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한 소년의 당돌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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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개봉 예정,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 뒤에 숨겨진 십자가의 의미
©홀리가든 제공

[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일본 영화계의 거장으로 자리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두고 “새롭고, 묵직하고, 무엇보다 재밌다!”고 말했고,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는 “아이 못지않은 상상력이 있어야 이룰 수 있는 기적의 영화”라고 극찬했다. 바로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이다.

8월 8일 개봉 예정인 '나는 예수님이 싫다'의 언론 시사회가 30일 오후 2시부터 용산CGV에서 개최됐다. 신인으로 데뷔한 히로시 감독은 제 66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닮았다. 두 감독의 카메라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타락한 세상을 되비추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자극적인 제목 뒤에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는 것도 이 영화의 포인트다.

도쿄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로 전학 온 소년 유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눈으로 뒤덮인 시골마을이다. 혼자 언 손을 녹이며 외로웠던 유라에게 어느 날 인형처럼 작은 예수님이 나타난다. 그리고 유라는 자신의 소원을 예수님께 빌며, 그분과 함께 일상을 동행한다. 친구가 없던 유라는 “하나님 이 학교에 친구가 생기게 해줘요”라고 기도했더니, 오오쿠마란 친구를 사귄다. 유라의 첫 번째 기도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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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라는 예수님께 “돈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비상금을 발견하고, 유라에게 용돈으로 준다. 점점 소원이 이뤄질수록 유라는 그의 앞에 있는 작은 예수님에게 소원을 비는 횟수가 늘게 된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스모 경기장에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소원램프로 여기는 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축구를 좋아하던 유라의 단짝 오오쿠마는 혼자 공을 몰고 가던 중, 차에 치여 중환자실에 이송된다. 유라를 포함한 친구, 담임선생님은 오오쿠마가 낫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간절한 소원을 빌 때 정작 나타나지 않는다.

오오쿠마는 사투를 벌이며 끝내 죽는다. 항상 웃는 얼굴로 아들과 유라를 대했던 오오쿠마의 엄마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장례예배에 참석한다. 그의 모습을 본 유라는 기도 중 성경 책 위로 나타난 예수님을 손으로 찍는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 유라의 항변처럼 보인다.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릴 때 죽었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감독의 고백과 맞닿아 있다.

어쩌면 유라는 친구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실 때의 아픔, 그리고 이를 통해 유라와 오오쿠마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상실을 통해 예수님을 아는 것은 가장 고통스런 성장과정이다. 동시에 피해가고 싶은 고통은 예수님이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것임을 아는 과정이기도하다. 그분의 고통에 참예하며 유라는 그분의 사랑을 알아가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죽음과도 같은 쓰라린 고통이기에 “나는 예수님이 싫다”며 남겨진 자들은 울부짖는다. 유라, 친구들, 담임선생님, 목사님 그리고 오오쿠마의 엄마 모두에게 말이다. 만일 오오쿠마의 죽음이 그저 죽음으로 끝난다면, 그 성장통은 모두에게 인생의 회한과 체념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소망도 없는 회색빛의 겨울 풍경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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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오쿠마의 죽음이 하나님의 가장 선한 기도응답이라는 암시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나온다. 옷자락 나풀거리며 하늘을 떠오르는 사람의 시선으로, 오오쿠마와 유라는 함께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예수님 혹은 오오쿠마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 시선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시선에 동일시하며,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그 시선은 “지금 나는 천국에 가고 있어. 유라와 함께 해서 너무 행복 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오쿠마는 유라와 소풍 놀이한 좋은 기억을 갈무리하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닌 예수님과 함께하기에, 그 장면은 하늘을 날아갈 듯 가볍다.

오오쿠마를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한다면, 예수님은 유라에게 고통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기도응답을 주신 셈이다. 아울러 오오쿠마를 의지했던 엄마도 예수를 더욱 의지해, 천국에서 죽은 아들을 웃으면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할 것이다.

고통을 넘어 믿음의 시선으로 봐야지만, 알 수 있는 기도응답.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싫다”는 영화 제목은 고통 속에 예수님의 가장 선한 응답이 감춰져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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