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건국 대통령으로 바른 자리에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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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jykim@cdaily.co.kr
샬롬나비 논평… “자유민주 체제로 자유·번영에 초석”

전제군주국가서 자유민주 대한민국 만들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해 한반도 전쟁 억제
역사 왜곡 안 돼… 이승만 공과 바로 평가를

 

지난 3월 정동제일교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탄신 제149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던 모습. ©기독일보 DB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다큐영화 ‘건국전쟁’이 보도한 이승만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17일 발표했다.

 

샬롬나비는 “TV조선이 이번 2024년 6월 현충일 전날 밤 다큐영화 ‘건국전쟁’을 방영했다. 6.25전쟁 74주년을 맞아 이달 ‘건국전쟁’을 방영한 것은 자유민주주의국가를 지킨 대통령을 추억하는 것으로 뜻깊은 일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이승만은 한반도에 최초의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한 독립국가 창시자요, 최초의 자유민주의 체제를 도입한 선구자였다”며 “그가 만든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10대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독재자’ ‘한강 철교 끊고 도망간 런승만’이라고 매도당하는 이유는 이승만 때문에 남조선 혁명을 좌절당한 극좌 친북좌파의 이승만 악마화 때문”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건국전쟁’에 이어 앞으로 새로운 사료들이 이승만 왜곡을 깨드리고 진실의 역사를 조명해주기 바란다”며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하지만, 정작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역사를 잊을 뿐 아니라 왜곡하고 지우려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승만은 봉건 전제군주국가에서 자유민주 체제 대한민국을 만들고,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고, 신분 차별을 없앴다”며 “73세에 대통령이 되어 농지개혁을 시행해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었다. 75세 때 6.25 전쟁에서 국가를 지켰고, 반공포로를 석방했고, 휴전 후에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오늘날까지 한반도에 전쟁을 억제했다. 그는 산업화의 초석을 놓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국민소득 63달러 상황에서도 1959년 원자력 개발을 위해 젊은 과학자들을 미국에 유학시키고 서울대에 원자력학과를 만들어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원자력 국가로 만드는 초석을 닦았다”며 “그가 추진한 과학기술육성과 산업화에 기반한 자유기업육성 정책은 한국전쟁 후 87달러의 대한민국을 오늘날 3만6천불의 세계적인 경제 선진국가로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이승만을 비난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한 이승만의 ‘정읍 선언’이 민족을 반쪽 내서라도 권좌를 차지하려는 노욕(老慾)의 발로였다고 폄훼한다”며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1945년 8~9월 38선 남북의 통행과 통신·우편을 차단했다. 스탈린은 9월 20일 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관 슈킨에게 ‘한반도 북부에 소련의 이익을 영구히 구축할 정권을 수립하라’고 지령을 내렸다. 아직 이승만이 귀국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이에 따라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정부가 들어서 토지 국유화를 추진했다. 분단의 원인은 이승만이 아니라 소련과 북한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이승만이 귀국하기 전에 소련 스탈린이 북한에 친소 정권 수립을 지시했고 남북 간 38선 통행도 소련이 금지했다는 역사적 사실들이 이승만이 분단의 책임자라는 주장을 반박한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북한은 1946년 2월 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하였기에 이승만이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 남한 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선언한 것은 소련 주도의 한반도 공산화를 막았으며 뒤이어 1948년 건국에 기여했다”며 “이승만의 건국은 518년 조선왕조를 민주공화정으로 바꾼 대혁명이었다”고 했다.

이어 “당시 한국민의 70% 이상은 사회주의를 선호했으며 극한적 이념 갈등으로 인한 내전 상황이었으나 이승만은 이런 내전을 극복한 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며 “당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만이 살길이며 공산주의는 절대 불가함은 40년간 미국생활을 하고 미국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승만만이 체득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했다.

 

<건국전쟁> 스틸컷 속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 밖에도 샬롬나비는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의 각료 대부분은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6.25 전쟁이 나자 이승만은 해외도피 권유 받았으나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미제의 앞잡이가 아니다. 그는 당시 투철한 국제적 안목으로 미국에 자주적 정책을 편 강력한 지미(知美) 정치가였다.” △한강 철교 폭파 전 부교(浮橋)를 설치해서 피난민들이 건널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장기집권 했으나 독재자는 아니었다. 그는 대학병원에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했다.” △“1960년 4대 대통령선거 당선 왜곡 부정선거 원흉이었다? 그의 경쟁자 조병옥이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죽자 단독후보였다. 부정선거는 부통령 선거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졌다.” △“이승만은 4.19가 나자 스스로 하야하고,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 격려했다.” △“하야(下野)후 가난한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거할 곳이 없어 교포가 마련한 집에서 지냈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오늘날 대한민국은 2차 대전 후 유일하게 자유와 경제 번영을 당대에 이룬 자랑스러운 나라다. 그 선두에 이승만이 있다”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이승만보다 뛰어난 애국정신, 독립운동, 경력, 학력, 외교적 식견, 국제적 네트워크를 갖춘 자가 없다. 국제사회에서 시대를 앞섰던 이승만 대통령의 별명은 ‘독립에 미친 늙은이’에서 ‘예언자’로 바뀌었고, 그의 앞선 각종 정책과 외교는 그가 세우고 봉사한 자유대한민국이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될 수 없는 ‘기적의 나라’로 불리게 된 초석이 됐다”고 했다.

아울러 “말년의 장기 집권에 따른 실정은 그를 모신 측근들의 실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그의 과오와 공적을 바로 저울질하여 그를 건국 대통령으로 바른 자리에 세우는 것은 우라들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했다.

#이승만 #샬롬나비