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소명의 일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세속적 모델들이 자리를 잡았고, 기독교적 신앙과 실천을 왜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글에서 그는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가를 이해하는 데 핵심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와 ‘왜 우리가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우연을 통해 이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세속적인 시각이다. 우리는 어떤 목적도 없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며 “만일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행동이 잘못되고 부당하다는 세속적인 전제나 신념을 일관성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다. 인권도 그저 일부 사람들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성경은 인간 세계를 ‘서로 밀접한 공동체(inter-related community)’로 묘사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실한 사람들은 공동체의 강화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사람들이 부를 다루는 방식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수익과 자산을 개인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당신은 단지 그것의 관리인일 뿐이다), 공동체는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주장할 수 있다”고 전제하며 “그렇다고 해서 (개인 재산을) 몰수해선 안 된다. 당신은 그런 주장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철저하게 관대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재산관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경제 어느 쪽과도 잘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켈러 목사는 일부 신학자들이 복음주의 노선에서 벗어난 포스트모던 비판 이론을 광범위하게 풀어 두었다고 지적했다. 비판 이론에 대한 저항은 올해 초 남침례교단 내에서 새로운 신학적 보수주의 네트워크의 출범을 부채질 했다고 그는 분석했다.
포스트모던 비판 이론은 대체로, 악(evil)은 사회에 의해 인간에게 주입되며, 병리적 문제는 사회 정책을 개혁함으로써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앞뒤가 맞지 않으며(incoherent)’ 권력이나 부, 행복에 있어 모든 불평등에 관한 설명을 개인의 행동, 문화적 차이, 또는 인간의 능력 차이가 아닌 오직 사회 구조적이고 제도적 부당함에만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진실에 대한 모든 주장과 정의라는 의제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왜 이런 주장과 의제의 추종자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그는 “포스트모던 옹호론자들이 ‘이것은 억압이다’라는 주장은 의심의 여지 없이 도덕적으로 옳고, 다른 모든 도덕적 주장은 단지 사회 구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계급 의식과 사회적 위치에 눈이 멀었다면, 왜 그들은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켈러는 “포스트모던의 정의에 대한 설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좋은 해답이 없다. 당신은 모든 도덕이 문화적으로 형성되고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신의 도덕적 주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며 “이는 기독교인만이 볼 수 있는 결점이 아니며 따라서 전체 이론에 치명적인 결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