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던 젊은 시절에 성경을 읽다가 노래와 비탄함과 찬양을 노래한 다윗왕의 시편(詩篇)을 읽으면 순수하고 벅찬 감동에 잠긴다. 그러나 시가문학(詩歌文學)의 하나로서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살았던 솔로몬왕이 쓴 전도서를 대하면 처음부터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해 진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첫 구절을 읽노라면 우선 궁극적인 의문에 휩싸인다.
우리 인생은 짧고 만족이 없는 미미한 존재이며, 무의미하고 덧없는 삶을 사는 허무한 존재란 말인가? 인간이 지닌 지혜의 허망함과 해 아래서 사는 인생의 절망적 현실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17 세기 초 네덜란드에서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노래한 전도서의 그림이 나타나서 이상하리만치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르멘 스텐비크(Harmen Steenwyck 1612-1656)의 <정물 : 인생무상의 알레고리>란 정물화를 보면 그림의 중앙에 커다란 해골이 자리 잡고 있어 우선 섬뜩하다.
이렇게 해골과 함께 죽음과 허무의 상징인 물건들이 가득한 그림을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Still Life)라고 한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덧없고 무의미함 (vanity, meaningless)'이라는 뜻으로 구약성경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에서 따온 말이다.
스텐비크가 그린 정물화 중 해골은 성서화(biblical art)에서 십자가 앞에 나타날 때에는 인간의 조상 아담의 해골이다. 그것은 갈보리산이 아담의 무덤이 있던 산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신학적으로 예수를 제2의 아담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는 인간존재의 유한성, 즉 '죽음의 상징'이다.
포켓용 시계와 오일램프는 덧없이 흘러가는 삶을 뜻한다. 나선형 조개는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고가의 상품으로 부(富)의 상징이며 전통적으로는 출산과 번식의 상징이다. 세상의 지식을 나타내는 몇 권의 책이 쌓여있고, 세속적이고 감성적 쾌락을 뜻하는 악기가 보인다.
값비싼 자색 실크 옷은 사치스럽게 살았던 흔적이며, 수입품인 일본산 사무라이 칼은 권력과 장인기술을 상징하며 아름답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치명적인 무기이다.
뒤에 배치된 큰 도자기는 물이나 기름을 넣어두는 생활필수품인데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다. 그런데 이 항아리의 손잡이 왼쪽 끈을 따라 자세히 보면 사람의 코와 입의 형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는 깨어진 그릇같이 덧없이 사라져 간 로마황제를 상징한다.
결국 이 정물화에 배치한 물건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너의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교훈으로서 이 세상에 저장해 두면 도둑이 들거나 녹슬어 쓰지 못하는 덧없는 재물이며 인간의 수고와 지혜, 권세와 쾌락도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고 세상만사는 다 기한이 있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기에 이 정물화에는 허무의 상징물만 가득 찬 것이 아니다. 스텐비크는 대각선 구도의 아래 부분은 신(神)과 함께 하지 않은 현세(現世)의 허무를 상징하는 사물들을 배치하고, 위쪽 반대편은 영적존재로서의 인간의 공간을 별도로 두고 있다. 여기에는 밝은 빛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 곳은 현세가 아닌 내세(來世)이며, 신을 잊어버린 현세의 허무를 박차고 믿음으로 구원(救援)에 이르는 길을 인간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바니타스 정물화 뿐만 아니라 과거의 유명한 교부나 성인들의 초상화나 화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 때에도 바니타스 정물을 배치하였다.
스텐비크의 스승이자 삼촌인 다비드 바일리(David Bailly 1584-1657)도 삶의 허무를 주제로 한 <바니타스 심볼이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67세에 그린 이 자화상에는 흘러간 세월을 뜻하는 젊은 시절의 자신의 초상을 잡고 있다.
해골과 뼈, 엎어진 유리잔, 시든 꽃 그리고 거울과 비누방울, 깃털펜, 연기가 피어오르는 불꺼진 촛불 등은 모두 잠간 보이다가 없어질 상징물이다. 그 밖에 금화와 진주, 공예품은 부귀를, 담뱃대 조각 책 등은 감각적 쾌락과 지식을 상징하는데 모두 죽음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들이다.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의 후반기에는 정물을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필리프 드 샹파뉴(1602-1674)의 <해골이 있는 정물>이란 작품에서 배치된 정물은 해골과 모래시계와 튤립 꽃 뿐 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Memento mori)"고 외치는 해골과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모래시계는 죽음을 상징하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그런데 튤립 꽃을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1630년대의 네덜란드는 튤립 투기가 절정에 달하였다. 당시 직공이 1년에 200 플로린을 벌었는데 희귀한 줄무늬 튤립 한 뿌리는 1200 플로린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1637년 튤립 값의 거품이 빠지면서 가격이 95%나 폭락하였다. 샹파뉴는 많은 바니타스 상징물 대신에 그들이 뼈저리게 경험한 헛된 꿈이었던 튤립 꽃 하나로 바꾸어 배치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왜 바니타스 작품이 등장하였을까? 그것은 어찌 보면 역사적 필연이라 하겠다.
바니타스 정물화를 창시한 대표적화가인 베일리와 스텐비크는 모두 네덜란드의 레이덴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 도시는 인간의 죄 많음을 강조하고 윤리적 기준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금욕주의자 '칼뱅신학의 중심지'였다. 당연히 그림을 주문하던 후원자들도 종래의 성모 마리아 중심의 구교 성화가 아니라 칼뱅의 금욕주의 그림이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잘사는 사람이 많아야 그림이 팔린다. 당시 네덜란드의 산업이 번성하였던 것도 막스 베버(Max Waber)의 명저인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899)"에서 칼뱅의 금욕주의와 직업소명설이 서구의 근대자본주의를 이끌어 나갔다고 설파한 것과 맥이 닿는다.
그 당시 유럽을 전체적으로 보면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구교의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으로 신구교간에 종교상의 대립에 끝나지 않고 30년전쟁(1618-1648)이라는 인류최초의 세계대전을 경험하였다. 같은 뿌리의 기독교인 간의 종교전쟁으로 네덜란드는 독립을 얻었지만 독일을 비롯한 서구제국이 80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끔찍한 싸움이었다.
중세의 종교만능시대는 가고 허무와 무상이라는 바니타스가 현세의 본질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결국 그들은 허무를 넘어 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바니타스 회화(Vanitas Painting)는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Pessimism)와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허무주의(Nihilism)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칼뱅주의 신학이 반영되고 성서의 교훈을 주제로 한 차원이 높은 성서화이다.
이를 대하고 있으면 허무의 상징인 정물들의 속삭임이 들려서 우리를 숙연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