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NCCK는 ‘종교인의 관점으로 보는 난민’이란 주제로 4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 제2층 조에홀에서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특별히 이번 심포지움은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4대 종단을 초정해 난민을 바라보는 다양한 종교적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종교인들의 발제에 앞서,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가 ‘난민의 현황과 한국사회의 인권과제’를 발표했다. 그는 “1994년부터 2017년 까지 총 32,733건의 난민 신청이 있었다”며 “그 중 오직 792명만 난민 인정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2017년 한 해 동안 9,942건의 난민 신청이 전국에서 접수됐는데, 그 중 121명만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며 “난민 인정율은 1.51%이며, 2017년 12월 31일 기준으로 국내 인도적 체류자는 총 1,474명”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난민 인정률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사회는 어떻게 난민을 지원해야 할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난민이 한국사회에 있다는 건 전 국민이 알고 있다”며 “‘난민은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 ‘그들은 안전하다’는 걸 적극 알리지 않으면,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경향이 자동반사적으로 생겨버린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난민혐오와 무지는 정부의 정책 당국자들에게도 만연하다”라며 “22일 예산 소결위에서 난민 예산 30억에서 겨우 5억원 늘려주는 정도로 진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외국 난민에게 직접 생계비 예산은 고작 8억 정도만 책정 됐다”며 “나머지는 공무원, 통역사 예산에 배당됐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그는 “실제 난민 정책 공무원들은 난민들을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어떻게 끌어안을지, 혐오와 차별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지 않는다”며 “단지 하기 싫은 숙제를 했다고 대외용으로 보여주기 위한 식으로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난민에게 생계비 지급율도 5% 밖에 안 된다”라며 “생계비 신청을 위한 법무부 내부 기준에 있어 난민 중 성인 남성은 배제 된다”고 지적했다. “오직 여성 가족 아이가 있는 경우에만 해당 된다”며 “성인남성이든 여성이든 잠자고 먹고 거주하는 건 똑같으며, 그렇다면 성인 남성의 생계비 지원에 있어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인도적 체류허가는 오직 취업만 되고, 사회보험 혜택, 병원, 고용보험, 교육 혜택은 배제돼 있다”며 “특히 병원 보험 혜택이 없다보니, 단순 분만에도 20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문제점을 꼬집었다. 하여, 그는 “정책의 개선뿐만 아니라 종교계는 정책이 담지 할 수 없는 부분, 특히 난민 돌봄에 있어 적극 지원을 요청 한다”며 “난민의 정착 지원, 생활 지원, 상담 치유 등 종교계는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곧바로 천주교 측 심유환 신부 예수회 난민 봉사기구 한국대표가 ‘난민에 대한 가톨릭 입장’을 발제했다. 그는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 정책을 주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독일 내 난민에 대한 지속적 담론화 때문”이라고 전했다. 예로, 그는 “독일 내 루터교, 가톨릭은 난민에 대한 지침서를 이미 만들었다”며 “이처럼 우리 사회에 난민이 겪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두터운 토론이 활성화 된 담론 형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가톨릭이 난민을 대하는 태도의 핵심은 하나님대로 창조된 사람이기에, 난민을 소중히 여기는 것”임을 강조했다. 또 그는 “신약에서는 예수님은 이집트로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피난 간 난민 이었다”며 “나아가 바울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했다”고 말하며, 구별 짓기보다 난민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를 역설했다.
곧바로 원불교 강현욱 교무는 ‘난민 거부할 수 있는 교리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함께 해야 하는 교리적 근거는 차고 넘친다’를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세포 하나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 까지 모든 존재는 연결돼 있으며, 매 순간 끊임없이 변화한다”며 “존재 그 자체로 평등하게 연결됐기에 은혜와 평화가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차별은 폭력이 될 수 있다”며 존재에 차등을 주어 삶의 가능성을 막아버리기에, 개개인들에게 자력을 길러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삶의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신교 측 홍주민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소장이 발제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약자를 섬기는 디아코노스로 오셨다”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등 지배하는 모습이 아닌 작은 자들에게 시중드는 그리스도로 오셨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난민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 껴안을 대상”이라며 “디아코노스 주님을 따르는 교회는 난민으로 와서 난민과 함께 하신 예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난민들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신앙과 사랑은 별개가 아니”라며 “한국의 5만 5천개의 교회가 난민에게 다가서야 할 이유는 알량한 자선이나 시혜가 아니며, 난민으로 오셨던 그리스도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루터는 1523년 라이스니히 공동함 규정의 서문에 마태복음 25장 최후심판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빌렸다”며 “지금 곤경에 빠진 이를 섬기는 것보다 더 큰 예배는 없다고 말했다”고 인용하며, 나그네인 난민에게 적극 손을 건네고 동반해 줄 것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혜찬스님은 ‘어둠을 탓하기 보다는 촛불을 하나 켜는 게 낫다’로 발제했다. 그는 현대 인도불교의 대부인 암베드카르를 인용하며 “그는 부처의 가르침과 실천 행동을 강조했다”며 “모든 생물을 사랑하는 자무량심(慈撫量心)으로 난민들을 차별없이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부처의 제자인 유마거사가 「유마경」에서 한 말을 인용해, “중생이 아픈 연고로 보살이 아프다, 보살의 병은 중생의 아픔으로 일어난 것이니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는다”를 전했다. 이에 그는 “이웃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나의 아픔이 세상의 아픔이 되며, 중생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고 나의 행복은 세상의 행복이 됨을 밝히는 것”이라며 난민의 아픔을 적극 끌어안아 줄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