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강정훈 교수] 예수가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친 후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나귀를 타고 가는 흙먼지 길 위에 이름 없는 무리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 펴기도 하고 올리브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호산나!"하며 함성을 지른다.
예수를 따르던 무리를 히브리어로 '오클로스'라 한다. 그들은 상처받고 버림받은 얼굴들이며 율법과 죄의 사슬에 묶여 마음껏 뛰고 달릴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절망과 탄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소문난 나사렛 예언자 예수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무리들이다. (주1. 오클로스, 성종현, 신약총론, 1991. 장신대출판부)
예루살렘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들 앞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예수가 그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신 것이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였구나, 이제 네 원수들이 돌아가며 진을 쳐서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쳐들어 와 너를 쳐부수고 너의 성안에 사는 백성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네 성안에 있는 돌은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공동번역 루가 19:41-44)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한 위의 기사를 기록한 복음서 저자들은 화해와 평화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끝까지 배척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수가 눈물로 탄식하였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는 예수를 앞세워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민족 이스라엘을 재건하여 그 옛날 다윗왕국의 영화를 되찾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열망에 불타던 무리들이 위대한 예언자의 눈물을 보고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늘나라 메시지를 들려주시던 그 분이 나약한 분이란 말인가? 더구나 이 위대한 예루살렘이 멸망 한다니 무슨 당치않은 소리인가? 그동안 따라 다니면서 감동하고 열렬히 환영하던 자들도 더러는 낙담하고 분노하지 않았을까?
예수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두 가지 구별된 성품을 지니고 있다. 죄가 전혀 없는 의인이지만 인간의 정상적인 과정 곧 영아기, 유아기, 청소년기를 두루 거쳤고, 모든 일에 우리 인간들과 같이 목마름, 피곤함, 수면, 사랑과 고민, 슬픔, 시험, 죽음 등을 겪으신 분이다. 예루살렘성의 폐허를 알고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결국 평화의 길을 모르던 유대 지도자와 군중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로마 총독으로 재판을 맡은 빌라도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변명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그 말에 유대 백성들이 대답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 지어다" 하였다.
예수가 눈물로 예언한 예루살렘성의 파괴는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치던 유대인들의 그 함성의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 전 그들의 당대인 AD 70년에 일어났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네로황제의 명령으로 베스파니아누스와 그 아들인 티투스(Titus AD. 39~81)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무자비하게 함락되었다. 처절한 몸부림을 쳤지만 3년 만에 마사다(Masada)에서 열성당원까지 전멸하였다. 로마군에 학살당한 유대인은 60만~100만 명에 이른다고 전한다. 예루살렘성은 바로 그 유명한 '통곡의 벽' 만 초라하게 역사에 남긴 채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그 때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되어 2000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며 나라 없는 백성으로 멸시를 당하였고, 근세에는 히틀러(Adolf Hitler)에게 약 600 만 명이 학살된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참혹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티투스는 71년에 포로를 끌고 로마로 오게 되고 그 후 79년, 39세 때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그의 재임기간에는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인한 폼페이 멸망, 로마중심부의 대화재와 유례없는 전염병의 창궐 등 많은 재난들이 있었다. 그가 재위 2년을 조금 넘기고 40세에 숨을 거두었을 때 유대인들은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죄로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
티투스 개선문은 베스파니아누스와 티투스가 유대 지방의 반란을 진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개선행렬 속에서 노예로 끌려오는 유대인 포로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 때 쓰던 성스러운 일곱 개 가지를 가진 촛대인 메노라( Menora)를 전리품으로 메고 옮기고 있다. 이 개선문의 메노라는 유대인의 오랜 수치요 '디아스포라,'즉 흩어진 백성들의 상징으로서 유대인의 슬픈 역사를 보여준다.
십자가고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는 예수를 따르던 그 땅의 잡동사니 무리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의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무지하고 허기진 그들의 모습은 오늘에 사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처럼 고난의 역사를 가진 우리들이지만 아직도 진정한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