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나래 기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여성들의 DMZ(비무장지대) 걷기는 올해도 계속된다. 남북관계가 단절기를 맞은 가운데 세계 여성운동가 30명이 북에서 남으로 비무장지대를 넘었던 2015년 국제여성평화걷기의 정신을 재현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경계를 넘는 여성들의 평화운동 주도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1992년 남북 여성들은 분단 후 첫 남북 여성교류였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위해 판문점을 거쳐 서울과 평양에서 만남을 가졌다. 판문점을 통한 최초의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여성들이었다.
광복 70주년, 남북분단 70주년을 맞아 지난해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맥과이어와 리마 보위를 비롯한 세계 16개국 여성 평화운동가 30명은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쪽에서 남쪽으로 비무장지대를 종단하는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Cross DMZ)’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국내 여성‧평화단체들은 ‘2015 WomenCrossDMZ 한국위원회’를 구성했고, 여성 평화운동가들은 남북한 정부의 승인을 받아 5월 24일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DMZ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국제여성평화걷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이자 2010년 천안함 사태로 단행된 5.24 대북제재 조치가 내려진 지 5년 째 되는 날로 남북교류가 거의 중단된 상태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32개 여성·평화단체로 구성된 2016여성평화걷기조직위원회(공동대표 김성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이사장, 박남식 전 경기여성네트워크 대표)는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오는 28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일대에서 여성평화걷기를 개최한다. 애초엔 세계여성들과 함께 남에서 북으로 올라갈 구상이었지만, 남북관계 단절국면으로 올해는 국내 여성, 평화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남쪽 비무장지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을 포함한 총 6km를 걷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진행될 여성평화걷기에는 한국의 분단 1, 2, 3, 4세대 여성들과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해외 여성운동가 등 2천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지난해 육로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해외 여성운동가들도 다시 모인다. 육군대령 출신의 미국 평화운동가 앤 라이트(Ann Wright), 국제NGO단체 ‘피스보트’ 메리 조이스(Meri Joyce), 일본 여성국제평화자유연맹 고즈에 아키바야시(Kozue Akibayashi), 최애영(Aiyoung Choi) 전 뉴욕가정상담소 이사장 등이 참여한다.
참가자들은 평화의 열림(인사말, 축사, 길놀이)으로 시작해 임진각 생태탐방로와 평화누리길 6km를 걷고, 평화의 어울림(여성평화걷기 선언문낭독, 공연)으로 마무리 짓는다. 참가시민들이 함께하는 평화 플래시몹, 경기여성평화합창단 공연, 함께누리 풍물패 공연, 평화의 춤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2016여성평화걷기 참가는 여성뿐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걷는 구간 중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통과를 위해 사전신청을 해야 한다. 마감은 5월20일. 홈페이지(www.wpwalk.kr)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문의전화는 031-907-1003(고양파주여성민우회)으로 하면 된다. 참가비는 무료이다.
한편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5월 24일(화) 오후 2시 이화여대 LG컨벤션홀에서 여성평화심포지엄을 연다. ‘여성, 3.0평화시대를 열다’라는 제목의 이번 심포지엄은 유엔 안보리 최초의 여성권리 결의안인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을 중심으로 평화구축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세부 주제는 ▲화해와 평화과정의 리더십 ▲위장하는 군사주의 ▲탈핵의 길, 생명의 길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 ▲식탁에서 평화협정테이블까지 등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발표를 한다.
다음은 '2016 여성평화걷기 선언문' 전문이다.
[2016 여성평화걷기 선언문]
‘5.24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우리는 ‘전쟁 없는 한반도’, ‘생명·평화·상생의 한반도’를 바라는 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1991년,92년 남북아시아여성들의 비무장지대 종단, 2015년 국제여성걷기의 발걸음을 이어 오늘 다시 평화의 길에 나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하나.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전쟁의 기운은 오직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만 해소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은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은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즉각적인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더불어, 지난 몇 년간 중단된 남북교류협력을 재개하여 남북 주민들 간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끝없는 기다림 속에 고통받는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을 하루 빨리 앞당겨야 합니다.
하나.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 영구 평화의 초석을 놓아야 합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 4조 60항에 규정된 바와 같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과 전쟁의 위협을 종식시키고 한반도 비핵화의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군비 경쟁에 소요되는 비용은 시민의 복지, 환경, 평화 정착 등 ‘생명·평화·상생의 한반도’를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 한반도와 세계의 모든 평화구축 과정에서 여성의 리더십을 확대해야 합니다.
여성은 평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이며, 동시에 무장 갈등과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였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 1325>에 규정된 대로 “갈등의 예방과 해결, 그리고 평화구축 과정에서 여성의 완전한 참여”가 이뤄져야 합니다. 더불어 모든 여성에 대한 전시 폭력을 철폐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무력으로, 혹은 궁핍한 이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의 위협이 영원히 사라지는 그날까지 평화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 평화의 길에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남과 북의 모든 여성과 남성, 전 세계의 정의로운 시민들이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