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정기학술대회가 26일 오후 2시부터 6시 반까지 숭실대 김덕윤 예배실에서 개최됐다. 제목은 ‘상흔을 넘어 통일로, 전쟁과 평화 그리고 기독교’이며, 한국전쟁 시기에 교회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묻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박보경 장신대 선교학 교수, 배귀희 숭실대 행정학 교수, 황미숙 목원대 한국교회사 교수, 최태육 한반도평화통일문화연구소 교수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박보경 장신대 선교학 교수는 ‘한국전쟁과 한국교회의 역할 - 전쟁과 평화에 대한 선교학적 단상’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발제 서두에서, 그는 “현재 남한 사회 보수와 진보 진영 간 갈등은 세대 간 갈등과 함께 얽혀있어, 감정의 골이 매우 깊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 전쟁을 전후로 극심한 가난을 경험한 세대는 대체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다”며 “그러나 이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적 경제 성장을 바친 세대”라고 설명했다.
반면 그는 “젊은 세대는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보다, 한국사회 부패의 장본인으로 낙인찍고 적폐로 치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여, 그는 “젊은 세대는 2000년 이후 한국사회에 상존하는 다양한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위계문화와 기성세대의 부패에서 찾는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교회는 화해 역할 보다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는 장본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남한 교회의 기성세대는 대체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교회 기득권자들 대부분은 교회의 보수적 성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그는 “교회의 보수화로 진보 성향을 띠는 젊은이들은 교회를 이탈하고 있고, 그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한국교회가 지금의 갈등을 풀어갈 화해의 사도로서 어떻게 그 역할을 감당할지, 한국 전쟁의 역사 속에서 해답의 단초를 찾고자 한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그는 “한국전쟁 때 한국교회는 휴전 반대 운동을 적극 펼쳐나갔다”고 밝혔다. 또 그는 “소련의 휴전제의로 1951년 여름부터 휴전회담이 시작됐으나, 남한 정부는 휴전에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했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특히 그는 “1953년 4월부터 5월까지 전국적으로 7500여회, 지방의회 대회 540회, 동원 인원은 약 800만 여명이나 됐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당시 교회의 입장을 전했다. 먼저 그는 "WCC(세계교회협의회)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이 한국전쟁에 관한 무력을 사용하도록 승인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며 ”이는 당시 동서양 진영의 교회로부터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장기화되자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미국 내 여론으로 인해, WCC(세계교회협의회)는 휴전을 지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반면 그는 “WCC와 달리 당시 남한교회는 휴전반대 입장을 적극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유로, 그는 “지금 38선에서 휴전이 된다면 국토는 영구히 양분될 것이며, 아시아와 전 세계의 공산화를 방지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당시 휴전 을 반대하고 북진 통일을 주장하는 대회들이 전국에서 개최됐다”고 전했다. 가령 그는 “서울에는 약 7000명이 탑골공원에서 북진통일기원대회를 개최했고, 부산에는 충무로 광장에서 1만 여명이 참여한 구국기독신도대회가 열렸다”고 했다.
박보경 교수에 의하면, 1953년 6월 15일 당시 한국기독교연합회의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휴전 반대 입장을 세계교회에 알리는 성명서가 발표됐다. 당시 성명서는 “한국정부와 국민은 일치단결하여 최근 판문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휴전안에 대해 한사코 반대하며, 한반도의 통일은 공산주의와의 유화가 아닌 공산주의를 굴복시킴으로 성취돼야한다”며 교회 입장을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남한교회의 휴전반대 입장은 재한 선교사들의 입장과도 공유됐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호레스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 에델 언더우드는 1949년 남노당 열성당원에 의해 피살당해, 당시 선교사 공동체와 남한교회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며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목도했던 선교사들은 반공적 의식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미국과 세계교회에 한국전쟁 상황을 알리는 목소리였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그는 “전쟁 중 한국교회의 반공의식은 월남한 북한교인들의 공산주의 체험에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당시 이북출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신앙과 공산주의가 함께 공존할 수 없음을 느꼈다”며 “공산당 탄압으로 인한 상처는 경험에서 나온 확신으로 이어져 강력한 주장으로 표출됐다”고 전달했다.
때문에 그는 “이북 출신 기독교인들에게 전쟁 중 천막 예배와 새벽기도는 타향살이를 달래는 유일한 안식처였다”며 “그 와중 피난민교회의 성도들은 고향에 돌아갈 날만 학수고대했다”고 전했다. 하여, 그는 “이들에게 휴전협정은 이북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영구히 차단하는 처사이기에, 북진통일만이 고향으로 돌아갈 유일한 대안이라 믿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당시 전쟁 중 한국교회 안에서 ‘반공’은 ‘친미’적 성향과 함께 갔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당시 해외구호품 절대 다수는 가톨릭과 개신교 해외구호단체들에 제공됐다”며 “복음을 전해준 것도, 전도에 필요한 막대한 물질적 원조를 제공한 것도 미국 기독교인 이었다”고 밝혔다.
종합하여, 그는 “남한교회는 당시 반공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에 대한 집단적 분노의 표출,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의 복합적 요소로 인해 휴전협정에 격렬히 반대했다”고 분석했다. 이를 놓고, 그는 “한국교회가 전쟁의 중단을 반대한 점은 표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심층적으로 휴전협정은 고향을 빼앗긴 실향민들이 돌아갈 수 없는 차단막 이었다”며 반대 원인을 진단했다.
한편, 그는 “2018년 한반도는 화해와 영구적 평화를 위한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50년 전 남한교회는 전쟁의 상처,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전쟁종식의 노력에 반대하고 말았다”며 “2018년을 사는 오늘 한국교회는 과연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선교로서의 화해는 타인을 향한 경계 넘음으로 시작되며 온전한 하나님의 샬롬을 구현함으로 완성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그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와 치유가 가능하다고 선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그는 “오직 참다운 화해의 사역을 완성하는 분은 하나님이며, 교회는 지속적인 화해를 선포하며 사역의 여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역할”이라며 겸손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교회가 오늘날 화해와 평화세우기 사역을 실천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를 붙잡는 분단이데올로기와 그로 인해 파생된 집단적 한을 정확히 인식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분단 이데올로기는 2018년 현재까지 남북한 불신과 의심 뿐 아니라, 남한 사회를 집단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적개심은 각 집단에 침전돼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불신하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고발 한다”며 “진보와 보수 집단은 서로를 향한 집단적 적의감을 표출하고 있으며, 이는 그야말로 ‘집단적 한’의 표출”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그는 “분단이데올로기로 인한 ‘집단적 한’의 원인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는 교회가 화해의 사도로 부름 받은 책임을 이행하는 첫걸음”이라고 진단했다. 나아가 그는 “교회 보수화는 남한 교회의 중추적 구성원으로 이북출신 실향민들의 전쟁 경험, 공산당으로부터 박해 등 복합적 상처로 인해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그는 “남한교회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내면의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 받아야 할 공동체이기도 하다”며 “한국교회가 화해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치유되지 못한 기성세대들의 아픔을 인정하고 어루만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신학자 이부덕의 말을 빌려, “남한교회가 감당해야할 선교적 과제는 바로 한국사회에서 이산세대가 겪었던 고통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것”이라 역설했다. 이에 그는 “남한사회의 이산 1세대는 뿌리의 근저, 손실, 비통, 자원의 빼앗김, 심리적 스트레스, 죄책감, 그리고 이루지지 못한 소원 등이 역기능적 요소로 남아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산 2세대도 또한 단절, 정서적 불균형, 세대 간 정서유통의 차단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오늘날 이산가족의 아픔은 인간의 기본권인 가족관계가 오직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70년 동안 전당잡혀온 ‘희생양’이 됐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한국교회 안에 들어온 이산가족의 깊은 상처, 그리고 여기서 배태된 분단이데올로기에 대한 인식과 치유 노력 없이는 한국교회는 화해의 사도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드시 한국 교회 보수화 현상 근저에 있는 상처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