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개원 이후 70여 일간 여야의 극심한 대립으로 합의 처리된 법안이 전무했던 가운데, 최근 여야가 비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대화에 나섰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 내 처리 가능한 비쟁점 법안 목록을 추리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11일 정치권은 전했다.
여야는 최근 식물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민생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양당의 공통 분모가 존재하는 법안이나 21대 국회에서 이견이 좁혀졌음에도 끝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된 비쟁점 법안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8월 임시국회 내 처리 가능한 비쟁점 법안 목록을 정리하고 있으며, 양당 정책위 실무진들이 조만간 만나 세부적인 조율에 나설 전망이다. 이는 최근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및 정책위의장이 8월 임시회 내 비쟁점 법안 처리에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배제하는 '구하라법'(민법 개정안)과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간호법 제정안 등이 8월 중 처리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또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절충안을 모색 중이다.
여야 양당의 공약 중 내용이 겹치거나 이견을 좁힐 가능성이 있는 법안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총선 때 양당 공약 중 공통된다고 볼 만한 게 80여 개, 국민의힘 22대 국회 당론 법안 31개 중에서도 이견이 크지 않은 법안이 꽤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의 '지역의료 격차 해소 특별법'과 민주당의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 등이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맞벌이 부부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하는 남녀고용평등법, 돌봄인력 안심 보증을 강화하는 아이돌봄지원법 등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이견을 좁혔지만 결국 처리되지 못해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된 법안들도 8월 임시회 내 처리를 위해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나 예금 보험료율 한도 기한을 연장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등이 그 예다.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도 재개될 전망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최근 연금개혁 특위 구성을 야당에 공개적으로 제안했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영수회담 의제로 연금개혁을 거론한 바 있다.
여야 관계자들은 이번 대화 시도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정쟁 법안만 내는 만큼 실제 합의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끝까지 대화는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일단 여당과 만나서 법안 세부 사항을 비교해봐야 한다"며 "큰 틀에서 제목이 같다고 디테일이 같은 게 아닌 만큼 대화를 통해 이견을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 처리할 수 있는 비쟁점 법안들은 대부분 민생 법안이고 법안 수도 많다"며 "지금부터라도 가능한 현안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가면 여야 대화가 탄력이 붙고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계 한 관계자는 "이번 여야의 대화 시도가 실질적인 법안 처리로 이어질지, 그리고 이를 통해 그동안의 정쟁 구도를 벗어나 민생 중심의 국회 운영이 가능할지 주목된다"고 말하고, "8월 임시국회에서의 성과가 9월 정기국회의 분위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여야의 협력과 타협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