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이하 연세대) 이사회(이사장 방우영)가 최근 정관을 개정해 기존 ‘교단 파송’ 이사 관련 규정을 없애자 기독교계는 이를 ‘건학이념 훼손’으로 판단했다. 이에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며 반드시 학교를 지켜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연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세대처럼 외국인 선교사나 한국인 중 기독교인이 세운 학교는 국내에 다수 존재한다. 서울 소재 4년제 종합대학 가운데 이런 학교는 연세대를 비롯해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화여대), 중앙대학교(이하 중앙대), 숭실대학교(이하 숭실대), 명지대학교(이하 명지대) 등이 대표적이다. 과연 이들 학교에서 ‘기독교 정신’은 얼마나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까.
이화여대, ‘기독교인’ 이사 선임 규정 없어
중앙대, “설립자의 신앙, 학교와는 무관”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는 정관을 통해 ‘기독교적 지도자 양성’(제1장 제1조)이 법인 존재의 목적임을 명시하고 있고, 이사 및 감사 등 임원의 자격도 ‘기독교인’(제3장 제25조 1항)으로 못 박고 있다. 기독교 대학들 중 비교적 분명히 건학이념을 명문화하고 있는 셈이다. 설립자인 故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이 연세대 본관 앞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런 연세대가 본격적으로 논란이 된 건 지난해 말부터였다. 당시 이사회가 ‘예장통합, 기감, 기장, 성공회로부터 이사 1명씩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기존 이사 선임에 관한 정관(제24조 제1항)을 ‘기독교계 2인’으로 바꾸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기독교계는 각 교단이 가졌던 이사 파송 권한이 정관 개정 후 이사회로 넘어간 것을 문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 존재하던 ‘기독교 흔적’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연세대와 마찬가지로 이화여대 역시 미국인 선교사(스크랜턴)에 의해 세워졌다. 학교법인 이화학당(이사장 장명수) 정관에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제1장 제1조)이 법인 설립의 목적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연세대와 달리 이사의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한정하거나, 선임 과정에서 교단 추천을 받는다는 등의 규정은 없다. 다만 개방이사를 ‘기독교 설립이념에 적합한 자’(제3장 제1절 제20조의 2)로 정할 뿐이다. 현 이사들 직업 모두 기독교와 무관했다.
“이화여대에서 기독교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은 수 년 전부터 있어왔다. 전통으로 이어지던 ‘채플’은 얼마 전 ‘거부운동’까지 일어나며 유명무실해졌고, 학교가 동성애 동아리를 인정하면서부터 이들과 기독교 동아리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선 “학교가 기독교 관련 동아리를 지원하는 데는 인색하면서 동성애 관련 동아리 지원엔 적극적이다”는 말까지 돌았다.
이 학교 기독교학과 출신 한 교수는 “(이화여대가) 기독교 대학인 만큼 기독교를 대표할 만한 분이 이사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대는 故 임영신 박사가 세운 학교다. 임 박사는 정치가 겸 교육가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인 부모 밑에서 자랐고 그 역시 독실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어린 시절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고, 친구의 목사 아버지로부터는 한국사를 배웠다. 또래 친구들과 기도회를 조직하기도 했던 그의 석사학위논문은 ‘한국불교도들의 기독교신앙으로 전향하는 길’이었다.
중앙대를 연세대나 이화여대처럼 ‘기독교 대학’으로 분류할 순 없으나 다수의 교계 관계자들은 설립자의 ‘기독교 정신’이 학교에 깊이 스며 있다고 보고 있다. 이 학교 출신 관계자에 따르면 중앙대는 비교적 근래까지 공식 문서를 통해 학교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음을 알렸고, 입학 및 졸업식 등 각종 행사를 기도로 시작할 만큼 기독교적 색채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독교 정신이 점점 희석돼 최근에 이르러선 아예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심지어 학교측이 관련 문서에서 기독교적 용어를 삭제하고 행사 전 기도를 없애는 등 노골적으로 기독교와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고도 했다. 그는 “학교 측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이 학교 법인 관계자도 “설립자가 기독교 신자였을 뿐, 학교와 기독교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숭실대나 명지대 등에선 아직까지 기독교 정신이 뚜렷했다. 하지만 이들 학교 역시 시간이 갈수록 그 설립정신과 건학이념이 불투명해질 것이라는 게 대다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들이 취업률에 목을 매면서 기독교 대학들마저 그 정신의 구현보다 당장의 결과에 급급하다”며 “기독교 정신의 희석이 비단 연세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