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영화광들에게 또 하나의 파라다이스는 바로 영화관이다. 특히 긴 호흡으로 영화를 통해 삶을 성찰하기 원하는 예술 영화광들에게 예술 영화관이란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다. 가령 팝콘, 콜라 냄새가 진동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끊임없는 시지각의 명멸로 소비되고 배설되는 상업영화의 연속이며, 문화는 그렇게 진지한 삶의 성찰이 아닌 쾌락과 배설로 유지되는 소비주의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권역 안에 위치한 아트시네마, 시네큐브, 아트하우스모모 등은 예술 영화광들에게 도심 속 오아시스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가치관 안에서 진지하게 삶을 돌아보고 안식의 영성을 누리길 원하는 기독교 영화광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그들의 높은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생수의 강이 있다. 바로 신촌 필름포럼이다.
제 69회 한국실천신학회 정기학술대회가 "현대 문화와 실천신학"이란 주제로 신촌 필름 포럼에서 15일 개최됐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필름 포럼 대표 성현 박사는 ‘영화, 영성, 목회/필름 포럼과 함께’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필름 포럼 대표 성현 박사는 “현대 사회의 삶은 결국 상처 입은 삶이다”고 지적했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상처는 현대 자본주의를 지탱케 하는 요소다. 그는 “자본주의는 우리가 영혼과 분리된 채 살면서 고통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으며, 그 마취제는 편의점의 에너지 드링크처럼 도처에 널려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개인에게 영혼의 병이란 오히려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상품”이라고 분석했다. 어쩌면 광고, TV 프로그램 같은 대중문화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쉼을 가장해 영혼의 고통을 마비시켜주는 마취제일지도 모른다. 이어 그는 “영혼은 상처를 치유해달라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하지만, 영혼의 소리를 무시하면 술과 약물, 일과 쇼핑, 분별없는 대중매체라는 마취제에 중독되어 고통을 마비시키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특히 성현 대표는 “영화관과 카페는 소비주의사회의 대표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커다란 팝콘과 탄산음료를 들고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한 공간에서 두 시간동안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며 “멀티플렉스 공간에서 상영하는 대부분의 영화는 자본의 회수 및 이윤의 극대화가 가장 큰 목적인 자본주의의 마취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모든 영화가 그런 목적으로 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긴 호흡으로 삶을 성찰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예술적 성취는 최소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그는 “신자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신앙의 지평을 넓히도록 격려하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통합하기 위해 고민하며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페 역시 현대인들이 식사 한끼 비용에 버금가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향유하는 공간이지만, 향유는 금새 자본주의에 포박된다. 딱딱한 의자, 비좁은 탁자 간 거리,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획득된 원두는 쉼과 성찰 및 생명 존중 보다 ‘최소 비용 최대 효율’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산물인 셈이다. 하여, 필름 포럼 성현 박사는 자본주의로부터 거리를 둔 예술 영화관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의 관계성 안에서 삶을 성찰하고 안식을 누리는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성현 박사는 “이득과 손실이라는 냉정한 계산이 인간적 유대 관계를 절단하는 대규모 현대 사회 속에서, 제도화된 교회는 과연 현대인들에게 문턱을 낮추며 성찰과 안식을 충만히 공급하고 있는지”를 되물었다. 그는 기독교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문화를 역설하며, “현재 기독교 문화라는 것은 소위 예배와 집회 중심, 회심을 위한 도구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CCM, 영상매체물 등 기독교 문화 콘텐츠는 회심에 초점을 맞춘 전도 집회의 도구에 불과하며, 내용은 회심을 촉구하거나 헌신과 희생에만 치우쳐 있기에 필연적으로 일상과 괴리가 올수 있다”고 했다. 기독교 복음은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강조점이다.
이에 성현 박사는 대안으로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의 문학적 상상력을 인용했다. 즉 그는 “문학적 상상력이란 우리가 타인의 삶에 관심 갖도록 요청하는 윤리적 태도”라며 “가령 판사들이 문학적 상상력을 가질 때 그들은 공평과 정의, 그리고 편견 없이 사랑하고, 특정 집단 혹은 파벌의 이해관계와 거리를 두며 전체 공동체의 선을 생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이는 기독교 문화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조언으로 여겨 진다”고 주장했다. 하여, 그는 “성경을 오늘날로 가져와 공감과 연대의 눈을 열어주는 작업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며, 이는 신학자 뿐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타 집단에 열린 태도를 요청 한다”며 한국 기독교에서 상상력의 복구를 역설했다.
그런 점에서 “예술 영화는 상상력 복구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성현 박사 말한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의 가장 큰 장점은 상영시간만큼 몰입하도록 만들며, 이야기를 따라 깊이 있게 하나의 사건과 문제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영화는 수용적 태도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자세를 배양해 준다”며 “다른 매체나 교육은 대체로 지식전달과 토론 같은 분석과 비판으로 이어진다면, 영화는 공감 및 경청과 해석하는 힘을 기르고자 하며 나아가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로 이어 진다”고 평가했다. 영화라는 매체를 한국 기독교가 적극 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덧붙여 성현 박사는 “영화 예술이 상영되는 그곳에는 우리가 삶을 정확히 안다고 여기는 자신감을 무력화시키고, 우리에게 경외와 겸손을 배우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로버트 존스톤(Robert K. Johnston)의 지적처럼 단순한 오락 영화나 현실 도피적인 영화에서 이러한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예술영화는 대체로 이러한 영화적 체험과 깨달음을 제공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는 “필름포럼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신학적 대화를 영화와 함께 시도하고, 영화적 비평과 해석을 관객과 나누려고 한다”며 “설사 모든 예술 영화가 기독교 영화거나 기독교적이지는 않더라도, 진정한 인간됨을 그리는 영화는 관객에게 의식 너머의 초월적 세계로 인도하고 나아가 삶의 성찰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가령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는 기본 쇼트 길이가 5분을 넘어간다. 짧은 쇼트로 현란한 시지각을 자극하는 일반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타르코프스키는 우리에게 등나무에 기대 먼 지평선 바라보듯 삶을 성찰할 것을 요청한다. 성현 박사는 “형언할 수 없는 삶의 고통과 난제 앞에서 예술 영화는 그렇게 내면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여기에 직접적으로 초월과 신비에 대해 말을 걸어오는 영화도 있어,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기도 한다“며 필름 포럼의 존재 이유를 역설했다.
성현 박사는 “이런 이유로 필름포럼은 다른 예술 영화관과 맥락을 달리 한 영화관련 프로그램이 많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필름 포럼은 연중 가장 큰 행사로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있으며, 매년 부활절 이후 6일 동안 영화제를 개최한다. 국내 미 개봉된 기독교 영화와 예술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영화에 대한 기독교적 담론을 형성하는 축제 개념의 행사로 필름 포럼의 핵심 문화 사역이다.
그밖에 필름 포럼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매달 한 번 월요일 오전에 ‘시네마브런치’이라는 제목으로, 영성적 관점에서 예술영화를 보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강사의 해설을 듣는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현재 40-70명의 참석자들이 매번 참석하고 있다.
또 ‘시네마나이트’는 퇴근 이후 저녁시간에 영화평론가가 심도 깊게 영화에 대한 비평과 분석을 해주고, 정신과전문의를 초정해 영화를 정신분석적 입장에서 강의하는 ‘시네마인드’ 시간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네마토크’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신앙적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해주고 관객과 대화를 가지는 프로그램이 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영화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 경우에는 문화선교연구원과 함께 ‘무비톡가이드’를 제작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배포하고 있다. 아울러 신학자와 목회자 등을 패널로 진행하는 ‘시네토크’ 순서도 있다.
한편, 성현 박사는 “매년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는 한 작품을 선정해 소정의 사전제작지원비를 지원하며 기독영화인상을 시상하고 있지만, 문화계 전반을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기독교적 시각을 가진 창작자 양육과 지원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그는 “보다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창작자를 길러내야 할 것”이라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끝으로 성현 박사는 필름 포럼은 기존 성도들이 주중의 일상 후 안식과 배움과 교제를 누리는 장이 되길 소원했다. 때문에 그는 “필름포럼이라는 공간은 신앙의 구도자들과 ‘가나안’ 성도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필요와 이곳에서 누리는 혜택 때문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필름포럼은 교회만큼 직접적 예배와 복음 선포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지만, 교회가 열린 공간으로 환대의 역할이 요구된다면 필름포럼은 교회 밖 환대 공간으로 역할을 적극 감당하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어떤 이유로든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필름포럼에 오면, 자연스럽게 필름포럼이 표방하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다“고 자부했다.
차가운 서울에서 필름포럼의 노란 조명은 사람들 마음속에 예수의 빛으로 비춰지고, 교회가 좀 더 따뜻한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라며 성현 대표는 발제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