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나 목사의 따뜻한 배려로 탈동성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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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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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요나 목사 입관예배… 성도와 지인들, 고인 추모
이요나 목사의 빈소 모습. ©노형구 기자

동성애자였다가 이를 극복한 뒤 탈동성애 인권운동을 펼쳤던 갈보리채플서울교회 담임 이요나 목사(홀리라이프 대표)가 향년 76세로 7월 30일 별세했다. 고인은 생전 폐암 투병을 해왔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31일 입관예배가 열렸다.

이날 예배에서 고린도후서 5장 1-4절을 본문으로 설교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김병언 목사는 이요나 목사의 30년 지기라고 한다. 김병언 목사는 “한 주에 2번 정도 이요나 목사와 통화했다. 이요나 목사는 돌아가기 직전 3주 동안 설교를 못 하셨다. 이 목사는 밤에 잠을 못 자고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다며 고통을 호소하셨다”고 했다.

이어 “이요나 목사는 폐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가셔서 안식을 누릴 것을 믿자. 우리는 그러한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며 “갈보리채플교회의 남은 성도들이 이 목사의 신앙 유산을 물려받고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 이들이 되자”고 했다.

이요나 목사 입관 예배에 참석한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성도들.©노형구 기자
이요나 목사 빈소에 한 추모객이 그를 추모하고 있다.©노형구 기자

이날 이요나 목사를 추모하러 온 지인들이 이 목사를 추모하는 말을 남겼다.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성도 최 모 씨는 “이요나 목사님은 거짓이 없으셨다. 항상 우리를 편안하게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성경 말씀대로 설교하셨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해주셨다”며 “이 목사님은 동성애자 출신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의탁해 탈동성애에 성공하셨다. 이 목사님은 동성애자들을 예수님의 방법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여생을 보내셨다”고 했다.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성도 윤 모 씨는 “제가 동성애 문제로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실수와 잘못으로 궁지에 몰린 20년 전, 이요나 목사님은 저를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그래서 가장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동성애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목사님의 삶을 통해 찾게 됐다”고 했다.

이어 “저는 당시 갈 곳이 없었다. 목사님은 당신의 집에서 6개월 동안 제가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며 “가장 두려움이 많았던 시기, 목사님으로 인해 평안할 수 있었다. 이 목사님과 함께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제 인생이 회복됐다”고 했다.

이희찬 장로가 이요나 목사를 추모하면서 슬픔에 잠겨 있다.©노형구 기자

이요나 목사의 동생 갈보리채플 이희찬 장로는 “형이랑 같이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를 운영했고 이요나 목사께서 탈동성애에 성공하면서 저 또한 예수를 믿게 됐다”며 “외부 단체의 도움이나 재정 지원이 없이 이 목사님은 홀로 몸으로 뛰며 탈동성애 사역을 하셨다. 청년들의 동성애 탈출에 헌신하셨다. 암 투병이라는 어려움에도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시고 사역하셨다”고 했다.

그는 “갈보리채플서울교회가 부흥해서 탈동성애 사역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우리 교회에서 마음의 치료를 받고 탈동성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성도인 전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이승복 박사도 이요나 목사를 회고하는 추모사를 전했다. 이승복 박사는 8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체조 선수로 활동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재활치료를 통해 이를 극복한 뒤 다트머스 의대, 하버드 의대 인턴을 거쳐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수석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재활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장애를 극복한 그의 일화는 KBS ‘인간극장’과 미국 주요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후 미국에서 의학 연구활동을 벌이다 6년 전 한국에 입국해 갈보리채플서울교회에 출석 중이라고 했다.

이승복 박사. ©노형구 기자

이승복 박사는 “미국에서 생활하던 도중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미국처럼 동성애 이슈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미국 갈보리채플에 출석했을 당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출석할 교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요나 목사님의 설교 영상을 보고 갈보리채플서울교회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며 “저는 특별히 이요나 목사님의 탈동성애 상담을 배우고 싶었다. 이를 통해 동성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요나 목사님은 탈동성애에 성공한 본인의 삶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소명으로 탈동성애 사역에 임하셨다. 확신을 갖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셨던 이요나 목사의 삶이 제겐 감동이었다”고 했다.

한편 이요나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동성애를 경험한 후, 동성애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 서울 이태원에서 한국 최초의 게이바를 열었지만 이후 교회의 전도를 받고 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40대 초반에 동성애 성향에서 벗어난 경험을 한 그는, 갈보리채플서울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며 동성애자와 탈동성애자를 위한 성경적 상담과 치유 사역을 진행했다. 또한, 그는 매년 퀴어축제가 열리는 날에 서울 종각 근처에서 ‘홀리페스티벌’을 개최하며 탈동성애를 호소했다. 또한 감리교 목회자들과 함께 성경적 동성애 대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요나 목사는 과거 자전적 에세이 「리애마마 동성애 탈출」에서 “죄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만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커밍아웃 어게인(Coming Out Again): 진리 그리고 자유」, 「거기 누구 없소 나 아픈데」, 그리고 복음서 핵심 강해 시리즈 등이 있다.

#이요나목사 #탈동성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