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의 성서화 탐구] "일곱 촛대 사이에서 말씀하시다"

목회·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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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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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로 읽는 요한계시록(1)

[기독일보=강정훈 교수] 요한계시록은 성경 중에서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책이다. 계시록이라는 용어부터 생소하고 형형색색의 말과 재앙을 부르는 나팔소리. 무시무시한 짐승과 붉은 용, 진노로 가득 찬 항아리, 작은 책과 맷돌을 든 천사들,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7, 4, 12, 666 등 난해한 숫자 등 환상과 상징과 비유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시대는 물론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16세기 이전에는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성경을 읽지 못했다. 로마제국의 라틴어 성경만이 있었으므로 읽기 어려웠으며 인쇄술이 없던 시절이라 손으로 한자 한자 베껴 쓴 필사본 성경은 고가여서 교회와 수도원의 사제만의 전유물이었으며 일반대중은 성경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삽화(메뉴스크립트)를 보면서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이 어려운 책이라 하더라도 중세의 필사본성경의 삽화를 보면서 성경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 삽화는 평생을 수도원 필사실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필사하면서 난해한 구절들은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그림이야기로 삽화를 그린 이름 없는 경건한 필경사들 덕분에 상징과 비유까지도 우리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의 염원이 있다. 그것은 11세기 에스파냐의 베아투스 본(The Beatus of Liebana)의 요한묵시록주석서와 11세기 독일 라이헤나우 수도원에서 제작된 밤베르크묵시록(Bamberg Apocalypse) 등 약 20여 책의 채식(彩飾) 필사본(Illuminated manuscripts)으로 된 묵시록의삽화를 찾아서 성경 최대의 난공불락의 성체인 요한계시록을 현대판 <그림으로 보는 성경책>으로 쉽게 재편집하는 것이다.

■ ​요한계시록을 받고 있는 사도요한

▲요한계시록을 받고 있는 사도요한(John Receives the Book of Revelation)ㅣ밤베르크묵시록(The Bamberg Apocalypse)ㅣ라이헤나우 수도원/콘즈탄츠호(The monastery of Reichenau/Lake Constance))ㅣ제작시기 1,000~1020년경ㅣ밤베르크 주립도서관, 독일(Bamberg State Library, German)

밤베르크묵시록 삽화 폴리오(쪽 숫자) 1번인 위의 그림은 <요한계시록을 받고 있는 사도요한>이다. 이 메뉴스크립트는 요한계시록의 서론인 첫 장의 앞부분(1장1-8절)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중세 교회의 사제는 신자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요한계시록 제1장 제1절을 읽어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1:1)

그리고 그림을 가리키며 차례대로 강론한다. 삽화의 등장인물은 천사와 사도요한이다.

머리에 초록 후광이 있는 요한은 흰 옷에 붉은 외투를 입고 종과 같은 모습으로 무릎을 굽혔다. 베일로 가린 손으로 공손히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 책이다. 이 책 표지에는 두루마리책의 일곱 봉인을 상징하는 반짝거리는 일곱 개의 디스크가 장식되어 있다.

계시(啓示)란 말은 영어로는 레버레이션(revelation) 또는 묵시(黙示)라는 용어로 흔히 번역하는 아포칼립스(apocalypse)인데 이는 "열어서 보여 준다"는 뜻의 헬라어 '아포칼립시스'에서 유래하였다.

계시를 전한 이는 구름 가운데서 나타난 후광을 두른 천사이다.

계시를 받는 이는 사도요한으로서 스스로 종이라고 낮추었는데, 예수의 12제자 중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3인의 수제자이며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주의 품에 의지했던 나이가 제일 어렸으나 예수의 십자가 고난 때에 홀로 성모를 부축하고 모친을 부탁한다는 예수의 유언을 들은 참 제자이다.

계시를 받은 장소는 에게해의 작은 섬인 밧모섬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는 에베소에서 전도하다가 그리스찬을 핍박한 도미티안황제(재위81-96)의 박해를 받아 이 섬에 유배된 상태이다. 요한복음과 요한1,2,3서를 저술한 요한은 백발과 흰 수염이 날리는 노년에 이 계시를 받아 AD 95년경에 쓴 편지가 요한계시록이다.

​■ ​환상으로 본 부활하신 그리스도

▲일곱 촛대 가운데 선 인자(The Son of Man among the seven lampstands)ㅣ밤베르크묵시록(The Bamberg Apocalypse)

​​위의 삽화는 밤베르크묵시록의 두 번째 그림으로 요한계시록 제1장의 후반 부분(1:9-20)에서 요한이 듣고 본 환상을 그린 것이다.

어느 주일(일요일)에 성령에 감동된 요한의 등 뒤에서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적어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는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놀라서 돌아보니 일곱 촛대 가운데 칼을 입에 물고 광채가 나는 분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그가 젊은 시절 십자가 아래에서 바라보던 인자가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인자(the Son of Man)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이다. 요한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기위해 부활하신 예수의 환상을 꼼꼼하게 기록하였으며 밤베르크묵시록의 필경사는 그대로 삽화를 그렸다. 대제사장이 입는 긴 옷에 금 허리띠를 두르고 눈은 불꽃같고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있다. 그리고 입에는 예리한 양날 칼이 나오고 있는데 칼이 나온다는 것은 말씀이 힘이 있음을 상징한다.

일곱 금 촛대는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인 아론 때부터 성소에 불을 밝힌 일곱 가지가 달린 금 촛대인 메노라(menorah)에서 연유한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와 그의 교회를 상징한다.

일곱이란 숫자가 계시록에 54회나 나타난다. 일곱 교회,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이적, 일곱 대접, 일곱 가지 마지막 일 등이다. "7"은 성경의 묵시문학과 히브리문학에서는 완전 또는 성취를 의미한다.

■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요한계시록 서론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로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고 마지막 날에는 심판주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는 핵심적인 계시를 미리 알려 준다.(1:7-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ㅣ베아투스 리에바나의 요한묵시록주석서ㅣ1047년ㅣ마드리드국립도서관,(자료:스페인 모레일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1:8)

밤베르크묵시록은 신성로마제국의 오토3세(Otto III)의 후원으로 제작을 시작하였으나 그의 사후 하인리히2세(Henry II) 때에 완성되었다. 이 묵시록에는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삽화를 넣은 복음서 성구집(Gospel Lectionary)도 포함되어 있다.

밤베르크묵시록이 필사된 라이헤나우는 독일 남서부에 있는 콘즈탄츠호의 작은 섬으로 11세기 초에 주교구(主敎區)가 설치되었고 수도원과 대학과 미술학교가 융성한 오토왕조의 종교와 문화 중심지였다.

신성 로마 제국 카롤링거 왕조의 미술 유산을 이어받은 오토왕조 미술은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사본 채식 미술가들은 밤베르크묵시록 삽화에서 보는바와 같이 엄숙하고 극적인 제스처와 선명한 채색을 많이 사용하여 유럽에서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특히 당대의 종교적 경건함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방대한 연작 세밀화를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성서화 연구에 큰 자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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