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유엔의 보편적 정례 인권검토(UPR)에서 제시된 294개의 권고 사항 중 88개 항목을 거부하고, 나머지 권고에 대해서는 내년 2월까지 답변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소리(VOA)는 현지 시각 12일, 이러한 소식을 전했다.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린 북한 인권에 대한 네 번째 UPR 심사에서 정치범 수용소 해체와 강제 송환자 고문 중지, 억류자와 납북자 송환 등 여러 권고가 제시됐다. 북한은 이 중 88개 권고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이는 UPR 보고서 초안에 "주목한다"는 표현으로 나타났다. 이 표현은 사실상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이 거부한 88개 권고안에는 한미일 세 국가가 제시한 13개 항목이 전부 포함되었다.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심사에서 북한이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고 부당 구금된 정치범을 석방하며, 공정한 재판과 기타 보호 조치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북한의 ‘3대 악법’으로 알려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폐지를 요구했다. 터너 특사는 강제 노동 중단과 납북자에 대한 정보 제공, 이산가족 상봉 촉진도 촉구했다.
윤성덕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대사는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들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며, 납북자와 억류자, 미송환 국군포로 및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특히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등 6명의 한국 국적자 석방을 강조했다. 일본대표부의 오이케 아츠유키 대사 역시 납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고령화되는 점을 고려하여 북한이 납치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번 UPR 심사에서는 북한의 러시아 전쟁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권고안도 처음으로 나왔다. 라트비아 대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으며, 우크라이나는 "국제법 준수와 러시아와의 전쟁 공모 중단"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북한은 이번 심사에서 공개처형 관행을 일부 인정했다. 박광호 북한 중앙재판소 국장은 사형이 원칙적으로 비공개로 집행되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복적인 범죄자나 극악한 살인범에 대해 피해자 가족의 요구로 공개처형이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북한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정치범’이나 ‘정치범 수용소’라는 용어는 없지만, 반국가 범죄자와 이들을 수감하는 개혁 기관이 존재한다고 언급하여 사실상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적대 세력이 파견한 간첩과 테러리스트, 사회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사람들을 별도의 개혁 기관에 수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북한 UPR 심사 결과는 13일 공식 채택됐다. UPR은 유엔 193개 회원국이 4년 반마다 서로의 인권 상황을 검토하고 권고사항을 주고받는 절차로, 북한은 2019년 5월의 UPR에서 262개의 권고 중 132개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 이행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