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9조6000억 원 이상 급증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9월부터 시행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를 앞두고, 대출 한도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8월 말 기준 725조3642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7월 말 715조7383억 원에서 한 달 만에 9조6259억 원이나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가계대출의 급증은 올해 월별 증가폭 중 가장 큰 규모로, 4월 4조4346억 원, 5월 5조2278억 원, 6월 5조3415억 원, 7월 7조1660억 원에 이어 8월에 이르러서는 2021년 4월(9조2266억 원)을 넘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던 2020~2021년에도 가계대출은 급증했으나, 현재는 그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당시 기준금리는 0.5~0.75%였고,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단은 2%대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저금리 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가 성행했으나, 현재 가계대출 증가는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상황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한 은행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거래가 다시 활성화되고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9월부터 시행된 스트레스 DSR 2단계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대출을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었다. 8월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568조6616억 원으로, 7월 말 559조7501억 원에서 8조9115억 원이나 급증했다. 이는 7월에 기록한 역대 최대치인 7조5975억 원을 넘어, 한 달 만에 1조3140억 원이 더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신용대출 또한 103조4562억 원으로, 전월 말 102조6068억 원에서 8494억 원 증가했다. 신용대출은 6~7월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으나, 8월 들어 다시 증가세로 전환했다. 이는 DSR 규제가 강화되기 전, 주담대로 최대 한도를 채우고 남은 여유분을 신용대출로 보충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세대출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8월 말 전세대출 잔액은 118조8362억 원으로, 전월 118조6241억 원에서 2121억 원 늘었다. 전세대출은 5월 이후 네 달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집단대출 잔액은 다소 감소했다. 8월 말 집단대출 잔액은 161조8359억 원으로, 전월 161조8591억 원에서 232억 원 줄어들며 소폭 하락했다.
가계대출의 가파른 증가세는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금융 안정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으며, 앞으로 DSR 규제 강화에 따른 추가적인 대출 수요 변화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