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한국 선교 신학회는 최근 2019년 2차 정기학술대회를 금란교회에서 개최했다. 기조 강연자로 강아람 숭실대 교수가 ‘하나님 나라와 상생’이란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최근 100쇄 이상 팔린 자존감 수업이란 책 열풍을 두고,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기 힘들만큼 치열한 생존경쟁 시대가 도래 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현대인들은 SNS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 것 같지만, 관계적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얼굴을 맞대는 게 아닌 가상현실에서 익명의 삶을 소비하면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자본·권력의 통제 하에서 공동체의 복권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며 “오늘날의 시대가 삶을 파편화 시키도록 추동한다면, 교회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불의한 문화”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교회는 특정 건물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언하는 공동체”라며 “교회가 파송된 곳에는 모두의 필요에 따른 공동선이 추구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그는 “4차 산업혁명 등 최첨단 과학 기술은 인간성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의 교회는 선교적 교회로서 상생 혹은 공존을 추구하는 ‘콘비벤츠’적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그는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의 호모 심비우스 소위 공생인이라는 개념을 주목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기심에 기초한 자본주의 모순은 한국에서 갑을 논쟁으로 심화됐다”며 “자신만의 배만 불리고 더 많은 소비를 추동하는 것보다, 한정된 재화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공유경제’에 주목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가령 그는 공유경제의 예로 “협동조합은 주주보다 조합원 이익을 대변하려 했다”며 “상대적 약자들이 모여 상생·협력해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고자 한다”고 했다. 또 그는 “대기업의 기업 생태계도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며 “협력업체와의 상생과 공존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하는 대기업들도 늘고 있다”고 또한 밝혔다.
세상에서도 대안을 마련하려 노력하는데, 공동체 회복의 마지노선으로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대안은 무얼까? 강 교수는 독일 신학자 준더마이어의 콘비벤츠(Konvivenz) 즉 삶으로서의 선교를 제시했다. 강 교수는 “콘비벤츠는 남미 브라질 농촌의 이웃돕기를 목도한 후, 함께하는 잔치의 삶에서 차용한 개념”이라며 “개인주의를 토대로 이론중심으로 발전해온 서구 신학의 한계를 극복할 계기를 마련해 줬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함께하는 삶이 콘비벤츠 신학의 핵심”이라며 “선포 주체-수용자, 보내는 교회-받아들이는 교회 간 경계는 허물어졌다”고 진술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르치는 사람이 동시에 배우는 사람이며, 결국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상호 교류적인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밝히며, “상호의존적 사건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동참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준더마이어를 빌려 “먼저 잘 배우는 자가 진정한 교사”라며 “기존 선교 현장은 교사-학생의 일방적 관계였지만, 콘비벤츠는 선교자와 수용자 모두가 함께 배우는 자라는 사실을 주목했다”고 했다.
핵심 논리는 바로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배우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며, 나아가 그는 “콘비벤츠 신학의 핵심은 잔치(Party)”라고 역설했다. 다시 말해 그는 “잔치는 빈부·사회적 계층 격차를 뛰어넘어, 인간 본래적 관계인 공동체가 회복되는 자리”라며 “함께 축하하는 행위 속에 생명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이런 잔치를 통해, 그는 “하나님 나라의 축제를 선취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상호 배움이 이행됨으로 선교 일방주의는 밀려나고, 배움의 풍요로움 속에 ‘함께’ 하나님 나라에 동등한 자격으로 초청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전하되, 자기문화의 토양에서 유래된 신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을 지양하며, “낯섦을 마주할 때, 낯선 문화는 낯설게 남겨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낯선 것은 손님으로서의 권리로 존중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새 시대의 선교는 ‘낯선 것은 낯설게 남겨두는 데’ 과제를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낯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우게 될 때, 교류는 활발해 질 수 있다”며 선교지에서 선교사-수용자 간 관계성의 혁신을 주문했다.
한편 강 교수는 준더마이어의 선교학이 임마누엘 레비나스에서 차용했음을 말했다. 그는 “근대철학은 남에게 ‘자신의 틀에 종속될 것’을 강요하는 개념”이라며 “그러나 타인은 내가 강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응답’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그는 “타인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라며 “나의 틀 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무한한 세계”이며 “무한자의 존재로 유한한 자기 세계는 더욱 확장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즉 그는 “자기 포기가 강요되지 않으며, 돕는 자와 받는 자 간 권력과 우월성은 틈입되지 않는다”며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공존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콘비벤츠 신학도 자기의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선교 신학이 아니”라며 “획일적 통합이 아닌, 나와 너의 상호 관계 안에서 만들어가는 잔치”라고 재차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예수님도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희노애락을 공유하셨다”며 “그들의 언어로, 그들과 같은 출신으로서, 그들과 함께 살았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는 그들을 ‘위해서’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살았다”며 “타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삶 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들과 함께 해야지 예수께서도 존재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강 교수는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길 원하셨다”며 “승천이후에도, 성령으로 공동체 안에 친히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끝으로 이런 공동체성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초대 하신다”라며, 강 교수는 “하나님 나라의 초대 신학이 현실 세계 속에 구체적으로 실현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하여 그는 “콘비벤츠 신학은 다양한 문화를 통해 해석된 새로운 복음 이해로, 상호보완과 상호 배움을 추구 한다”며 “이를 통해 새로운 잔치 공동체를 열어간다”고 정리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 선교 관점에서 상생과 공존을 배워가는 것”이라며 콘비벤츠 신학의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