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총장 김학유)에서 정년 퇴임한 이승구 박사는 올해부터 이 학교에서 ‘남송 신학’ 석좌 교수직을 맡고 있다. 이 교수가 2009년 개혁주의 신학저널(Jornal of Reformed Theology)에 게재한 논문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ntological Trinity and the Economic Trinity)’는 로버트 레담 교수(영국 유니온 신학교) 등 저명한 개혁신학자들에 의해 인용됐다. 그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그간 학술 활동에서 집중하셨던 신학 주제는?
“삼위일체와 교회다. 2009년 개혁주의 신학저널(Jornal of Reformed Theology)에 논문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ntological Trinity and the Economic Trinity)’를 게재해 로버트 레담 교수(영국 유니온 신학교) 등 개혁신학자들이 쓴 책들에 인용됐다. 또 기독교세계관 관련 분야에서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서도 출간했다. 30여 권의 책을 썼다.”
-삼위일체 관련 논문에 대해 개략적으로 내용을 설명해달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역사 속에서 드러내시는 것을 경륜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경륜 가운데 삼위일체인 성부·성자·성령은 그 속성을 드러내신다. 이러한 경륜적 삼위일체는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로 계시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에서 나온다. 즉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 근거이고,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존재 근거라는 점이다. 대부분 존재론적 삼위일체에 관심이 없다. 경륜적 삼위일체만으로 삼위일체를 말하려는 경향은 잘못됐다. 아울러 경륜적 삼위일체를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일치시키는 것도 잘못됐다.”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론이란?
“두 가지가 아닌 것을 생각하면 된다. 첫째, 구약시대 성부 하나님이 계셨고, 그분이 성자로 오셨으며,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성령으로 오셨다는 소위 ‘양태론’ 입장이다. 하나님 한 분이 성부, 성자, 성령의 각 형태로 바꿔서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즉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삼위는 없다. 둘째, 성부, 성자, 성령은 각 위격으로 존재하면서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삼신론’ 입장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로 계시면서 하나의 하나님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아니어도 ‘종속론’도 문제다. 즉 성자와 성령이 성부에게 종속돼 있다는 사상이다. 아리우스는 영원의 관점에서 성부만 태초에 존재했고, 성자와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부에게 성자가 있지 않는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초부터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한 교제를 나누셨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인간적 관계로 설명될 수 없는, 태초부터 항상 함께 계셨던 신비의 영역이다. 성부에게 성자가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삼위일체론은 어떤 성경 본문에 근거하는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장 14절)이다. 이는 성부께서 태초부터 함께 하셨던 성자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장 1-2절)도 있다. 이는 성부께서 창조하셨을 당시 함께 일하셨던 성령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삼위일체의 관계성은 어떻게 되는가?
“서로가 서로 안에 있는 관계다. 서로가 서로를 섬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장 21절)이다. 상호 내주·순환·점유라고 부른다. 성자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않고 자기를 비우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립보서 2장 6-8절). 이 말은 성자는 성부와 동등하셨던 속성을 지니심을 의미한다. 여기에 진정한 겸손이 있다.”
-경륜 가운데 나타난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각 사역은?
“삼위의 사역은 나뉘지 않고 함께 이뤄진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일은 성부에게, 또 어떤 일은 성자에게, 또 다른 일은 성령에게 돌려드린다. 세상이 어떻게 될지 계획하고 창조하는 일은 성자·성령이 함께 하시지만 결국 성부께 돌려드린다. 마찬가지로 성부·성자·성령이 함께 하시나 구속 사역은 성자께, 성화 사역은 성령께 돌려드린다.”
-인간은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됐는가?
“하나님을 완벽히 알 수 없지만 계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즉 기록된 성경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고 박윤선 박사(합신대원 초대원장)는 이에 대해 ‘계시 의존 사색’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는 자신의 스승인 미국 개혁주의 변증학자 코넬리우스 벤틸이 주장한 내용을 한글로 바꿔 쓴 용어로, 늘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앎에서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관계로 진전돼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 타자’로 알 수 없다는 신학자 칼 바르트의 주장도 있다.
“이는 칼 바르트가 당대 자유주의적 풍토가 지배했던 시대 속에서 한 학술잡지에 자유주의에 대항하고자 ‘초월적 하나님’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개념이다. 종래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은 이 세계와 우리의 감정 안에 존재할 뿐 하나님의 초월적 성격은 부정한다.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이에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면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고자 ‘전적 타자’ 개념을 주장했는데, 문제는 그 결과 하나님이 계시를 해줘도 이 세상엔 그 흔적만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칼 바르트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계시의 흔적일 따름이다. 신정통주의에선 하나님을 전적 타자로 말한다. 현재 신학계는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정통주의 신학으로 나뉘고 있다고 본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에 시사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성부·성자·성령은 서로 교제하시는데 투쟁이 없이 함께하신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도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서로가 투쟁이 아닌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행태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삼위일체가 신앙 안에서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을 때의 문제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할 수 있다. 태초부터 서로 함께 교제를 나누신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신비의 영역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경륜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일하셨다. 계시의 영역을 통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삼위일체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요즘 CCM 가사에서는 삼위일체가 거의 나타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유대교에서 불러도 되는 찬송이 된다. 결국은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에 관심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기독교에 재앙이 될 것이다.”
-삼위일체가 정립되지 않아서 발생한 이단은?
“대표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이다. 이들은 성자는 온전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니테리안주의도 있다. 성부만 하나님으로 여기고 성자를 사람으로, 성령을 하나의 영향력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신천지도 삼위일체의 삼위를 성부, 성자, 이긴자 이만희 교주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만희가 일체한 것처럼, 신천지 신자들도 이만희를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런 심각한 잘못을 하지 않으려면 성경이 말하는 삼 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분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수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