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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협 원례회가 ‘‘원로목사님과 담임목사에게서 듣는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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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가 바로 원로목사와 후임목사간 갈등이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이런 갈등은 종종 교회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심하면 법정 분쟁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가 9일 아침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에서 ‘원로목사님과 담임목사에게서 듣는다’를 주제로 9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모범적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중앙교회와 영등포교회, 중앙성결교회의 원로, 후임 목사가 발표자로 나서 ‘올바른 사역계승’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나눴다.
쌍방이 피차 행복한 관계
먼저 한국중앙교회 원로 최복규 목사는 원로, 후임 목사간 관계에 대해 “한 마디로 행복한 관계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주님이 맺어주신 부자지간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원만한 관계나 무난한 관계가 아니라 쌍방이 피차 행복한 관계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뤄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임 청빙을 위해 ▲교회법대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세처럼 아쉬운 마음 없이 퇴임하게 하소서 ▲어떠한 간청, 추천,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혈연과 학연, 지연 등을 배격하게 하소서 ▲당회(청빙위원회)에서 성경과 교회법대로 결의한 것을 반드시 지키게 하옵소서 등을 기도했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후임목사가) 민속절기나 교회절기 때마다 편지와 함께 일금을 봉투에 넣어 준다. 또한 주보나 월력, 인쇄물, 조경사의 화환 등에 내 이름을 그의 이름과 함께 기재하고 있다”면서 “내가 내 친부모에게도 못한 일”이라며 후임목사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후임 임석순 목사는 “원로목사님은 영적인 아버지시며 제 목회사역에 큰 방패 역할을 해주시는 최고의 동역자”라며 “(원로목사님과의 관계에 있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평생을 원로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그 분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 생신이나 명절에는 반드시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원로목사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진심으로 기뻐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지일 목사 “원로만 두 명, 부담 줄까봐 출석 안해”
이어 영등포교회 원로 방지일 목사가 2대에 걸친 후임목사들과의 관계를 소개했다. 방 목사에 이어 김승욱 목사가 목회를 이어받았고, 지금은 김 목사의 후임으로 임정석 목사가 영등포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방 목사는 “내 후임목사도 이제 원로목사가 됐고, 지금은 그 다음의 목사가 담임목사라 나는 이제 영등포교회의 한 평신도라 생각하고 있다”며 “은퇴한 다음에는 후임목사에게 내 모든 일을 보고하고 지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담임목사와) 조금 멀리 지낸다. 현 담임목사에겐 매번 보고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큰 일들은 보고를 한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특히 자신의 후임목사였던 김승욱 목사에 대해 “김 목사님이 내 모든 일정을 맡아주신다. 그래서 김 목사님이 정하여 주시는대로 따라다닌다. 외국에도 이렇게 다니고 있다”며 “다른 분들이 김 목사님을 칭찬하는 것을 많이 듣지만 나는 그에게 훨씬 더 감사한다. 그 분의 도움을 받아 국내외를 다닌 것이 여러 해 되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방 목사의 후임이자 지금은 원로가 된 김승욱 목사는 “내가 담임일 때 교인들의 애경사가 있으면 늘 방 목사님을 모시고 다녔다. 설교도 방 목사님께 부탁드렸다”며 “방 목사님께서 교인들의 사정을 더 잘 아시므로 그 가정에 맞는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이다. 교인들도 방 목사님을 모시고 가면 아주 기뻐하고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후임인 임정석 목사와의 관계에 대해 “지금은 나도 원로목사가 됐다. 방 목사님께서는 은퇴하신 후 영등포교회에 일체 출석하지 않으셨다. 나 또한 은퇴한 후 따로 주택을 마련해 이사한 후부터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며 “한 교회에 두 명의 원로목사가 있기에 새로 부임하신 담임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끝으로 현 담임인 임정석 목사는 “원로, 후임목사간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두 분 원로목사님들을 부임 초기부터 아버지처럼 모시려고 애쓰고 있다”며 “겉으로만 위한다고 하면서 속마음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잘하든 못하든 겉과 속이 같아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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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성결교회 원로 이만신 목사(오른쪽)와 후임 한기채 목사가 나란히 앉아 경청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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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목사 사무실, 절대 교회에 두지 않는다
중앙성결교회 원로 이만신 목사는 후임 한기채 목사에 대해 “지성과 영성을 갖춘 좋은 분이다. 원로목사인 내 철칙은 원로목사가 후임목사에게 결코 누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후임목사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된다. 그래서 원로목사는 절대 자신의 사무실을 교회에 두면 안 된다. 나는 설교도 안 한다. 아들과 며느리도 다른 교회로 옮기도록 했다. 원로목사인 내가 후임목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 뿐이다.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한다”고 말했다.
후임인 한기채 목사는 “원로목사님은 부흥강사로 유명하신 분이었고 나는 교수 출신 목회자로 서로 다른 유형의 영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서로 융화해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원로목사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며 좋은 멘토요 동역자시다”고 전했다.
故 강원용 목사에 이어 경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종화 목사는 이들의 발표에 대한 소감을 전하며 “오늘날 상당한 경우의 교회들이 경험하는 원로와 후임목회자 사이의 ‘권력 갈등’과 그로 인한 교인들 간의 분열과 갈등을 처음부터 막을 수 있는 신앙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원로와 후임의 관계는 원로가 앞에서 끌고 후임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역도 아니다. 원로가 위에 있고 후임이 아래에 있는, 또는 그 반대의 모형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목사는 “내 경험과 생각으로는 후임이 원로를 등에 업고 나아감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며 “후임은 펼쳐질 앞길을 가되 지금까지의 아름다운 유산과 지혜를 항상 등에 업고 미래의 비전을 심어가고, 등에 엎힌 원로는 에벤에셀의 지혜로 앞서가야 하는 후임에게 미래에 참조할 자양분과 자산을 풍성히 얹혀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