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간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서의 절차상 문제가 현 사태를 촉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서 의료현안협의체 운영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부회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시작된 2기 의료현안협의체에서는 주로 필수의료 살리기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2월 13일 21차 회의에서 갑자기 복지부 자료에 의대 증원 원칙이 포함되어 있었고, 복지부는 현장에서 합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 부회장은 "복지부가 사전에 자료를 주지 않았던 터라 굉장히 놀랐다"며, "처음 봤는데 어떻게 합의를 하느냐고 문제 제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후 의협은 정부에 국민 의료비, 의료 접근도, 의사 인력의 지역적 밀도, 의료 생산성, 의료 수가 등 5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다음 회의에서는 의대 증원 원칙에 관한 의제가 삭제되었고 이후 관련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의대 증원의 기초 작업인 의사 인력 추계 과정의 투명성 문제도 제기됐다. 정부는 서울대 의대, 서울대 산학협력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의 3개 보고서를 근거로 의대 정원 증원안을 내놓았지만, 박 부회장은 이외에도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2018년 UC버클리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우리나라 의사는 3800명 과잉되고, 2020년 국내 연구에서는 2030년 1만4000명이 과잉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언급하며, 의사 인력 추계의 결과가 가정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박 부회장은 일본의 사례를 들며 의대 정원 논의 과정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경우,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에서 의대 정원을 논의하며, 회의록과 참고자료가 모두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의협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의료계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일체 없이 졸속으로 진행됐음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논란은 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향후 정부와 의료계 간의 대화와 협력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