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역사가 매우 깊은 이란 기독교 공동체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란 정부에서 기독교인을 체포하는 사례가 2018년 11월부터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Korea) 현숙 폴리 대표는 알보르즈(Alborz)주 카라즈(Karaj)에서 기독교인이 70 명가량 체포되었고, 테헤란일부지역과 다마반드(Damavand)에서30 명이 더체포되었다고 말했다. 12 월에는 이란 북부, 북동부, 남서부에서 기독교인들이 더 많이 구금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지난해 12 월 2 일, 쉬마 잔가네(Shima Zanganeh) 와 쇼쿠페 잔가네(Shokoofeh Zanganeh) 두 자매는 아흐바즈(Ahvaz)시에 있는 집에서 체포되었다.
경찰이 두 자매를 구타하고 심문한 다음에 세피다르(Sepidar) 감옥으로 이송했다고 순교자의 소리 현지 동역자가 알려왔다. 폴리 대표는 이에 대해 “가족들은 보석금을 내고 두 자매를 빼내려고 수차례 시도했으나 매번 거절 당했다”라고 전했다.
12월 6일, 이란 북동부에서는 기독교인 부부 아미르 탈레이푸어(Amir Taleipour)와 마흐나즈하라티(Mahnaz Harati)가 일곱 살 된 딸 앞에서 체포되었다. 이에 현숙 폴리 대표는 “그 부부가 아직 감금되어 있고 가족들과 연락도할 수 없다는 보고를 얼마 전에 받았다”며 “그 부부는 법적인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어린 딸은 친척들이 거둬서 돌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란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란기독교인과 직접 대화해 보면 순교와 박해가 그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현숙 폴리 대표는 “순교한 가족이나 친구나 교인을 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체험을 하면서 영적으로 아미르 탈레이푸어와 마흐나즈 하라니 부부 각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현숙 폴리 대표는 고르반도르디 투라니(Ghorbandordi Tourani)라는 이란 기독교인 이야기를 전한다. 2006 년 11 월 15 일, 투라니 목사는 투르크메니스탄 종교 지도자들이 주최한 집회에 초대받았다. 부모가 무슬림인데 왜 기독교인이 되었냐고 주변에서 묻자 투라니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을부인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슬람으로 돌아가지도 않을 겁니다”
일주일 뒤, 11 월 22 일, 투라니 목사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인데 투라니 목사의 설교를 듣고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졌다는 말이었다. 그 사람은 투라니 목사를 공개적으로 방문하기가 두려우니 그날 바로 공원에서 만나자고 요청했다.
투라니 목사는 공원으로 갔지만 약속시각이 되어도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투라니 목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장난감 가게에 들러 네 살 된 딸에게 줄 선물을 샀다. 그러나 집으로 오는 길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한 무리가 칼로 그를 찔러 죽였다. 현숙 폴리 대표는 “겁에 질린 이웃들이 투라니 목사 사모에게 사고 소식을 전했고, 사모님은 쓰러진 채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남편 모습을 보았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나 현숙 폴리 대표는 “사모님은 두려워 하기는 커녕 ‘여러분! 제 남편이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기독교순교자라는 걸 기억 하세요’라고 외쳤다”라며 “고통도 심하고 충격도 가라앉지 않았지만, 사모님은 남편의 죽음을 용기 있게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이어 사모님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했다.
현숙 폴리 대표는 “그 사모님만 그러는 게 아니”라며 “이란에는 이와 비슷한 간증 거리를 갖고 있는 기독교인이 많다”고 전했다. 또 그는 “투라니 목사 같은 순교자를 불쌍히 여기거나 세계 곳곳에서 박해가 증가하는 현상에 불안해하면 안 된다”라며 “대신, 그 순교자들의 가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그 순교자들이 증언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순교자의 가족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판단하겠느냐”라며 “순교자 가족들이 계속 어려워하고 홀로 고통당하면, 과연 그걸 보는 세상 사람들이 순교자의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