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의 성서화 탐구] 입다의 딸, 그 슬픈 사연

교육·학술·종교
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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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궁금증 성서화로 풀기(16)
제임스 티소ㅣ<입다의 딸>ㅣ1896-1900. 구아시수채화ㅣ유대인박물관, 뉴욕 James Tissotㅣ<jephthah's daughter="">ㅣGouacheㅣJewish Museum, New York

티소는 프랑스인 화가이지만 유대인계로 알려져 있다. 그는 후반기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주로 유대교에서도 경전으로 쓰는 토라와 구약을 중심으로 한 성서화를 그렸으나 예수의 일생을 다룬 작품도 많은 편이다.

나는 그 날, 그의 한 작품 앞에서 얼어붙은 듯 한참을 서서 작품을 바라보았다. 그 작품은 티소의 '입다의 딸(Jephthah's daughter)'이라는 수채화이다.

구약성경을 읽다가 기생 아들로 태어나 형제들로 부터 타향으로 쫓겨나 자라난 입다와 그의 딸 기사를 읽으면서 세상에 이런 슬픈 이야기도 있는가 하고 탄식을 하였는데, 바로 그 사연을 그린 작품을 만난 것이다.

왕이 아직 없던 시절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우두머리인 사사의 딸로서 아름다운 자태로 정장을 하고 작은 북을 들고 춤을 추고 있다. 구아시(gouache) 수채화로 그려서 투명한 수채물감과는 달리 불투명한 효과를 내면서 광채가 직접 반사되는 산뜻한 느낌을 준다.

바차니 주세페(1690-1769)ㅣ<입다의 딸>ㅣ루브르 박물관, 파리 Bazzani GiuseppeㅣㅣOil on canvasㅣ Musee du Louvre, Paris

소녀는 적국인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문 앞에 나와서 춤을 추며 기쁘게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러나 이를 어이 하리!

충직한 아버지 입다는 천출이라는 이유로 같은 부족인 에브라임 지파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암몬과의 힘겨운 전투를 할 때에 여호와께 서원(誓願)을 하였다.

"주께서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집에 돌아갈 때 내 집 문 앞에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자를 내가 여호와께 번제(燔祭)로 드리겠나이다."

번제란 제단 위에서 제물을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가 아닌가? 서원이란 여호와 앞에 약속하는 기도이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사랑하는 딸이 문 앞에 나와 섰으니 입다 장군은 옷을 찢으며 울부짖는다.

"어찌 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라.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춤을 추던 영리한 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다. 그래서 소녀는 아버지에게 조용히 아뢴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하신 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다만 두 달만 말미를 주소서.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겠나이다"

결국 두 달 후에 아버지가 서원한대로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 그 후부터 이스라엘 처녀들이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씩 애곡하는 슬픈 축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입다를 몹쓸 아비로 생각했다. 그가 길르앗 고향에서 쫓겨나 타락한 잡류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힘이 장사라서 사사가 되었지만 율법을 잘 몰라서 경솔한 맹세와 그로인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무식한 아비를 둔 딸이 불쌍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 몇 안 되는 믿음의 선조들을 열거한 글을 읽다가 위의 그 입다 사사도 신앙인물로 칭찬한 대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수집한 성서화 자료를 다시 뒤적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성 어거스틴의 신국(神國)론(La Cite de Dieu)의 불어 번역본 중에 있는 아름다운 메뉴스크립트 속에서 <승리하여 돌아와 딸을 만나고 그의 옷을 찢는 입다 >란 삽화를 찾았다.

메트르 프랑수아ㅣ<승리하여 돌아와 딸을 만나고 그의 옷을 찢는 입다>ㅣ1475-80년경. 삽화ㅣ출전: 어거스틴 신국론(412-427) 불어 번역본(Raoul de Presles 번역) Maitre Francoisㅣ<jephthah, returning="" from="" victory="" meets="" his="" daughter="" and="" rends="" clothes="">ㅣc.1475-80. MiniatureㅣFrom Augustine's "La Cite de Dieu" book I-X translation from the Latin by Raoul de Presles, (manuscript "Den Haag mmw. 10A.11)

15세기 말 파리에서 5세기의 어거스틴의 신국론(412-427년)을 불어판으로 번역하면서 메트르 푸랑수아( Maitre Francois 1405-1480)가 아름다운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여기에 입다와 딸의 그림이 특이하다.

이 삽화는 테두리에 꽃과 과일이 가득한 프랑스 왕실문양으로 장식하였는데, 아래 그림은 입다가 승전 후 군사들을 이끌고 집에 돌아올 때 그를 맞이하는 딸을 보고 옷을 찢는 장면이다. 그리고 위의 그림에는 입다가 딸을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내려치는 순간에 천사가 칼끝을 붙잡아 딸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마치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인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치고자 할 때 천사가 칼을 막아 가시넝쿨에 걸린 양을 제물로 대신 드렸다는 역사적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다.

아! 입다의 딸은 죽지 않았단 말인가?

이를 계기로 국내외 여러 주석서를 찾아보았다. 15세기 이전 중세 때까지는 입다가 그의 딸을 죽여서 번제로 드린 것이라고 해석 하였다. 그러나 중세대 이후에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다만 소녀로 하여금 소년 사무엘 같이 평생토록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처녀로 바쳐진 것이라고 해석하는 입장이 더 우세하였고 지금까지도 같은 해석이다.

입다는 이스라엘 나라의 구원이 여호와께만 있는 줄로 믿은 신앙의 표본이다. 그리고 입다 장군의 사사로서의 신앙적 용단과 그 딸의 믿음과 아름다운 순종이 새삼스럽게 우리를 감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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