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서울대 트루스 포럼은 최근 서울대 기숙사 900동에서 ‘두 개의 전선, 하나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을 초정해 강연을 열었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으로 PD 운동권 계열 리더였다고 한다.
강연 서두에서, 그는 “왜 두개의 전선이라는 제목을 붙였냐”는 이유로, “누군가가 내게 ‘요즘 세상에 간첩, 빨갱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한 칼럼에서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종북 세력 척결을 언제까지 외칠 것인가’라는 대목을 보았다”는 뒷 배경을 전했다. 이어 그는 “사실 운동권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가질 것”이라며 “나아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운동권 세력을 독재 정권의 희생양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도 밝혔다.
다만 그는 “이른바 87년 민주화 운동을 놓고, 일방적으로 혹은 공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된 시발점’이라 얘기한다면, 과연 이를 주도한 운동권 세력이 이를 목표로 했는가는 다른 문제”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처음부터 그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마르크스-레닌주의 운동을 했던 것”이라며 “물론 외피는 민주화를 뒤집어 쓴 것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87년 6월 항쟁이 시작될 때, 동참했던 넥타이 부대들 모두가 다 좌익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 묻고, “이들은 순수하게 민주화 및 자유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열망을 가진 대다수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운동권 경험을 빌려, “순수하게 민주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다고 말한다면, 당시 운동권 선배들은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근성이다, 먹물 근성이 덜 빠져 사상무장을 위해 의식화 과정 및 학습을 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현 민정수석 조국 씨가 몸담았던 사노맹 조직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면, 당시 그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그들은 아마 부르주아 민주주의 한계 내에 우릴 가둬 매도 하려는가’라고 도리어 반문할 것”임을 전했다.
또 그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활동했던 NL 운동권이 ‘그 때 당시 대한민국 근간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들은 평화통일, 조국통일, 우리민족끼리를 주로 얘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그는 “사람들은 그들(운동권)이 자유민주주의 투쟁을 위해 노력했던 세력들이라 순진하게 믿었다”라며 “이는 너무 안이하고 순진한 생각”이라 못 박았다. 이유로, 그는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부드러운 표현 가령 ‘평화, 진보, 민주, 민중’ 등 무난한 단어 뒤에는, 운동권 세력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이라는 목표를 숨기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이강호 연구위원은 자신의 운동권(PD 계열)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운동권은 매 학년 겨울방학 때가 중요하다”며 “이 겨울방학 때 집중적 의식화 교육이 이뤄진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시즌 때, 한 운동권 선배는 내게 ‘인혁당, 통혁당, 인민전선, 난민전 등은 용공조작이 아니’러고 말했다”며 “나아가 ‘이것들은 남한의 변혁운동의 자취’라고 힘주어 강조했다”고 했다. 이른바 그는 “의식화 학습과정에서 ‘인혁당, 통혁당, 인민전선, 난민전’은 남한 변혁 운동의 4대 사건임을 누누이 역설했다”며 “나는 그렇게 들었고, 1년 뒤 똑같은 말로 직접 내 후배들에게 가르쳤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그는 “우리는 맑스-레닌 주의자, 공산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다”며 “통속적인 빨갱이라는 말로 스스로 자부하며, ‘그게 뭐 어때서’라는 자부심도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PC(폴리티칼 코렉트니스) 곧 피억압자라고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경향 때문에, 좌익-운동권의 실체가 가려진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그는 “좌익-운동권 세력이 정말로 독재정권 아래 모든 국민이 열망했던 민주화 및 자유민주주의를 정말로 목표로 했는지 되 물어야 한다”며 “어쩌면 좌파들은 군사 독재 정권의 지나친 폭압적 행태로 인한, 반작용으로 성장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우린 휴전선, 남북 대치의 엄중함을 어느 때부터인가 지루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그가 내세운 두개의 전선, 하나의 전쟁의 속뜻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두개의 전선은 ‘핵무장한 북한 김정은 정권’과 ‘남한 내 종북 반역 세력’”이라며 “그들 모두는 자유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성취를 부인하고 공격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종북 좌익의 두 가지 무기는 ‘포퓰리즘, 무상 공세’, ‘전쟁 반대, 남북 협상’”임을 강조했다. 무상공세를 말하며, 그는 “좌익 세력은 항상 무상 공세 정책을 펼치는데, 현 문재인 정부 들어서 소득주도성장으로 표면화 됐다”며 “이런 정책으로 지금 경제 지표가 나아지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아울러 그는 “현재 87년 민주화 체제는 귀족노조에 빼았겼다”라며 “민주노총 같은 귀족노조들이 고용세습하고 있는 중에, 현재 취업준비생들은 취직이 되지 않아 절망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 그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건 새로운 게 아니”라며 “예전 197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대통령 후보였을 때, 밀었던 ‘대중 경제론’에서 파생된 것”이라 전했다. 그에 의하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대통령 후보였을 적에, “세종대왕 시대가 선군의 시대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고속도로도 없었고 울산공업단지도 없었지만, 우리가 선군의 시대라는 것은 비록 그 시대에는 무명베옷을 입고 신천지를 걸어 다녔지만, 국가의 혜택이 고르게 분배되었던 것이오”라고 연설했다.
이를 놓고, 이강호 위원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면 한국인의 경제적 삶이 어떻게 됐을까”라며 “어쩌면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 무역 경제를 통해 세계 시장을 향한 개척을 추진했기에, 이 정도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독재 권력자와 국가계획주도 경제 개발로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이끈, 박정희 대통령의 명암(明暗)을 면밀히 봐야함을 강조한 셈이다.
다른 하나로, 그는 “좌익-운동권 세력은 남북 협상, 전쟁 반대, 평화를 기치로 내건다”며 “그러나 전쟁 반대를 이유로 구한말 조선은 침략한 일본을 향해 서명을 통해 깔끔히 항복했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는 전쟁 반대를 내걸고 일본에 항복 서명을 주도한 결과, 혼자 호위 호식한 이완용을 욕하지 않느냐”며 평화, 남북 협상이라는 달콤한 언사를 경계해야함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처칠 이전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히틀러와 평화 협정했다”며 “그 결과 영국은 히틀러와 더 큰 전쟁 비용을 부담했다”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러시아-유라시아 대륙이 소련 공산주의로 물들었던 상황 속에서, 한반도만큼은 예외였다”며 “1948. 8. 15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로, 그는 “당시 헝가리 등 동유럽권 나라들은 친 기독교,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높은 경제 성장과 자유를 누렸다”며 “그러나 소비에트의 위성국으로 전락함으로, 소련과 함께 엄청난 고생을 하고 경제는 구렁텅이로 빠졌다”고 전했다. “소련 해체 후 회복을 하고 있지만, 완전히 옛 모습 되찾지 못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특히 그는 “최근 김정은 방한을 염원하며 김정은 위인 맞이 환영단은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라는 플랜카드를 내걸었다”면서 “민주주의는 누릴 자격이 돼야 누릴 수 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나아가 그는 “백두혈통 김정은 정권을 모시고 싶은가”라며 “무신론과 반기독교를 자처한 공산주의는 그 자리에 ‘김씨 일가, 공산당’이라는 ‘신 없는 교회’를 세웠다”며 “그런데 ‘신 없는 교회’가 인간을 얼마나 비참한 처지로 전락 시켰는가”라고 되물었다.
끝으로, 그는 “어떤 사람은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도 허용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하지만, 공산당이 자유를 적대하는 이상 그 말 자체는 모순이고 균열”이라 힘주어 강조하면서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