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꼭 붙잡아 주세요”, 장로님 손 꼭 붙잡고 기도
“제가 하나님을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여름 수련회 때, 저녁에 예배를 드리다가 장로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는데 친구, 누나, 형들이 다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러 올라갔다가 졸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제가 그런 모습인 거 같은 거다. 그래서 그때 그 자리에서 저를 붙잡아 달라고 장로님을 손 꼭 붙잡고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 LA에서 40분 거리 동쪽에 위치한 포모나에 위치한 언약교회, 포모나에 사는 분들은 언약교회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이다.
1978년 6월 25일 포모나 밸리 연합 감리교회 건물을 빌려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어, 이요한 전도사, 백승배 3대 담임목사, 조완걸 4대 담임목사로부터 14대 담임목사인 엄희조 목사에 이르기까지 45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다 교단의 성소수자 목사 안수 및 동성 결혼 축복 정책에 대한 반대로 지난해 12월 연합감리교회(UMC)에서 탈퇴하고 올해 1월 독립교회로 출발했다.
그리고 올해 5월 설립 감사예배 및 취임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에 담임으로 취임한 장수영 목사는 언약교회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이 가득하고 또 지난 역사 속에서 신앙의 연단을 거치며 신앙의 연륜이 깊이 쌓여 있는 교회, 따뜻함이 묻어나고, 서로를 섬기는 교회”라고 소개했다.
신앙의 자부심, 신앙의 연륜 지닌 교회
“역사 속에서 교회가 아픔도 겪고 힘든 과정 속에서 교회를 잘 세워보겠다고 하는 그 신앙, 그것 한 가지 때문에 교단을 탈퇴했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이 그런 자부심을 갖고 계시다. 그 과정 속에서 제가 청빙이 되어 섬길 수 있도록 성도님들께서 기회를 주셨다. 저희 교회 교인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신앙의 연륜이 쌓여 있기에 충분히 이 시대를 감당할 만한 교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7월 21일 미주 기독일보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TV 기독일보’의 ‘늘 새롭게’ 코너에 세 번째 손님으로 출연한 장수영 목사의 답변에는 겸손이 묻어 있었다.
그는 주님을 처음 만난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을, 십자가를 앞 두고 주님 홀로 기도하게 했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느냐?”라고 책망을 듣던 베드로의 모습과 동일시했다.
말레이시아, 미국 언약교회: 기도와 기도응답의 과정
그는 한국-말레이시아-미국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기도와 기도의 응답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정을 살펴보면, 마음속으로 기도하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 처음 한국을 떠나 2009년 경, 말레이시아 한인 연합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다. 사실은 그 전에 지인이 말레이시아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기회가 주어졌다.”
“말레이시아에서 사역하는 가운데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교회적으로도 사역을 내려놔도 괜찮은 상황이 펼쳐졌고 미국에 빨리 올 수 있는 길을 찾다 보니 버지니아의 리버티 유니시티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첫 해외 사역이었던 말레이시아에서 부목사로, 그리고 휴스턴, 한길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마다 담임 목사의 자리가 공석이여서, 본의 아니게 사역을 맡아서 해야 했다며, 그 경험이 지금의 언약교회를 섬길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했다.
‘젊은 목회자’, 사실 가슴 아픈 부분이다.
해외 사역을 하기 전 장수영 목사는 한국의 한 교회에서 12~13년을 섬겼다. 그때 카리스마틱한 그 목사님으로부터, “메시지 밖에는 없고 하나님 말씀이 잘 전달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목회의 핵심을 배웠다.
TV 기독일보의 진행자인 박성호 목사(베이커스필드ANC 온누리교회 담임)가 “말씀을 듣다 보니, 한국에서 10여년, 말레이사아에도 계시고 버지니아에서도 계셨고 꽤 오래 사역을 하신 거 같은데 젊어 보이세요”라고 하자, 장 목사는 가슴 아픈 부분이라며 입을 뗐다.
“가슴 아픈 부분이기도 한데, 사역지를 옮길 때마다 ‘젊은 목회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계속해서 가장 어린 젊은 목회자 쪽에 계속 들어가더라. 그런데 이게 가슴 아픈 얘기인 이유는 제 밑에 세대들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하지만 마음 아픈 부분이 조금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찬양팀 활동, “그 기억들이 너무 크다”
중고등학교 시절 각기 다른 교회에서 활동하던 친구들과 찬양팀을 결성해 각자 교회에서 악기를 들고와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찬양하고 공연했던 기억도 그의 마음 속 한편을 크게 자리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찬양팀을 조직하고 사역 같이 했던 친구했던 친구들이 있다. 그때 함께 한 친구들이 10여명이 되는데, 각기 다른 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아이들이다. 서로 각 교회에 있던 악기들을 들고 와서, 각 교회를 돌아다니며 찬양을 했는데 그때 은혜가 너무 컸다.”
“고등학교 예배 끝나고 버스를 타고 악기를 싣고 교회를 찾아다니는 거다. 같이 모여서 찬양 연습하고 찬양 예배드리고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11시 반, 12시가 된다. 그럼 집에서는 난리가 나는데, 공부는 저 멀리 보내 놓고 그렇게 했는데 그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같이 찬양을 했다. 그 찬양팀이 이제 교회가 되어서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그때 기억들이 너무 크다. 찬양은 항상 제 주변에 있다. 저는 운영하는 일을 했는데 베이스 기타를 연습하면서 연주했다.”
목회를 하시게 되었는데, 어떤 기대가 있고 어떤 기도제목이 있을까요?
“제가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서 갖는 마음은 예배 가운데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까도 한국에 사역할 때 목사님 말씀을 드렸지만 그분께 받았던 것 중에 하나는’ 예배 가운데 기쁨’이었다. ‘예배 속에서 기쁘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된다’, 지나가면서 그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는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언약 교회가 40여년의 역사 속에서 많은 아픔도 겪고 어려움도 겪으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 우리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고 그 기쁨 를 누릴 수 있다면 과거에 어려웠던 모든 것들이 다 회복되지 않을까.”
“그리고 부흥은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복음이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하게 선포되는 교회라고 한다면 분명히 부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생각이 든다. 거기에 초점이 아니라 지금 현재 참여하고 계신 성도님들의 마음과 그 심령이 오직 하나님만을 잘 향할 수 있다면 그 가운데 한 영혼이 회복된다면 그것으로서 교회 역할은 다 하는 것 아닐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은퇴 후 계획과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 어떤 말씀을 듣고 싶은지 묻자, 그가 내 놓은 대답은 ‘주차요원’이었다.
나중에 은퇴하면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주차 요원을 해보고 싶다. 항상 예배당 안에서 성도님들을 맞이하고 보낼 때도 교회 안에서 떠나 보내는데 그보다 앞서 그분들을 맞아 주시는 분들이 바로 주차장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마지막까지 교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 그것이 저의 마지막 비전이다. 그 모습 속에서 성도를 섬기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잘했다, 수고했다’, 그냥 이 한 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