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개혁, 본질은 의사 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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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진영 기자
jykim@cdaily.co.kr

의정갈등 해소를 위해 여야가 어렵게 합의해 마련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지난 11일 국회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의료 갈등의 핵심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전협)와 의료계 법정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빠진 데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까지 불참함으로써 협의를 통한 의정갈등 해결에 한계를 드러냈다.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는 첫 협의체 회의에서 “우리 협의체의 합의가 곧 정책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말이 ‘여야의정 협의체’지 정부와 갈등을 빚는 의사단체와 협의체 구성의 주체인 야당까지 빠진 상태에서 지금의 난국을 풀어나갈 극적인 타결 같은 성과를 당장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의료개혁 과제와 의정갈등 해소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가 고심 끝에 합의한 일종의 대화 창구 성격의 협의체다. 정부와 의사 간에 간격을 좁히기 위한 자리인데 당사자인 의협과 전협이 내년 의대 정원 2000명을 정부가 철회하지 않는 한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치권이 주도하는 협의체의 의미가 반감되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첫 회의엔 정부와 국민의 힘, 그리고 의사를 대표해 대한의학회와 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자리를 함께했다. 대한의학회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수련과 교육을 책임지는 단체인데 어떻게든 지금의 의정갈등을 푸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자세로 참여한 것으로 안다. 현재 의료 공백의 법적 당사자는 아니나 전공의를 지도하는 위치에서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보겠다는 자세일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정부와 의료인 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출범한 ‘여야의정 협의체’에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의협이 이 자리에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전 회장의 정치적 편향성이 한몫했다. 회장이 의사 권익 옹호보다 윤석열 정부 탄핵 등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면서 전공의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최근 임현택 회장이 자신을 비난한 회원에게 현금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탄핵당하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당사자 간에 갈등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일 것이다. 정부의 의료개혁 방향의 골자는 매년 의대 정원을 2000명씩 증원하는 데 있다. 그런데 내년 증원 계획은 이미 입시요강이 발표돼 되돌릴 수 없지만, 내후년 계획은 협의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의협과 전협은 정부의 계획을 무조건 철회하라는 주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따라서 의료 현장의 혼란과 충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달성될 것으로 보는 건 큰 오산이다. 국민의 시각에선 의사가 부족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에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분야가 아닌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에 지원이 몰린다면 아무리 의사 수를 늘린들 제자리걸음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수가 조정 등 의료 분야 편중 현상에 대한 근본 대책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전공의에게 무한 희생을 강요하는 지금의 의료체계의 상당 부분은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의료계에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본다.

차제에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 왜 사회주의라는 꼬리표가 붙었는지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 국민은 적은 보험금을 내고 큰 의료혜택을 누려 좋겠지만 의사와 병원 입장에선 부담과 불만 요인이다. 이 문제는 합리적 수준의 수가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

국민을 위한 의료혜택이 외국인에게 남발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 한해동안 255만 명의 중국인이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1조 2000억 원의 보험급여가 지출됐다고 한다. 중국인의 건강보험 혜택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건강보험공단이 지출한 진료비가 2019년 8453억 원에서 2022년 1조 1235억 원으로 3년 만에 32.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왜 그 많은 중국인들이 의료혜택을 누리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지난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동성 커플에게 건보 피부양 자격을 허용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무자격자들에게 의료혜택을 선심 쓰듯 하니 국민의 부담과 함께 의료 현장의 피로도만 가중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으로 완결될 수 없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지만 급격하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의사들이 반발해 병원을 떠남으로써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실정이다.

이런 때에 발족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대화를 통한 타협 의지를 확인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대화와 협의의 판 자체가 깨지게 될 위험이 있다.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서로가 기존의 주장과 행동을 조금씩 내려놓고 대화를 복원하는 노력이 급선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