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박용국 기자] 북핵과 미사일로 당장은 말하기 어렵게 됐지만, '통일'은 늘 한민족의 화두였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통일은 지양해야 하며, '통일'의 모범답안은 "대한민국 체제로 이뤄지는 통일"이어야만 한다는 석학의 주장이 청년들의 가슴을 울렸다.
SNU트루스포럼은 지난 27일 저녁 서울대에서 남북관계 전문가 이동복 대표(북한민주화포럼)를 초청, "남북관계 변천과 통일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前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부대표 등 남북회담 실무를 오랜 동안 담당했고, 국무총리 특별보좌관, 15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동복 대표는 먼저 '통일 논의'가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아니냐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분단은 절대악' '통일은 절대선'이라는 관념론적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통일은 어떤 통일이라도 좋다"는 '통일만능론'을 싹틔웠고, 북한이 이를 이용해 대한민국 내에서 소위 '통일지지세력'과 '통일반대세력'으로 양분시켜 이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통일반대론자가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 지적하고, "국민들 사이에 통일에 대한 견해와 입장차가 존재해 ‘통일 지상론’과 ‘통일 신중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 최근 사회 일각에서 ‘통일신중론자’들을 ‘통일반대세력’, 또는 ‘분단지향세력’으로 매도하는 ‘역(逆) 매카시즘’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도 했다.
이 지점에서 이 대표는 과거 한국사를 돌아본 후, "분단이 유독 우리 세대만 유일하게 겪는 고통스러운 경험은 아니었다"며 "통일에 이르는 길도 순탄했던 적도 없었고, ‘통일’에 집착한 나머지 ‘분단’보다 못한 ‘통일’을 택하거나,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분단’ 상태에서도 소유하던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는 바보스러운 짓을 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일례로 이 대표는 "1948년 통일을 선택했다면 한반도는 이미 공산화 됐을 것"이라 지적하고, "그 동안 남북의 두 상이한 체제 간에 벌어진 엄청난 발전의 격차는 1948년 일시적 ‘차선책’의 차원에서 ‘통일’을 '잠시 유보'하고 ‘분단’의 길을 택한 대한민국 건국주역들의 ‘선택’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며 "곧 분단이 반드시 ‘죄악’일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입증된 것"이라 이야기 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분단’을 미화(美化)시키거나 예찬할 필요가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우리에게 ‘분단’은 어디까지나 불가피했던 '차선의 선택'이었을 뿐"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분단’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수많은 긍정적인 일들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도매금으로, 부정ㆍ부인해서도 안 될 것"이라 이야기 했다.
‘통일’의 모법답안, 대한민국 체제로 이루어지는 통일
이동복 대표는 "체제경쟁의 당당한 승자(勝者)의 입장에서 ‘통일’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시리(時利), 즉 시간상의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게 됐다"고 말하고, "1948년에 ‘분단’이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통일’도 당연히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제 우리가 이룩해야 할 ‘통일’의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체제경쟁의 승자인 대한민국의 몫이지 패자(敗者)인 북쪽의 몫일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이 대표는 "아직 설익은 ‘통일’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력을 더욱 키워서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독일식 통일’에 대비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할 때"라 했다.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헌법은 제4조를 통해 통일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공산당의 존재를 불법화시켜 놓고 있다"고 밝힌 후, 특히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선언’이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문건"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대표는 "6.15남북공동선언 제2항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사전에 개정되거나, 아니면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가 사전에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라고 하는 ‘공산국가’가 대한민국과 함께 ‘연방’이라는 이름의 ‘통일국가’에 합류하는 것은 명백하게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형법 제91조 1항 국헌문란죄를 저지른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이러쿵저러쿵 이른바 ‘통일방안’을 가지고, ‘방법론’의 차원에서 ‘통일’ 문제에 접근하려 시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같은 노력은 도로(徒勞)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남북의 극단적으로 이질적이고 상호 부정적인 두 체제 사이에 ‘통일방안’에 관해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그는 "우리의 통일 노력이 ‘사상누각’, 혹은 ‘신기루’가 되어서는 안 되며, 통일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착실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이 대표는 지금이 '통일국가'라는 결과보다는, '분단관리'라는 과정에 치중해야 하는 시기라 이야기 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우선 남북 간의 분단 상태를 제도화하여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이미 체제경쟁에서 실패한 북한에서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체제변화가 발생하거나 아니면 북한의 전근대적인 수령 독재체제가 해체되어서 쌍방의 두 상이한 체제가 통합되는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정도의 '가치의 상사성'(相似性)과 '체제의 상용성'(相容性)이 확보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불어 이 대표는 통일이 이제 기성세대가 아닌 새 세대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통일’은 ‘분단이전 세대’에게 ‘원상회복’(즉 Status Quo Ante)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재통합(Reunification)’의 문제라면, ‘분단이후 세대’에게는 하나의 창조적 가치로서 ‘새로운 통합(New Unification)’의 문제"라며 "이 같은 차이는 앞으로 우리의 ‘통일정책’의 향배(向背)와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면서 강연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