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3000년 전 유대나라의 다윗 왕 앞에 왕의 고문인 선지자 나단(Nathan) 이 나타나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한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그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다윗은 노발대발하여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나단은 단호하게 선언한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
제임스 티소가 그린 <다윗을 책망하는 나단> 이란 작품을 보면 다윗 왕이 심각한 표정으로 양 손으로 턱을 고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다. 너무나 큰 죄를 지은 그는 나단 선지자의 준엄한 책망을 듣고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얼마 전 어느 날 저녁에 시작되었다. 저녁때에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저 아래 인근 주택에서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게 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바로 사람을 보내 데려와 동침하였다.
한스 맴링의 작품 <다윗과 밧세바>는 밧세바가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하는 장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작품의 상단 왼쪽을 보면 다윗 왕이 왕궁 옥상에서 목욕하는 여인의 나신(裸身)을 내려다보고 있다.
성서화 작품에서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characters) 중 아름답게 그리는 여인 세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의 밧세바와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 그리고 신약의 예수부활의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를 들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사상가의 한 명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미의 역사 "에서 밧세바를 중세 미인의 전형으로 꼽으며 바로 함스 맴링의 다윗왕이 밧세바를 훔쳐보는 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중세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주1.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이현경 옮김,열린책들, pp.154-55)
"사실 약간 튀어나오고 적당히 풍만하며.... 갇혀 있지만 짓눌려 있지는 않으며 출렁이지 않도록 부드럽게 묶여있는 가슴은 아름답다."
다윗은 밧세바의 잉태한 사실을 안 후 간교한 계책을 세웠다. 전쟁터에 있던 우리
아를 불러 술을 먹이고 집에 가서 쉬라고 하면서 음식물 까지 딸려 보냈다.
헨리 8세 기도서 (Hours of Henry VIII) 에는 <다윗과 우리아>란 주제의 삽화가 있다.
이 삽화를 보면 다윗 왕 앞에 우리아가 창과 칼로 무장하고 전령의 소환통지서를 오른손에 든 채 한 쪽 무릎을 꿇고 왕의 하명을 기다리고 있다. 문 밖에는 그가 타고 온 백마가 서 있다. 다윗왕은 근심어린 모습으로 우리아에게 오늘 밤 집에 가서 쉬라고 타이른다. 다윗 왕 뒤편에는 다윗이 밧세바를 불러 죄를 범한 그 침대에 누군가 기대어 서서 왕의 계속되는 간교를 듣고 있다.
헨리8세 기도서는 영국 튜더왕조의 헨리 8세의 성무일과서로 알려졌으며 최근까지 영국왕실에 소장된 역사적인 기도서이다.
튜더 왕조(House of Tudor 1485-1606)는 장미전쟁을 수습하고 즉위한 헨리 7세가 시조이다. 그의 아들 헨리 8세(1491-1547)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로마교황청과 결별하고 영국국교회를 수립하였다. 종교도 왕권아래 두어 절대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헨리 8세의 자녀 3인이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로 튜더왕조를 이어가게 된다.
이 기도서는 1500년 경, 프랑스 투르지역에서 Jean Poyer이 제작한 아름다운 필사본으로 현재 뉴욕의 모건 도서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다윗 왕궁에서 나온 충직한 우리아는 두 번이나 집에는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잠을 잤다.
그러자 다윗은 무서운 흉계를 꾸몄다. 군대장관 요압에게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전사하도록 하라고 비밀 지령을 내렸다. 요압은 모압과의 전투에서 우리아를 최일선에 배치하여 죽게한 후 다윗에게 우리아가 전사했다는 보고를 한다. 다윗의 살인교사가 성공하였다. 그는 그 후 밧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다.
성경을 읽다가 이 부분에 오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진짜 다윗이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신약성서 첫 줄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이렇게 예수 가계 중 가장 위대한 선조로 자리매김한 다윗이 아니던가?
유대 12 지파의 후손들이 세운 이스라엘은 지금도 그 나라 국기에 "다윗의 별"이 펄럭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근원적 혼미(昏迷)에서 벗어나려면 전체적 맥락(脈絡)에서 찬찬히 두드려 보아야 한다.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받고 "나는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다. 한 마디 변명도 없이 명백하고 솔직하다.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어가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7일 동안 "땅에 업드려" 금식하면서 통회(痛悔)의 기도를 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 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편 150편 중 다윗의 시로 밝혀진 것이 회개와 찬양의 시 75편이 있다. 특히 시편 제51편은 부제에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의 통회 자복하는 시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범하고 산다. 그러나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구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제목의 많은 다윗과 우리아의 성서화는 다윗의 치부(恥部)를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중세 기도서나 성무일과서에서 회개와 겸손을 상징하는 메뉴스크립트로 오랜 세월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