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인의 호감 종교: 불교 25%, 천주교 18%, 개신교 10%
반종교는 그나마 아직 애정이 남아 있는 것
무종교화, 반종교의 외침을 교회가 제대로 주목하지 못한 때문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 하나님’, 부수고 ‘그대로의 하나님’ 만나야
그는 2007년~2012년, 1972년~2016년 사이의 <미국의 종교 분포 변화 자료>를 제시하며 이 변화가 지닌 함의를 설명하고, 고대부터 중세, 근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세상의 관계성에 대해 논하며, 반종교로부터 무종교로 이양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재고했다.
“‘우리 믿음 되돌아보기’라는 제목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 믿음의 방향은 앞으로 향해서 가는 것인데 저는 엉뚱하게 되돌아 보자고 주장했다. 또, 한자로 바꾸면 '성찰'이라는 말이 되어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되돌아보는 것은 믿음을 방해하는 일이라는 억울한 혐의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왜 그런 작업을 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2007년-2012년 미국 종교분포 변화 자료
“프로테스탄트 비율을 보면, 2007년에 53%였는데 2012년에 48%가 됐다. 특별히 2012년이 중요하다. 2012년이 왜 중요한가? 미국이 개신교 국가라고 하는 주장을 해 왔는데 50% 미만으로 떨어진 첫 해, 개신교 입장에서 봤을 때 뼈 아픈 해이다. 불과 5년 사이에 5%가 줄었다. 반면, 가톨릭은 -1%, 다른 종교는 변동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종교(unaffiliated)의 비율의 변화이다. 개신교 인구가 5% 줄었다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무종교가 4.3% 증가했다는 점이다.”
1972-2016년 Growth of the Religiously Unaffiliated
“2016년에 unaffiliated가 19.4%였는데 2016년에 25%로 늘어났다. 더 심각한 것은 연령별 비율. 2016년 젊은 세대(18세-29세)의 비율이 10%(1986년)에서 2016년에 39%로 급증했다.”
비종교인의 호감 종교: 불교 25%, 천주교 18%, 개신교 10%
“비종교인에게 가장 호감을 느끼는 종교를 물은 결과 25%가 불교를 꼽았고 그 다음은 천주교(19%), 개신교(10%) 순이었으며, 절반에 가까운 46%는 호감 가는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무종교인, 종교에 어떠한 관심도 없다고 답한 사람이 가장 큰 비율 46%를 차지했다. 열렬한 유대교 신자였던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되었으나,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 사도로 픽업될 수 없다. 그는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하지만 그의 이전 토양들, 그 탄탄한 지혜를 사용해서 기라성 같은 편지를 썼다. 그만큼 밀도가 있고 토양이 있는 사람이었다.”
“왜 믿지 않는가 봤더니, 가장 큰 이유가 '관심이 없어서', 그 다음은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다. 이 둘은 천지 차이다. 종교의 의미 자체를 들이댈 수 없는 척박한 토양이다.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니 그냥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일말의 책임도 없을까? 기독교 신자로서 그들이 그런 인생관의 방향을 잡도록 우리가 일조한 것은 없을까? 이것을 되돌아볼 계기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고대(BC 5세기) 복음의 세계화를 위한 정신 문화적 토양이 다져지던 시대. 4대 성인 줄 3대 성인이 5세기 전에 등장했다. 비숫한 시기에 들어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을 횃불을 들고 흔들어 댔다. 그것을 교부들이 앞선 세 분들이 복음을 위한 토양을 준비했다고 해석했다. 중세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세계를 향해서 뻗어 나갈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이면에는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순교자의 종교로부터 황제의 종교로 급변하고, 정치와 결탁하게 되었다. 근세에 들어서면서 종교는 영역이 줄어들고, 종교세력으로부터 세속이 빠져 나온, 탈종교 시대가 되었다.”
“현대는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다. 근대와 구별되는 현대를 시작해 준 정신문화의 선구자들이 있었다. 포이에르바하, 맑스, 니체, 프로이트 등이 등장했다. 포리에르바흐는 종교를 ‘투사’, 막스는 ‘아편’이다 니체는 ‘우상’이다, 프로이트는 ‘환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네 사람의 무신론과 중세의 무신론과 결이 전혀 다르다. 인간이 하나님을 증명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 중세의 사고 방식이라면, 근대와 함께 신은 더이상 증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 이것이 근대이다. 세상은 그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데 교회는 점점 울타리를 적게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열심히 반종교를 주장했다. 반 종교는 그나마 아직 애정이 있는 것,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부터 또다른 버전이 등장하고 극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십자가와 성경을 치웠다. 이제 교회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게 아니다. 비판은 아직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 무관심- 무종교로 시대가 바뀌었다.”
“무종교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저 반종교의 외침을 교회가 제대로 주목하지 못한 때문이다. 왜 믿는가? 그런데 묻기를 꺼려했다. ‘왜’라는 물음을 묻게 되면, 믿음에 대해서 시비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의심이고 회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성찰의 과정 없이 열심히 앞으로, 위를 향해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기에게는 강박이 되고 타인에게는 독단이 된다.”
그는 그가 성공회 대학에서 근무하던 시절, 근처 교회를 다니던 집사님의 간증에 관한 예화를 들어,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며, 신앙의 강박과 독단을 경계할 것을 요청했다.
“성공회 대학에 근무하던 시절, 학교 근처에 조그만 성공회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 집사님이 조그만 구멍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물건을 배달해 주시는 분이, 주일 11시에 주시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집사님은 주일 예배 시간과 겹쳐 고민하다가 주일날 11시에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화요일에 길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팔이 부러졌다. 그래서 교회를 가서 세 가지 기도-회개 기도, 치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주일에 와서 간증했다.”
“그 간증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 되셨나? 주일 성수를 드리지 않았다고 팔을 부러뜨리는 분. 이보다 더 큰 일을 놓고, 한국에 벌어지는 비극의 사건을 놓고 목사님들이 어떻게 설교하시는가? 이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다. 강박이나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는 ‘욕망’이 키워드가 된 현 시대, 욕망을 향해 질주하고 있으나 교회는 여전히 고전적 금욕주의만 강조하니, 교회가 세상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근대까지도 인간을 분석할 때 ‘의지적인 인간’ 이라고 봤다. 현대의 새로운 버전은 욕망이다. 고대 중세 말할 것도 없고 근대조차 금욕주의가 기본 강령이었고 욕망은 억눌러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욕망이 이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교회가 신학적 성찰을 통해서, 포함하고, 이를 넘어서고 초월하는 경지, 업그레이드 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여전히 금욕, 고전적 버전만 강조하니 세상이 볼 때, 교회의 메시지는 현실하고 동떨어진 얘기일 수밖에 없다.”
‘신’(神, God)과 ‘신’(信 faith)의 혼동
“우상은 우리의 관념 속에 우리 마음 속에 심지어 우리의 신앙 속에 신앙의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며 ‘신’(神, God)과 ‘신’(信 faith)를 혼동한다. 우상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취하기도 한다. 칼뱅은 ‘인간은 끝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말했고 프로이트는 인간은 우상 없이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신자들이 믿는 하나님이,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 하나님”일 수 있다며,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으로, “그대로의 하나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하나님’을 깨야 한다. 성서는 내가 맞닥뜨린 하나님,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을 가르쳐준다. 전자에서는 ‘내’가 주어라면, 후자에서는 ‘하나님’이 주어가 된다.”
그는 또한 ‘성경’ 자체를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성서 우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성경이 그대로를 보여 준다고 하면, 하나님을 제껴두고 성경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일이 벌어진다. 성경책을 금으로 칠하고, 지퍼로 딱 묶었다가 하나님이 언제 말씀하시는가, 내가 지퍼를 싹 열면 그때 하나님이 막 말씀하시고, 지퍼를 딱 닫으면 하나님 다시 조용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가둔다.구약의 하나님은 이름이 없었다. 즉,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규정할 수 없는 분이다.”
모리아 산 사건, ‘내가 믿고 싶은 대로’를 부수는 사건
그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모리아산 사건을 언급했다.
“모리아산 사건은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에 관한 것이다. 믿고 싶은 하나님을 부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내가 믿고 싶은 대로’를 부수시는가? 왜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그토록 싫어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속박하고, 타인을 억업하는 것을 염려하시는 것이다. 성서를 통해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그대로의 하나님을 향해서 가야 한다.”
한 참석자는, 이 강의에서 논의된 ‘내가 믿고 싶은 대로의 하나님’과 ‘그대로의 하나님’에 대해 32년간 목회를 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며, 모리아 산 사건에 관해 질문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이삭 번제 사건을 가지고 토론한 일이 있었다. ‘아브라함의 그 믿음이 이삭이 받을 그 상처까지 생각했을까?’ 이런 질문을 했다. ‘이건 차일드 어뮤즈가 아니냐’ 이런 질문을 던져 놓고 토론을 했던 일이 있는데, 이삭은 어떻게 치유가 됐을까”
이날 강사로 선 정재현 교수는 에모리 대학 신과대학원 철학적 신학 전공(MTS), 종교철학-조직신학 전공(Ph.D.)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시니어와 함께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
한편,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는 오는 10월 15일(화) 미주 성시화 운동분부, 미주복음방송과 함께 미주복음방송 공개홀에서 '시니어와 함께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라는 주제로 제1회 시니어 사역 교육 훈련 세미나를 개최한다. 시니어의 돌봄과 시니어의 재사역자화를 위해 개최되며,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 김기철 교수(감신대 교수, 한국영성노년학연구소 소장), 샬롬 김 박사(비전 멘토링 대표), 김재홍 목사(웰 에이징 미션 대표)가 강사로 참여한다.
또한 10월 22일 2시, 6시 30분에 2024 가을 사경회가 온-오프라인으로 개최된다. 강사는 이승종 목사이다. 이승종 목사는 KWMC의장, 몽골국제대학교(MIU)대표이사, KCNK(북한 동포를 위한 한국교회 연대)이사장, CTS미주 후원회 이사장, 차세대 사역 네트워크 '어깨동무 사역원'대표와 샌디에고 예수마을교회 은퇴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