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해외 여행력이 없고 확진자 접촉자도 아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세 번째 확진자가 나온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방역 당국의 1차 대응을 실패로 규정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이날 오후 의협 용산임시회관 7층에서 '신종코로나 사태 관련 대한의사협회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후 한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며 "이 기간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한 1차적 방역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최근 잇따라 나온 29·30번째 환자와 31번째 환자가 모두 해외 여행력이 없고 기존 확진자와 접촉 여부도 확인되지 않으면서 감염원을 특정하지 못하는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방역 당국은 이에 대해 역학적 연관성을 더 조사해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인 데 반해, 의협은 지역사회 감염 정의에 정확히 맞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회장은 "지역사회 감염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정의에 비춰볼 때 정확하다"라면서 "31번째 환자가 대구에서 확진되면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감염병 위기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높여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의협은 현재 정부에서 중국에서부터 들어오는 입국자에게 실시하는 '특별입국절차'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중국 전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특별입국절차라고 해봐야 체온을 잰다든지 신원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 아니냐"며 "이런 조치는 실제 해외 감염병 유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방역 목적을 달성하는 데 거의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 총량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만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협은 이런 내용이 포함된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에 세 가지 권고사항을 전달했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 국면의 최전선이 될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 및 중소병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것 ▲중국 전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 조치를 다시 한번 검토할 것 ▲현 상황을 낙관하지 않고 충분한 사전조치를 시행하는 등 '사전예방의 원칙'을 다시 한번 상기할 것 등이다.
이날 최 회장은 감염원이 특정되지 않은 지역사회 전파 사례가 늘고 있는 일본에 대해 '오염지역'이나 '위기국가'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최 회장은 "일본 역시 오염지역이나 위험지역 등으로 지정해야 할 조건에 부합한다"며 "일본은 후베이성과 최근 저장성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는데, 이런 대책이 일본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대한의사협회 대국민 담화문 전문.
[코로나19 지역사회감염 확산 징후와 관련한 대한의사협회 제6차 대국민 담화문]
안녕하십니까. 대한의사협회 회장 최대집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일명 코로나19 감염증의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로부터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어제까지 30명의 환자가 확진되었고 기자회견 직전인 오늘 오전, 대구에서 또 새로운 확진 환자가 발생하여 이제 31명의 환자가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최근 보고된 29번째와 30번째, 그리고 31번째 환자의 경우, 역학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다시 말해 감염경로를 밝히기 어려운, 전형적인 지역사회감염의 사례로 의심되는 바, 오늘 기자회견을 통하여 코로나19의 지역사회감염 확산 징후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지난 한달 간, 보건소, 선별진료소, 병원과 의원, 공항, 항만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많은 곳에서 감염병과 사투를 벌여온 의료인과 공무원, 정부 관계자 등 모든 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철저한 개인위생 관리로 의연하게 대처해주신 국민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달, 우려했던 만큼의 많은 확진자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불행히 지역사회 감염의 확산 징후가 감지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1주일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미 지역사회 감염이 확인되거나 추정되는 지역으로 우리나라를 포함시켰습니다. 최근 29번째와 30번째, 31번째 환자가 확인되기 직전까지, 확진자 29명 중 중국 또는 제3국에서 감염된 1차 감염자인 11명을 제외한 나머지 17명 중, 12명이 확진 환자의 지인이나 접촉자에 의한 2차감염이었고 나머지 5명은 2차감염자와 접촉한 3차감염이었습니다. 여기에 외국에 다녀온 적도 없고 어디에서 감염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세 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객관적인 지역사회감염 확산의 근거가 점점 쌓이고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오염지역에 대한 여행이나 확진환자와의 접촉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사회 어디에서든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눈 앞에 와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29번째 확진자의 경우, 코로나19 감염증을 의심할만한 과거력이나 증상이 없었음에도 담당 의료진의 적극적인 의심과 진료의 결과, 감염을 확인한 경우였습니다. 또, 오늘 오전에 알려진 31번째 확진자의 경우, 아직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나 해외여행력이 없으며 지금까지 확진자가 없었던 대구지역 첫 번째 환자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판단할 때,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한 1차적인 방역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대한의사협회는 사례정의에 따라 소수의 의심환자를 보건소 및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의료기관으로 안내, 유도해왔던 지금까지의 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다음과 같이 정부에 권고 드립니다.
먼저, 지금까지 환자를 담당해온 보건소와 선별진료소 설치 의료기관만으로는 늘어날 검사 대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본격적인 지역사회감염 확산 국면에서 최전선이 될,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 및 중소병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민관 협의체의 즉각적인 구성을 제안합니다. 비교적 인력과 장비, 각종 자원의 활용이 용이한 상급종합병원과 달리,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 및 중소병원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정확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효율적인 민관협력체계가 마련될 수 있게 즉시 논의에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이미 제안하였던 중국 전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 조치를 다시 한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중국 전역의 확진자 누적진단은 7만명, 사망자는 1,700명을 넘어서는 상황입니다. 특히 최근, 중국은 후베이성에 대해서만 새로운 임상적 진단기준, 즉 확진검사 없이 폐렴 소견만으로도 코로나19 감염증으로 확진하는 새로운 기준을 추가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루 만에 확진자 수가 1만 5천명이나 늘어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후베이성에서 호흡기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코로나19 감염이라고 추정해도 될 정도라는 의미로, 그만큼 중국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후베이성 뿐만이 아니라 확진자가 1,000명 이상 발생한 지역도 광둥성, 저장성, 허난성 등 여러 곳입니다. 이는 중국 이외의 국가 가운데 확진자가 가장 많은 싱가포르(75명)와 비교하더라도 10배 이상입니다.
물론,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은 외교, 경제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이미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시 해야 할 의사는 무엇보다도 다른 고려 없이 순수하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기준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지역사회 감염 전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는 지금이 입국 제한을 통해 위협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심각하고 되돌릴 수 없는 위협의 가능성이 있다면 설령 그것이 과학적으로 확실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사전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반드시 상기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그것으로 인한 감염증은 지금까지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그 어떤 전문가도 아직 코로나19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합니다. 오늘까지 알고 있던 정보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상황입니다. 최대 2주를 예상했던 잠복기, 희박하다고 예상했던 공기전파 가능성과 무증상 상태의 전염성, 이 모든 것이 여전히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우리의 스스로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설령 훗날, 그것이 지나친 대응이었다고 반성할지언정, 너무 쉽게 낙관하거나 방심했다고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일선에서 적극적인 방역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모든 노력을 촉구합니다. 감염에 취약한 노약자나 만성질환자가 주로 내원하는 의료기관의 특성상, 만약 의료인이 확진자에게 노출된다면, 이후 내원하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진료를 중단해야 합니다. 최근 29번째 환자가 경유한 서울의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모든 의료진이 감염의 가능성으로 자가격리 조치되어 진료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들 의료기관은 소독 및 환기 조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진료 재개가 가능하지만, 모든 의료진이 자가격리 중이기에 사실상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할 보건소에서 명확한 폐쇄와 휴진 명령을 내리지 않고 그저 의료진이 격리대상이라고만 통지하여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의료인이 자가격리를 하되, 의료기관의 폐쇄 여부는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지역사회 감염 전파 차단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겠습니까. 지역사회감염의 징후가 보이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최전선에 있는 일선 의료기관에 대한 아낌없는 응원과 행정적 지원일 것입니다. 의료기관들이 적극적으로 감염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분명한 지침과 대안을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장의 의료인들이 걱정 없이 안심하고 환자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지난 한달 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지칠 때도 되었습니다. “별것 아닌것 같다”는 낙관론이 달콤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새로운 질병과의 싸움입니다. 장기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의료계도, 정부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서도 함께 숨을 고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단 한명도 헛되이 잃어서는 안 되는 싸움입니다. 미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기약은 없지만, 그러나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그 여정에, 대한의사협회가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2월 18일
대한의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