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기독일보] 아시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장로교총회(PCUSA) 총회장을 역임한 이승만 목사(Rev. Syngman Lee)가 14일(현지시간) 오전 향년 83세의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PCUSA 선교부 부디렉터를 비롯해 NCCUSA 회장 및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고인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아시아아메리칸목회센터 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조지아 디케이터에 위치한 콜롬비아신학대학원 근처에 거주하는 자녀와 가까이 지내고자 최근 애틀랜타로 이주한 고(故) 이승만 목사는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 교계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존경 받는 목회자로, 이민목회 현장의 산역사로 평가받는다고 한미목회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또 고령의 나이에도 후학들을 가르치고 돌보고자 하는 대단한 열정으로 콜럼비아에서의 새로운 사역을 계획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교단 부의장인 그레이디 파슨스 목사는 "이승만 목사님은 지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회고하면서 "그는 한국전쟁으로 희망을 잃은 땅에서 날아와 선교에 있어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겸손한 영혼을 가진 믿음의 거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소천과 관련해 유가족 측은 암이 급격하게 번지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온 고인이 '매일 지나온 삶과 교회, 사역, 많은 관계들과 경험들에 대해 깊은 감사를 나타냈다'고 설명하며 "그가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지만 또 다른 누군가 정의와 평화, 화해를 위해 세상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을 이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평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고 이승만 목사의 유가족으로는 아내 해선 여사와 자녀 애나, 피터, 미나 씨가 있다. 향후 장례일정은 교단을 통해 공지될 예정이다.
1931년 3월 25일, 평양에서 태어난 이승만 목사는 장로교회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 평양 성화신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모와 네 명의 여자 형제들은 북한에 두고 남동생과 함께 남한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후 서울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도에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1964년도에는 예일대학교 신과대학에서 신학석사 학위, 1971년도에는 시카코신학교에서 종교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고 1960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목사는 북한의 가족들의 소식을 모른 채 지내다, 1978년 북한의 여자 형제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모친은 8년 전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공산당원들에게 잡혀 옥사한 뒤였다. 이런 뼈아픈 경험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평화와 화해, 특별히 남과 북의 평화 논의를 이끌어 가는 큰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