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꽉 막힌 문이 아닌, 다음 세상으로 나가는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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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긍정하는 웰 다잉 문화 강조하며, 정현채 전 서울대 의대 교수 강연
©각당복지재단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여기 화장터에서 오래 일하면서 알게 됐지. 죽음은 문이야. 죽는다는 건 끝이 아니야. 죽음을 통과해 나가서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거지. 난 문지기로서 많은 사람을 배웅했지”

2008년도 일본 영화 '굿바이'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은 실직한 후 고향에 내려가 장례 지도사로 일하면서 겪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의 고향 친구, 곧 그의 어머니가 입관하면서 고향친구는 오열하게 된다. 그 때 화장터의 불 지피는 노인이 그에게 한 말이다. 죽음은 문이라고,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라는 걸.

각당 복지재단은 창립 28주년을 기념해, ‘죽음, 그 이후’란 강연회를 6일 연세대 상경대에서 오후 5시에 개최했다. 먼저 전 서울대 의대 내과학 정현채 교수가 ‘죽음은 소멸이 아닌, 옮겨 감’을 놓고 발제했다.

그는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죽음을 삶의 관문’으로 여기는 생각이 퍼져있다”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죽음을 잘 준비할 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고 했다. 반면 그는 “한국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무관심, 냉소, 회피 그리고 혐오의 반응을 보인다”며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는 삶에서 방치 수준”이라고 역설했다. 가령 그는 “‘개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극히 현세적이고,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연습이 적다보니,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돌보는 일을 병원이 대신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자본주의적이고 조직화된 병원의 시스템 속에서 격리된 채 환자는 외롭게 죽어간다”며 “한국에서 손자와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는 등, 죽음을 일상사에서 배제한 측면이 강하다”고 역설했다.

원인으로 그는 “20세기에 들어 의학 기술의 발달로, 유물론이 팽배해진 결과”라며 “자연스레 생명연장만 강조하고 죽음을 터부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그는 “의료진도 죽음을 '삶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중요한 단계’로 보지 않고,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는 시각”이 이런 시류를 강화시켰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그는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만을 주게 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환자의 가족이나 의료진이 매달리는 것도 이런 가치관에 기인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죽음은 꽉 막힌 벽이 아닌 다른 세계로 나가는 또 다른 관문임을 정현채 박사는 재차 강조했다. 서두에 밝힌 일본 영화 굿바이의 한 대목을 놓고, 그는 “영화 속 노인처럼 죽음을 문으로 보는 생각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긍정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긍정했다. 정 박사에 따르면, 스위스 의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브 융은 그의 수제자 폰 프란츠 여사에게 “죽음은 사라지는 게 아닌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란 유언을 남겼다.

또 융 자신도 생전의 편지에서 “죽음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위대해서 우리의 상상이나 감정이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렵다”고 밝혔다. 이처럼 죽음을 미지의 어둠으로 또는, 새로운 차원으로 나가는 관문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삶의 태도와 방식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정 박사는 주장한 셈이다.

종래 정 박사가 밝힌 대로, 21세기 의학 기술의 발전이 물질주의 관점으로 죽음 저편의 세계를 거부한 시각을 강화했다. 다만 정 박사는 “의학기술의 발전이 역설적으로 비과학적 영역의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ce)”인 셈이다. 그는 “최근 심폐소생술의 발달로, 동공 반사와 심장 박동이 멈춘 사람들의 생존율이 높아졌다”며 “잠시 심장 박동이 멈춘 상태에서, 죽은 나를 바라보는 임사체험의 사례 보고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심폐소생술로 생존한 10-20%의 사람들이 근사체험을 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뇌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은 “약물이나 전기자극, 저산소증으로 일어나는 착각”이라고 반박하지만, 정 박사는 “약물로 동반되는 체험은 기억이 조각나 정리되지 않고, 대부분 두려움과 공포를 수반 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근사체험을 두고 “저산소증으로 뇌에 의한 착각이나 환상이 아닌, 철저한 영적 체험”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근사체험 와중에 생의 회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감소, 삶의 심대한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뇌가 헷갈리는 현상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근사체험의 경험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정 박사는 2001년 의학 학술지 Lancet에서 네덜란드 여러 병원에서 조사된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Lancet은 1823년 영국에서 창간된 권위 있는 학술지로, Impact factor(학술지의 영향력 지표)가 15.3이다. 전 세계 학술지 중 3위에 해당하는 저명한 의학 학술지인 것이다. 정 박사는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344명을 조사한 결과, 18%인 62명이 근사체험을 했다”고 전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근사체험의 열 가지 요소를 인용했다. 다음과 같다. ▲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50%) ▲ 긍정적인 감정(56%) ▲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와 만남(32%) ▲ 터널을 통과함(31%) ▲ 천상의풍경을 관찰함(29%) ▲ 체외이탈 경험(24%) ▲밝은 빛과의 교신(23%) ▲ 색깔을 관찰함(23%) ▲ 자신의 생을 회고함(13%)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함(8%)으로 드러났다.

특히 그는 “이 연구에서 근사체험자 23명과, 소생하기는 했지만 근사체험을 하지 않은 15명을 비교했다”며 “그 결과 무경험자에 비하여 근사체험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과 이해를 더 하게 되고, 인생의 목적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나아가 사후생(死後生)에 대한 믿음과 일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크게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그는 “몇 분밖에 안 되는 짧은 순간의 체험이 8년 뒤까지도 큰 영향을 준 것”이라 평가했다. 죽음 너머를 잠시 체험케 해준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 결국 죽음을 삶의 일환으로 긍정하고, 나아가 죽음의 경계선을 항상 주지하기에 삶은 더욱 긍정적 에너지로 채워진 셈이다.

정 박사에 따르면, 스위스 출신 정신과 의사이자 죽음 학의 효시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며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어린이 환자를 비롯한 수많은 환자들이 임종 때 경험하는 공통된 현상과 연령, 성별, 인종, 종교의 유무나 종류와 상관없는 근사체험을 수십 년간 관찰해서 얻은 결론이라고 한다.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인생수업〉의 저자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타임지에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정 박사는 “로스 박사는 죽어가는 어린이 환자들을 돌보면서, 고치 벌레 형태로 있다가 뒤집으면 날개가 달린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헝겊인형을 늘 갖고 다녔다”며 “이 인형을 통해 비유적으로 죽음은새로운 비상이라고 아이들을 위로했다”고 했다. 2004년 로스 박사의 장례식에서도,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모든 참석자들은 봉투를 열어 형형색색의 나비들을 일제히 날려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에 정 박사는 “이는 생전 그녀가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대변 하는 것”이라 역설했다.

결국 논의를 확장해, 정 박사는 “이 세계 속에 우리는 2차원에 사는 존재와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따라서 그는 “앞뒤좌우가 전부인 줄 알던 평면적 존재는 사면체, 육면체 같은 3차원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 한다”고 말하며, “죽음 너머의 세계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우리를 장엄한 바다가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고 긍정했다. 게다가 그는 한 물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사람들은 모르는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을 두려워 하지만,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이 실은 우리를 가장 가슴 뛰게 만든다는 것”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이끼루’를 빌려 논의를 진전 시켰다. 그는 “주인공은 퇴근길 잠시 멈추어 서서 저녁노을을 바라며,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모르고 30년 살아왔구나,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구나’”라는 대사를 빌렸다. 영화 속 주인공은 암으로 시한부를 앞둔 상황이다. 이에 정박사는 재차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교수로 재직한 죽음문화 전문가인 알퐁스 데켄 신부의 말을 인용했는데, 다음과 같다. 데켄 신부는 영화 이끼루를 놓고, “주인공은 죽음에 임박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기쁨과 만족감을 느꼈다”며 “죽음을 직면함으로 비로소 보다 바르게 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정 박사는 미국 심리학자의 말을 빌려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진다면, 공동묘지를 걸어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 자신과 남에 대한 해악을 최소화하는 생각과 자세를 갖게 됐다”며 “죽음에 대한 자각은 인내심, 평등의식, 연민, 감정이입 그리고 평화주의에 대한 동기가 부여된다”고 밝혔다. 덧붙여 건축가 승효상을 빌려, 그는 “우리는 묘지가 일상 가까이에 없어, 도시가 경건하지 못하다”라는 말과 궤를 같이 한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과학자였던 프랑스의 샤르댕 신부(1881-1955년)을 빌려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직업의 고하(高下), 재산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고귀한 영적 존재”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고귀한 영적 존재인 우리가 상호연결성 속에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제까지와 사뭇 다른 의미로 나와 서로를 대하게 될 것”이라고 긍정하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한편, 정현채 박사에 이어 죽음학회 회장이자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는 ‘사후생(死後生)’이란 주제로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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