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 기념 미주 탈북민대회가 7월 12일(현지 시간) 오후 가든스위트호텔에서 AKUS 한미연합회, 오렌지카운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주최, AKUS 한미연합회 LA의 남북통일분과위원회, NKIA 탈북민선교회, 미주북한인권 통일연대가 주관해 열렸다.
이날 강연을 한 탈북민 티모시 조는 워싱턴 디시에서 있었던 제21차 북한자유주간에서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서 보았던 문구 '프리덤 이즈 낫 프리'(Freedom is not free)가 매우 감명이 깊었다면서, 영국 맨체스터까지 와서 자유를 선물로 얻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티모시 조는 탈북민 출신으로 영국에서 시의원에 도전을 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는 "오늘도 북한의 2천만명이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오늘 이 행사가 그분들을 생각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 자리에 서서 영광스럽다"고 했다.
또 "탈북 후 영국에서 공부하는 가운데 제 스스로 한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어떻게 탈북이 가능했나'라는 것이었다. 탈북할 때 17세였고 북송 후 여러번의 끔찍한 수용소 생활이 있었는데 말이다"라면서 "한번은 중국에서 18명과 함께 북송을 당했었는데 감방에 탈북민이 가득차서 누울 곳이 없어서 서로 등을 지고 자게 되었다. 아침에 등이 너무 무거워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제 등에 의지하고 있었던 이가 하룻밤 사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고문을 받은 상태였고, 시체가 밖으로 끌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바지에 오줌을 저렸다. 함께 잤던 17명 중에 나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탈북 후에 중국의 외국인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두번째 북송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감방 안에 7명의 죄수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국의 죄수도 있었다. 마치 건달같은 그가 나에게 작은 성경책을 주고 읽어보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해보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라면서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죽음 앞에 나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기도밖에 없었다. 그때 당시 내가 자살을 할까봐 칫솔을 주지 않아 손으로 양치를 하던 상황이었다.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아멘을 하면 된다고 해서 '하나님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북한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기도를 했다"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고 나서 영화같이 거인 같은 사람이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풀려나게 되었는데, 미국 학교에서 붙잡혔을 때 이를 보고 많은 외국인들이 울고 있었다. 그중에 10세 아이와 일부가 기자들에게 나를 살려달라고 메일을 보내고, 영국 BBC와 미국 CNN 등 세계 유명 언론에 보도가 되는 일들이 이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이 세계의 중국 대사관에 시위를 하는 효과로 이어져서 내가 필리핀으로 추방당하고 풀려나는 놀라운 일들로 이어졌다"고 했다.
티모시 조는 "16년 동안 자유의 땅 영국에서 사는 동안 힘들었던 것은 북한에서 보았던 각종 인권 유린이 꿈에서 보이는 등 여러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는 것이었다. 아직도 많은 탈북민들이 조국 땅에 잡혀 포로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하고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라면서 "저는 전세계의 3만 4천여명의 탈북민이 자유의 용사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곧 열릴 것이다"고 했다.
개회사를 한 김영길 장로(AKUS 한미연합회 총회장)는 "북한이 닫힌 마음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를 억압해도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은 막을 수 없다. 이 증거가 북한이탈주민들이다"라면서 "우리는 북한 이탈 주민을 포용하고 권익 향상에 힘쓰므로 한국과 북한의 통합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행사에는 알래스카, 유타, 텍사스, 워싱턴 주의 시애틀과 워싱턴 DC에 거주하는 40여 명의 탈북민이 한 자리에 모였으며, 탈북민 자녀 장학위원회(이사장 조선환)가 탈북 자녀들에게 준비한 장학금 수여식도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